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행적
吉三峯(? ~ ?)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에서 언급되는 인물로 조선시대 선조 시기 전라도 일대에서 활동했던 도적이자 반란수괴. 길삼봉은 충청도 천안군[1]에서 노비 소생으로 태어났으며, 힘이 장대해 그 힘을 믿고 전라도 태인현[2]과 남원도호부[3] 일대서 관아를 공격하고 도적질을 일삼아 민관에 큰 피해를 입혔다. 이후 정여립과 손을 잡고 반역을 일으켰다고 한다. 관에서는 역적이 된 길삼봉을 잡으려 했으나 그는 신출귀몰해 절대 잡히지 않았고, 끝내는 잠적해버렸다.
그 악명이 자자하고 조선사를 뒤흔든 역모사건의 주동자인 만큼 조선왕조실록을 포함해, 많은 역사서에서 길삼봉이란 인물이 수차례 언급되고 있으나...
2. 의문
한국사 최대의 미스테리 인물로, 길삼봉의 행적은커녕 그 실존여부조차 불분명하다. 현대뿐만 아니라 조선 당대에도 길삼봉이 출몰해 관아를 습격하고 임금을 상대로 역모를 저질렀는데도 정작 길삼봉을 잡아내지 못하니까, 길삼봉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아다닐 지경이었다. 많은 역사서가 길삼봉의 행적을 기록하였으나 하나같이 모순되는 내용만 이야기하였다."전주(全州) 정여립의 집에 가면 삼봉(三峯)이란 자가 있는데, 나이는 60세쯤 되었고 낯빛은 검으며 몸은 비대하다."
하였고, 혹자는 말하기를,
"삼봉은 나이는 30세쯤 되었고 키는 크며 얼굴은 파리하다."
하고, 혹자는 말하기를,
"삼봉은 나이는 50세쯤 되었고 수염이 길어 배에까지 드리워졌으며 낯빛은 검고 키는 크며 말할 때마다 기침을 한다."
하였다. 그 뒤 적의 무리 김세겸(金世謙)이 말하기를,
"길삼봉은 상장이 아니고 졸병이다. 진주(晋州)에 사는데 나이는 30세쯤 되었고 하루에 3백 리를 달린다."
하고, 또 한 역적은 말하기를,
"삼봉은 본디 나주(羅州)의 양반 집안이다."
하고, 또 박문장(朴文章)이란 자가 있어 말하기를,
"삼봉은 길씨가 아니라 최삼봉(崔三峯)인데 진주의 사노(私奴)이다."
하고, 혹자는 말하기를,
"1년 전에 한 선비가 전주의 만장동(滿場洞)을 지나갔다. 거기에 활쏘기 모임이 있었는데, 최영경이 수석에 앉고 정여립이 차석에 앉았었다."
선조수정실록 선조 23년(1590) 6월 1일 신미
하였고, 혹자는 말하기를,
"삼봉은 나이는 30세쯤 되었고 키는 크며 얼굴은 파리하다."
하고, 혹자는 말하기를,
"삼봉은 나이는 50세쯤 되었고 수염이 길어 배에까지 드리워졌으며 낯빛은 검고 키는 크며 말할 때마다 기침을 한다."
하였다. 그 뒤 적의 무리 김세겸(金世謙)이 말하기를,
"길삼봉은 상장이 아니고 졸병이다. 진주(晋州)에 사는데 나이는 30세쯤 되었고 하루에 3백 리를 달린다."
하고, 또 한 역적은 말하기를,
"삼봉은 본디 나주(羅州)의 양반 집안이다."
하고, 또 박문장(朴文章)이란 자가 있어 말하기를,
"삼봉은 길씨가 아니라 최삼봉(崔三峯)인데 진주의 사노(私奴)이다."
하고, 혹자는 말하기를,
"1년 전에 한 선비가 전주의 만장동(滿場洞)을 지나갔다. 거기에 활쏘기 모임이 있었는데, 최영경이 수석에 앉고 정여립이 차석에 앉았었다."
선조수정실록 선조 23년(1590) 6월 1일 신미
실존인물인지 조차 알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가설이 나오고 있는데, 선조 혹은 정철이 정여립의 난이라는 정치적인 시나리오를 짜 정적들에게 역모 혐의를 씌워 날려버리기 위해 가공의 인물인 길삼봉을 만들어냈단 설이 있다. 정여립은 대동계(大同契)라는 엘리트 사교모임을 주선했는데, 이러한 사조직 결성은 정여립을 역모죄로 몰아가기에 딱 좋은 행적거리이기도 했다.
정여립의 난 진행 과정을 보면 선조가 정여립을 자결한 뒤에 진안 죽도에 대해 아무런 사전조사 없이 끝내고 선조가 왕권을 위협할 예비 권간들을 지목하며 제거하려고 했단 점, 서인 세력이 정여립의 난이 발생하기 전 해당 사건을 이미 짐작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 사서에 남아 있다. 그래서 선조 또는 정철이 정여립의 난을 이용해서 선조에 의해 왕권을 위협하는 권간으로 지목된 정언신, 김우옹, 이발, 백유양, 정개청, 최영경을 제거해서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큰 그림을 짠 게 아닐까 하는 해석도 있다. 특히나 이 사림들이야말로 4대 사화의 피해자이자 주인공이니만큼 어떻게 일을 처리하면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정황 증거도 있다.
또다른 가설은 한때 '삼봉'이라는 호를 다고 알려진 진주의 선비이자 조식의 제자로서 이름 높은 동인이었던 최영경을 모델로 왜곡된 이미지를 더해 의도적으로 길삼봉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특히 최영경은 정철이랑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아, 최영경이 길삼봉이라고 관에 잡혀 들어오자 관리들 사이에선 '정철이 최영경을 죽이려 길삼봉 소문을 냈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녔다. 게다가 실제 최영경의 호는 수우당(守愚堂)이지 삼봉이 아니다.어찌되었든 실제 역사에서 수많은 유생들이 정여립의 난 역모 수괴인 길삼봉으로 몰리거나 길삼봉과 가까이 지냈다는 물증도 없는 이유로, 억울한 누명을 받고 처형당했다. 실존여부조차 불분명하고 그 존재 역시 너무나 미스테리한 '길삼봉'이란 인물은 현대 역사가들에게 특정 정치세력이 정여립의 난을 고의로 조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의심을 품게 하였다.
3. 길삼봉의 정체?
임진왜란도 끝난 1601년 뜬금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길운절(吉雲節)이라는 사람이, 정여립의 첩의 사촌이었던 소덕유(蘇德兪)를 찾아가 모반을 도모한다. 소덕유는 운좋게 정여립의 난때 처벌받지 않았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중이 되었다. 경상도 선산으로 가 산성을 쌓는데, 여기서 길운절을 만나 교유했었다. 두사람은 제주도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점을 이용해 반란을 일으키기로 하고 먼저 소덕유가 제주도로 내려가 납마첨지 문충기(文忠基), 훈도 홍경원(洪敬源), 교생 김정걸(金挺傑)‧김대정(金大鼎)‧김종(金鍾)‧이지(李智) 등을 끌어들였다. 마침 제주목사 성윤문(成允文)이 제주성을 증축하면서, 사람들을 혹독하게 대해 민심을 잃은 상태였다. 소덕유는 때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해 1601년 길운절을 제주로 불러들였고, 길운절은 조카 최구익(崔九翼)과 함께 제주로 들어온다. 하지만 기생 구생(具生)이 이들의 역모를 엿들어 길운절을 추궁하자, 길운절은 소덕유를 배신해 역모를 고변한다. 결국 소덕유와 역모를 꾀한 18명은 모두 능지처참되었고, 길운절과 최구익은 역모를 고변한 것이 인정 받아 참수되었다. 길운절은 머리에 뿔이 3개 있다고 해서 아명이 삼봉이었다고 해, 그가 길삼봉이라는 추측이 있다.4. 대중매체에서
- 소설 《칼의 노래》에서는 이순신의 회상에서 실체를 알 수 없는 허깨비라고 언급된다. "마침내 길삼봉은 누구냐?라는 질문은 누가 길삼봉이냐?라는 질문으로 바뀌"었고, 최초로 지목을 당한 정여립이 자결하자 길삼봉이라는 허깨비는 실체로 둔갑했으며 피를 부르기 시작했다."라고 적고 있다.
전자는 그저 특정인인 길삼봉에 대해 묻는 질문이나, 후자는 역적 길삼봉이 누구인지 색출하려는 질문이다. 곧 모두가 용의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서, 동지와 적을,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이데올로기적 신문(訊問)이다.# 거기에 더해 이순신은 길삼봉은 아마도 임금 자신일 것이라고 독백한다. - 소설 율곡검원의 소드마스터에서는 길쌈질을 워낙 잘한다하여 길쌈봉이라 하던 여성이 길삼봉이라 불렸다고 한다.
- 이두호의 작품 '《파행》에서는 일본에서 온 사람으로 추측된다.
- 만화 언데드킹에서 주요 악역 중 하나로 등장한다.
- 배상열 작가의 7권짜리 소설 풍운에서는 사실 길삼봉은 '지리산 봉우리'란 단어를 약간 바꾼 것에 불과하다고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