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적지에서 이름을 딴 태풍에 대한 내용은 난마돌(태풍)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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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2016~ )[1] | |||
<colbgcolor=#000><colcolor=#FFF> 이름 | 한국어 | 난마돌: 동부 미크로네시아 의례의 중심지 | |
영어 | Nan Madol: Ceremonial Centre of Eastern Micronesia | ||
프랑스어 | Nan Madol : centre cérémoniel de la Micronésie orientale | ||
국가·위치 | [[미크로네시아 연방| ]][[틀:국기| ]][[틀:국기| ]] 폰페이 주 템웬 섬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지정번호 | 1503 | ||
등재연도 | 2016년 | ||
등재기준 | (ⅰ)[2], (ⅲ)[3], (ⅳ)[4], (ⅵ)[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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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an Madol / 난 마돌미크로네시아 연방의 폰페이(Pohnpei) 섬 남동부에는 템웬(Temwen)이라는 작은 산호섬이 있는데 이곳에는 12세기 무렵에 화산암을 쌓아 만든 인공섬 92개로 구성된 오세아니아 최대 규모의 해상 유적지가 있다. 유적의 이름 난마돌[6]은 '간격 내'를 뜻하며, 이는 인공섬 사이의 작은 수로와 운하를 지칭한다.
2. 상세
난마돌의 인공섬은 산호섬 위에 있어 수시로 바닷물에 잠기는데 물이 빠지면 무릎 아래로, 물이 차면 허리 높이 수준으로 올라와 카누를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유적 바깥쪽으로 크고 너른 돌을 쌓아 최대 15 m 높이로 거대한 성곽을 형성했기 때문에 유적 안쪽 바다는 대체로 잔잔하다. 돌 자체는 기둥처럼 길게 깎은 현무암 돌을 젠가처럼 수직으로 교차하며 쌓아올렸다. 인공섬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은 마돌 포웨(Powe) 구역에 있는 높이 7.5 m에 달하는 난도와스(Nandauwas)라는 왕족의 무덤이다.난마돌은 이곳에 존재했던 사우델레우르 왕조(Saudeleur Dynasty)가 1628년에 이소켈레켈에게 멸망하면서 버려졌고, 이후 폐허로 방치되었다. 그러다 1899년 독일이 이 섬을 스페인에게서 구입한 후 독일령 뉴기니에 편입하면서 조사가 시작되었고 그 뒤를 이어 이 섬을 점령한 일본과 미국의 학자들이 제한적으로 발굴 및 조사를 하였다.
이러한 고고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폰페이섬에는 이미 1~2세기부터 사람이 거주했고[7]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을 이용하여 난마돌이 12세기 무렵부터 축조되었음을 알아내었다. 이 유적을 만든 사람들은 폰페이섬의 화산암을 채취해 뗏목에 싣고 가져와 쌓는 일을 수 세기에 걸쳐 반복한 것이다. 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이렇게 거대한 석조 유적을 만들려면 섬 자체에 상주하는 인구가 상당히 많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아주 강력한 왕권이 성립되었어야 했을 터이다. 더군다나 난마돌은 위치와 구조상 식량과 식수조차 자체 수급이 불가능하기에 폰페이섬에서 생필품을 공급했을 것이고, 따라서 난마돌의 거주자들은 어마어마한 권력을 지녔으리라 추측한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미크로네시아 일대에는 문자가 전파되지 않아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우델레우르 왕조와 난마돌 유적에 대한 기록도 당연히 없고, 대개 구전설화와 고고학적인 발굴을 토대로 추측과 짐작만 할 뿐이다. 또한 탄소 연대측정법으로 측정한 결과에서도 8~9세기 축조 흔적과 단 900여 년 전의 축조 흔적도 있어, 사우델레우르 왕조가 주로 축조했으되 그 전후로도 이 지역을 신성시한 것은 아닌가 추측한다.
비록 왕국은 사라졌지만 이곳 원주민들에게는 사우델레우르 왕조와 난마돌에 대한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지고, 그들은 지금도 이곳을 신성한 곳으로 여긴다. 이런 점에서는 똑같이 미스터리한 유적이라도 기록은커녕 원주민들에게도 구전 설화조차 남지 않은 나스카 지상화와는 사정이 꽤 다르다. 그러나 이 구전설화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가득하다. 설화에 따르면 난마돌은 마법사 형제가 농업의 신을 섬기기 위해 마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문제는 난마돌이 산호초 위에 세워진 데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바닷물이 들어차는 운하가 가득해서 농사가 불가능하기에 도저히 농업의 신과는 무슨 연관인지 찾을 수가 없다는 것. 현지인들에게는 귀신이 나오는 곳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지인들은 야간에는 난마돌 내부로 들어가지 않고, 주간에도 들어가기 전에는 꼭 악령을 쫒는 의식을 치른다.
이 유적은 수로가 바다에 잠겨 매몰되고 맹그로브 숲이 번성한데다 구조물들의 지반이 침식되면서 세계유산에 지정됨과 동시에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도 등재됐다.
3. 미디어
난마돌의 미스터리를 담은 영상
4. 매체에서 등장
- 대항해시대 온라인에 관련 퀘스트가 존재한다.
- Europa Universalis IV에서는 기념물로 등장한다.
- 정글의 법칙에서 두 차례 탐사했다.
[1] 해수면 상승, 토사 침전, 나무의 성장으로 구조물과 지반 손상 우려[2]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5]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다른 기준과 함께 적용 권장)[6] 원래 이름은 '천국의 암초라는 뜻인 손 난렝(Soun Nan-leng)이었다.[7] 동남아시아에서 이주해온 오스트로네시아인이란 것 말고는, 이 당시 거주한 인류가 어떤 사람들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