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4 09:27:47

두갈드 열차 충돌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Dugald rail accident


1. 개요2. 사고 당시3. 사고 이후


파일:미나키 열차 충돌.jpg

1. 개요

1947년 9월 1일 캐나다 자치령 매니토바 두갈드에서 발생한 열차 충돌사고.

2. 사고 당시

당시 서쪽으로 가던 미나키 캠퍼스 스페셜사의 6001번 여객열차가 오후 7시 30분, 캐나다 말라기서 출발했다. 원래 계획보다 1시간 30분 늦게 출발했다. 당시 열차엔 휴가철을 맞아 매니토바서 관광을 갔다가 돌아오는 승객 326명이 탑승했고, 열차는 온타리오 북서쪽에 있는 미나키로 향하고 있었다. 열차는 13대의 열차로 이뤄졌었는데, 화물차량 2대가 기관차 바로 뒤에 있었고, 1900년 초반에 지어진 승객칸 9대가 그 뒤에 있었다. 기관사는 Gaylord Lewis, 당시 63세로 은퇴를 앞두고 있었다. 9시 15분, 열차는 비비안에서 잠시 정차, 다른 열차가 먼저 지나가도록 했다. 이후 열차는 다시 출발했고, 선로를 변경해 다른 열차가 지나갈수 있게 했다.

한편 캐나다 국립 철도 소속 4번 차량 콘티넨탈 리미티드 열차가 위니펙에서 출발했다. 당시 열차는 15량으로, 기관차는 CN U-1-a, 열차는 전부 철제로 되어있었다. 기관사는 John Gibson이었다. 오후 9시 42분, 콘티넨탈 리미티드 열차가 두갈드에 도착했다. 열차는 잠시 승객을 태우기 위해 정차했다. 그와 동시에, 인근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지면서 대기하란 명령이 내려졌고, 이윽고 미나키 열차 앞 신호등에 초록색 불이 켜지면서 출발하란 신호가 켜졌다. 열차는 시속 50km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직 콘티넨탈 리미티드 열차가 선로에 있었고, 미나키 열차는 그대로 콘티넨탈 리미티드로 돌진했다. 열차가 정면으로 돌진해 오는 걸 본 콘티넨탈 리미티드의 기관사는 열차에서 뛰어내렸고, 미나키 열차가 브레이크를 급히 밟았으나 이미 늦었다. 오후 9시 44분, 두 열차는 충돌했다.

충돌 시 충격음은 7km 밖의 마을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차체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연료에 불이 붙으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하필 미나키 열차의 승캑칸은 나무로 만들어진데다 가스등까지 있어서 불이 붙어버렸다. 열차 내 가스가 폭발하면서 엄청난 화재가 일어났다. 두갈드 주민들은 사고 현장에 달려와 구조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가용을 끌고 와서 부상자들을 구조해 태워 승객들을 인근의 St. Boniface 병원으로 이송했다. 비교적 가벼운 부상을 입은 부상자들은 덜 망가진 콘티넨탈 리미티드 차량을 타고 위니펙의 병원으로 이송됐다. 시신은 인근 Cook's Funeral Home 장례식장에 옮겨졌다. 불은 다음 날이 되어서야 꺼졌다. 불이 너무 강해 열차는 뼈대만 남았다.

결국 사고로 31명이 사망, 81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 중엔 미나키 열차의 기관사도 있었다. 화재가 너무 심해 시신 중 5구만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외에는 시신에 있던 장신구들로 신원을 파악해야 했다. 가장 마지막 시신은 5일에 열차를 치우던 도중 발견됐다.

3. 사고 이후

사고가 있던 주에 희생자들을 기리는 장례식이 열렸다.

두갈드 역 신호등 관리자 Donald F. Tedlie는 신호등을 제대로 키지 않아 사고를 일으킨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그렇게 조사를 받다가 보석금 5천달러를 내고서야 풀려났다. 미나키 열차에 탑승했던 기관사와 브레이크맨을 포함한 승무원이 전부 사망해, 정확한 사고 원인은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브룩사이드 공동묘지에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