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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호 전투 영어: Battle of Loch Ryan | ||
시기 | 1307년 2월 9일 또는 2월 10일 | |
장소 | 스코틀랜드 왕국 갤러웨이 라이언 호 | |
원인 | 브루스 가문의 갤러웨이 상륙 시도와 맥두얼 가문의 저지 | |
교전국 | ||
지휘관 | ||
병력 | 1,000명 | 알려지지 않음 |
피해 | 궤멸. | 미미함. |
결과 | 맥도월 가문의 승리. | |
영향 | 브루스 가문과 맥도월 가문의 적대의식 증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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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 시기인 1307년 2월 9일 또는 10일, 스코틀랜드 왕국의 갤러웨이 라이언 호에서 로버트 1세의 형제 알렉산더와 토머스 브루스가 이끄는 스코틀랜드군이 맥도월 가문의 지도자 둔갈 맥도월에게 참패한 전투.2. 상세
1306년 메스번 전투와 달리그 전투에서 연전연패하면서 세력을 잃은 로버트 1세는 잉글랜드군의 추적을 피해 스코틀랜드 각지를 전전한 끝에 스코틀랜드 남서쪽의 킨타이어 반도로 도주했다. 이후 두나버티 성에 잠시 머물렀다가, 잉글랜드군이 거기까지 몰려오자 배를 타고 탈출했다. 그가 그다음 6개월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스코틀랜드 서부 섬들이나 아일랜드로 망명했을 것이다. 14세기 연대기인 <게스타 아날리아>(Gesta Annalia)에 따르면, 킨타이어 반도와 스코틀랜드 서해안의 여러 섬들의 여성 영주인 크리스티나가 잉글랜드군을 피해 도주한 로버트 1세를 섬에 숨겨줬다고 한다. 이때 로버트 1세의 두 형제 알렉산더와 토머스는 아일랜드에 숨었다.1307년 2월 9일 또는 10일, 토머스 브루스와 알렉산더 브루스는 아일랜드의 게일인 소왕, 스코틀랜드 기사 레지날드 크로퍼드, 킨타이어의 영주 맬컴 맥퀼런과 함께 갤리선 18척, 병사 1,000명을 타고 갤러웨이의 라이언 호로 진입하여 스트랜라어 인근에 상륙했다. 그러나 그들은 갤러웨이의 유력 가문인 맥도월 가문의 지도자인 둔갈 맥도월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갤리선 2척만 겨우 빠져나갔고, 모든 지휘관과 장병들은 생포되었다. 둔갈 맥도월은 아일랜드의 게일인 소왕과 맬컴 맥퀼런을 즉결 처형하고, 알렉산더와 토머스 브루스 형제, 레지날드 크로퍼드를 칼라일에 있던 에드워드 1세에게 보냈다. 에드워드 1세는 브루스 형제와 레지날드 크로퍼드를 반역자로 규탄하고 잔혹하게 처형했다.
브루스 가문은 이 일을 계기로 맥도월 가문에 원한을 품었고, 1308년 로버트 1세의 유일하게 생존한 형제 에드워드 브루스가 갤러웨이 정복전에 나서서 주민들을 학살하고 맥도월 가문 인사들을 잉글랜드로 쫓아낸 뒤 1309년 3월 로버트 1세에 의해 갤러웨이의 영주로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