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북한의 군인으로, 제1차 연평해전과 제2차 연평해전에 참전하였고 제2차 연평해전에서 사망하였다.알려진 생전 마지막 근무지는 조선인민군 해군 서해함대 사곶 제8전대사령부 등산곶 해군기지 경비전대 7편대 소속의 일명 '등산곶 684호정'. 최종 직책은 684의 함장.[1]
2. 상세
1970년대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제1연평해전 당시 상위 계급의 갑판장 직책으로 참여, 대한민국 해군의 참수리급 고속정과 교전 중 등산곶 684호정의 경비정 정장과 상당수의 승조원이 사망한 뒤, 김정일의 지시로 상위 계급에서 대위로 특별 진급하게 되어 등산곶 684호정의 정장으로 임명되었고, 김정일은 사실 제1연평해전에서 자신들이 참패한 전과를 알고 있었기에 684호정 보강 지시를 내린다.
당시 S·O-1급 초계정 684호정의 선체나 레이더 시스템들은 북한의 면허생산형과 큰 차이는 없으나 사실 제1연평해전 과거 영상에서 확인한 결과 당시의 684호는 85mm 전차포와 37mm 함포 2문, 함교 뒷편 포좌에는 ZPU-4 4연장 고사총 1문이 장착되어 있었으나 대규모 근거리 난전이었기에 포를 쓸 여력이 거의 없었으며, 심지어 포는 쓰긴 했으나 남은 것은 37mm 기관포탄이 전부였으며 염장무 등을 던져댔을 정도로 탄이 만장탄도 아닌 탄 부족상태였다. 더해서 탄 부족과 선체 노후화로 인한 방호력 부족을 알았던 김정일은 선체에 레일을 용접시키고 주요부위에 철갑을 덧대 방호력을 증강하라고 명령했고, 부족한 화력보충을 위하여 저격수 뿐 아니라 73식 대대기관총 사수와 31식 60mm 박격포 운용인원, 7호 발사관 사수들 여럿을 제29해상저격여단 산하 국지전시 승조 병력에서 차출하여 승조시키라는 증원명령을 내렸으며, 이를 김영식 대위에게 하달하여 기름과 탄약, 보조조타기가 있는 후타실 점검까지 맡겨 확실히 준비하게 하였다.
제2연평해전에서 근접 차단기동을 실시하던 참수리 357호정에 85㎜ 전차포로 선제 기습포격을 지시하고, 계속 전투를 지휘하다 전투 중반 이후 참수리 357호정에서 전력 계통이 나간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포를 수동으로 조작하여 발사하던 병기장 황창규 중사가 발사한 40㎜ 함포에 맞고 처치되어 사망했다.
사후 시신 부검 결과, 그의 몸에서 40㎜ 포탄[2]의 것으로 보이는 3개의 큰 파편이 나왔다고 한다.
이후 영웅 칭호를 받은 2차해전의 12명의 전사자들 중 '공화국영웅'이라는 최고칭호를 받았고, 김영식의 세 딸 역시 공화국 영웅의 자손이자 딸이라며 우대받고 있다.
해전 이후, 등산곶 684호정은 김영식 영웅호로 함명을 개명하고 2004년에 선체보강 및 승조원들의 무장과 보호 장구를 추가 및 교체[3] 등의 소폭 개량을 통해서 재정비를 마치고, 또다시 2004년 서해 NLL을 침범했다가 우리측의 경고사격을 받고 북으로 퇴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쭉 소식이 없다가 2013년경 대청급, 상해급과 함께한 훈련사진들과 영상을 공개한 이후로 아직도 운용중임이 밝혀졌다. 물론, 워낙 정보공개가 드문 북한인지라 본래 684를 퇴역시킨 뒤 살아있는 동급함을 차출해 다시 함번을 교체한 것일 수도 있으나 흘넘버 확인결과 김영식 영웅호였기 때문에 운용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영화 연평해전에서는 이대준[4]이라는 이름의 소좌로 등장한다. 배우는 야인시대의 도꾸야마로 유명한 박정학.
[1] 북한에서는 정장을 함장으로 통일하여 부른다.[2] 684정 승조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357정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된다.[3] 2차해전 이후 불새-2호, AT-5 대전차 미사일 솜 재질 파편 방호용 사각형 패드가 삽입된 구명 보호복을 채택 후 추가지급하고 파괴된 선체 장갑을 보강했다.[4] 한때 북한군흉터(…)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다른 조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