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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티라 공주

<colbgcolor=#FFCCBC><colcolor=#000000> 하노버 왕국의 왕세자비
덴마크의 티라 공주
Prinsesse Thyra til Danmark
파일:Princess_Tira_of_Denmark.jpg
이름 티라 아말리 카롤리네 샤를로테 아나
(Thyra Amalie Caroline Charlotte Anna)
출생 1853년 9월 29일
덴마크 코펜하겐 옐로우 팰리스
사망 1933년 2월 26일 (향년 79세)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그문덴
배우자 하노버의 왕세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878년 결혼 / 1923년 사망)
자녀 마리(사생아)[1], 마리 루이제, 게오르크 빌헬름, 알렉산드라, 올가, 크리스티안,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아버지 크리스티안 9세
어머니 헤센카셀의 루이제
형제 프레데리크 8세, 알렉산드라, 요르요스 1세, 다우마, 발데마르
파일:thyra-2.png
<colbgcolor=#FFCCBC> 초상화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혼담과 사생아 출산2.3. 결혼2.4. 말년
3. 여담4. 가족관계
4.1. 조상4.2. 자녀

[clearfix]

1. 개요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9세헤센카셀의 루이제의 3남 3녀 중 3녀이자 다섯째이다. 프레데리크 8세의 막내 여동생.

2. 생애

2.1.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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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648205-1480694260-01.jpg
어린 시절
1853년 9월 29일 코펜하겐의 옐로우 팰리스에서 태어났다. 티라의 위로는 2명의 오빠와 2명의 언니가 있었는데, 어린 시절 언니들인 알렉산드라와 다우마와 함께 방을 썼다고 한다. 부모 모두 왕족이었지만 왕가와는 먼 친척이었기 때문에 평범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프레데리크 7세가 아이 없이 죽은 후 그의 먼 친척인 티라의 아버지 크리스티안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자 집안 분위기도 변화하게 된다. 크리스티안 9세가 왕위를 계승하던 1863년에는 둘째 오빠인 빌헬름 왕자가 그리스의 국왕이 되었고, 첫째 언니 알렉산드라가 영국의 앨버트 에드워드 왕세자와 결혼하며 왕세자비가 되었다. 1866년에는 둘째 언니 다우마알렉산드르 황태자와 결혼하여 러시아의 황태자비가 되었다.
파일:다우마, 알렉산드라, 티라.jpg
왼쪽부터 다우마, 알렉산드라, 티라

2.2. 혼담과 사생아 출산

어머니 루이제 왕비는 티라 또한 언니들인 알렉산드라다우마처럼 좋은 혼처를 찾아주고 싶어했다.

하지만 좋은 혼처를 찾기도 전에 18살의 티라는 빌헬름 프리만 마체르(1841 ~ 1872)라는 기병 장교와 사랑에 빠져 임신해버리는 사고를 쳤다. 그리스 국왕이던 둘째 오빠 요르요스 1세아테네에서 몰래 아이를 낳게 했다. 티라는 공식적으로 황달에 걸려 "아프게" 된 것으로 하고, 1871년 11월 8일 아테네에서 마리라는 딸을 낳았다. 마리는 이후 덴마크 가정에 입양되어 케이트라는 이름으로 살다가 1964년 사망했다.

아이의 생부인 빌헬름 프리만 마체르는 크리스티안 9세와 면담한 후 1872년 1월 권총으로 자살했다. 당시 국왕과의 면담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황 상 국왕이 자살하라고 종용한 듯.[2]

2.3. 결혼

이렇게 비밀리에 출산한 티라는 1877년, 첫아내와 사별한 네덜란드빌럼 3세와 혼담이 오갔지만 티라보다 36살이나 많았기 때문에[3] 그녀가 거절했다. 1878년 12월 하노버 왕국의 왕세자였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4]코펜하겐에서 결혼했다. 하노버 왕국이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편에 가담 한 후 프로이센에 합병되었기 때문에 왕위는 명목상의 지위일 뿐이었지만 두 사람은 3남 3녀를 낳으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비밀 출산의 여파인지 티라는 아기 울음소리에 극히 예민해하며 싫어했다는 말이 있다.[5]
파일:티라 가족사진.jpg
가족 사진

2.4. 말년

아들 3명 중 장남과 차남이 먼저 요절했다. 다행히도 3남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루이제 공주와 결혼해 자녀를 낳아서 현재까지 하노버 왕조의 후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남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왕세자는 1923년 11월 14일 사망하고 티라는 그보다 10년 정도를 더 산 1933년 2월 26일,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그문덴에서 눈을 감았다.

3. 여담

  • 언니들인 알렉산드라, 다우마와 똑같이 생겼다. 굳이 따지자면 둘째 언니인 다우마와 좀 더 비슷하다.
  • 남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조지 3세의 친증손자[6]로서, 법이 개정되기 이전인 1917년까지 영국의 왕자비이기도 했다.[7]

4. 가족관계

4.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덴마크의 티라 공주
(Princess Thyra
of Denmark)
<colbgcolor=#fff3e4,#331c00> 크리스티안 9세
(Christian IX)
<colbgcolor=#ffffe4,#323300>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공작
프리드리히 빌헬름

(Friedrich Wilhelm, Duke of Schleswig-Holstein-Sonderburg-Glücksburg)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베크 공작
프리드리히 카를 루트비히
(Frederick Charles Louis,
Duke of Schleswig-Holstein-Sonderburg-Beck)
쇨리벤의 프레데리케 여백작
(Countess Friederike of Schlieben)
헤센카셀의 루이제 카롤리네
(Princess Louise Caroline
of Hesse-Kassel)
헤센카셀의 카를[8]
(Prince Charles
of Hesse-Kassel)
덴마크의 루이세 공주[9]
(Princess Louise
of Denmark)
헤센카셀의 루이제
(Louise of Hesse-Kassel)
헤센카셀의 빌헬름
(Prince William
of Hesse-Kassel)
헤센카셀의 프리드리히[10]
(Prince Frederick
of Hesse-Kassel)
나사우우징엔의 카롤리네 공녀
(Princess Caroline
of Nassau-Usingen)
덴마크의 샤를로테 공주
(Princess Charlotte
of Denmark)
덴마크의 왕세자 프레데리크[11]
(Frederick,
Hereditary Prince of Denmark)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조피 프레데리카 여공작
(Duchess Sophia Frederica
of Mecklenburg-Schwerin)

4.2.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녀 바덴 변경백비 마리 루이제
(Marie Louise, Margravine of Baden)
1879년 10월 11일 1948년 1월 31일 바덴 변경백 막시밀리안
슬하 1남 1녀
1남 하노버의 왕세손 게오르크 빌헬름
(George William, Hereditary Prince of Hanover)
1880년 10월 28일 1912년 5월 20일
2녀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비 알렉산드라
(Alexandra, Grand Duchess of Mecklenburg-Schwerin)
1882년 9월 29일 1963년 8월 30일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
2남 3녀
3녀 올가 공주
(Princess Olga)
1884년 7월 11일 1958년 9월 21일
2남 크리스티안 왕자
(Prince Christian)
1885년 7월 4일 1901년 9월 3일
3남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Ernest Augustus, Duke of Brunswick)
1887년 11월 17일 1953년 1월 30일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루이제 공주
슬하 4남 1녀[12]
물론 이는 앞서 서술한 사생아 딸(1871 ~ 1964)을 제외한 "공식 자녀"만 표기한 것이다.


[1] 빌헬름이라는 기병 장교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 덴마크 가정에 입양되어 케이트라는 이름으로 살았다.[2] 사실 왕족이든 뭐든 재벌가나 국회의원같은 권세 있는 가문에서도 이런 식의 혼전임신은 엄청난 논란이고 그냥 18살의 어린 나이에 혼전임신을 한 것 자체만으로도 어느 집안이든 뒤집어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3] 전처인 뷔르템베르크의 조피와 사별한 1877년 때 빌럼 3세는 무려 60세였고 티라는 24세였다.[4] 하노버 국왕 게오르크 5세의 장남이다. 한편으로는 올케인 그리스의 올가 왕비의 이종사촌이기도 하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어머니 하노버의 마리 왕비가 올가의 어머니 알렉산드라 대공비의 언니다.[5] 그나마 왕족들은 직접 양육해서 키우지 않고 보통 시녀나 하인들이 키우니 자녀들을 방문하지 않는 이상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일은 일반 가정보다는 적었다.[6] 조지 3세(1738 ~ 1820) - 5남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1771 ~ 1851) - 게오르크 5세(1819 ~ 1878)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1845 ~ 1923). 조지 3세 이후 영국 왕위는 장남 조지 4세, 3남 윌리엄 4세로 넘어가다 4남의 딸 빅토리아에게로 넘어간다.[7] 1917년 이후 국왕의 손자까지만 왕자로 인정하는 것으로 개정되었다. 단, 하노버 왕가는 카를 에두아르트 일가와 마찬가지로 작위 박탈법(1919년 3월 28일 발효, 적국(독일) 편에 서서 싸운 영국 귀족들의 작위를 박탈함)으로 영국의 작위가 몰수된 것이다.[8] 조지 2세의 외손자이다.[9] 프레데리크 5세영국의 루이자의 3녀.[10] 조지 2세의 외손자(4녀 헤센카셀 방백비 메리의 아들)이다.[11] 프레데리크 5세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율리아네 마리의 아들.[12]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왕자, 그리스의 왕비 프리데리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