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 |||||||||||||||
1번 f단조 | 2번 B장조 '10월 혁명에 바침' | 3번 E♭장조 '5월 1일' | 4번 c단조 | 5번 d단조 | |||||||||||
6번 b단조 | 7번 C장조 '레닌그라드' | 8번 c단조 | 9번 E♭장조 | 10번 e단조 | |||||||||||
11번 g단조 '1905년' | 12번 d단조 '1917년' | 13번 b♭단조 '바비 야르' | 14번 | 15번 A장조 |
정식 명칭: 교향곡 제9번 E플랫장조 작품 70
(Sinfonie Nr.9 Es-dur op.70/Symphony no.9 in E flat major, o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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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Sinfonie Nr.9 Es-dur op.70/Symphony no.9 in E flat major, Op.70 |
작곡가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
작품번호 | Op.70 |
장르 | 교향곡 |
1. 개요
쇼스타코비치의 아홉 번째 교향곡. 흔히 '9번' 이라 함은 9번 교향곡의 저주를 상징하는 숫자이자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을 흔히 일컫는 숫자이기도 하다. 독소전쟁 막바지에 왜 그렇게 당시 적국이었던 독일 혹은 오스트리아에서 파생된 징크스를 소련 고위층 나으리들께서 의식했는지는 모르겠지만당초 쇼스타코비치도 8번 이후 후속 교향곡을 꽤 거창하게 쓰려고 했다는 정황 증거들이 있다. 1945년 초에 쇼스타코비치의 지인들이나 음악원 제자들은 1악장만 10여 분이 요구된다는 설명을 듣고 꽤 규모가 큰 곡으로 추측했고, 합창이나 독창도 요구된다는 인터뷰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6번이 될 예정이었던 대규모 교향곡이 버로우탄 것과 마찬가지로, 이 계획도 무슨 이유인지 파기되고 7월 말에 다시 다른 형태의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2]
그렇게 해서 8월 30일에 완성시킨 것이 이 교향곡이었는데, 쇼스타코비치의 진의가 무엇이었건 간에 이 곡으로 인해 쇼스타코비치는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으로 당했던 다굴의 소용돌이에 두 번째로 휘말리게 되었다.
2. 곡의 형태
악장 개수는 일단 8번과 마찬가지로 다섯 개고, 3악장부터 마지막 5악장까지는 쭉 이어진다는 아이디어도 꽤 비슷해 보인다. 그렇다고 규모까지 붕어빵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고, 오히려 1번 수준으로 상당히 날씬한 곡이 되었다.1악장은 그 동안의 형식 파격을 생각하면 오히려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고전 소나타 양식을 상당 부분 고수하고 있다.[3]바이올린의 가벼운 연주로 시작되는 첫 번째 주제와 타악기의 행진곡 스타일 리듬 위에서 경쾌하게 연주되는 피콜로의 두 번째 주제가 제시되고, 이 제시부는 도돌이표까지 붙어 반복되고 있다.
두 주제를 버무리는 발전부도 예상된 수순으로 따라나오고, 그 길이도 전형적인 고전풍으로 그리 길지 않게 되어 있다. 그래도 그 안에서 동기끼리의 연계나 충돌이 빚어지며 자연스럽게 클라이맥스를 연출하고, 비교적 작은 음량으로 연주된 첫 번째 주제가 이번에는 세게 연주되며 재현부에 진입한다. 다만 이 재현부에서는 고전 시대처럼 주제 두 개를 얌전히 내어주지는 않고, 그 안에서 또 다른 발전이 계속되는 베토벤풍 도식을 취하고 있다.
2악장은 뒷부분이 짧게 단축된 3부 형식 또는 코다가 붙은 2부 형식으로 볼 수 있는데, 단조 조성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7번의 3악장에서 나오는 낭창풍의 장엄함이나 8번의 4악장에서 나오는 우울한 조용함으로 일관하는 느낌은 전혀 없다. 적절한 수준에서 야릇한 우울함을 느낄 수 있는데, 목관악기 위주로 간결하게 진행되는 첫 부분과 약음기 끼운 현악기들이 반음 진행 위주로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중간부, 첫 부분보다 템포를 좀 더 떨어뜨리되 훨씬 간결하게 마무리하는 종결부까지 고전적인 절도를 지키고 있다.
3악장은 꽤 빠른 템포의 스케르초인데, 다만 전통적인 아치형 3부 형식 스케르초는 아니고 뒷부분이 상당히 단축되어 있어서 2악장처럼 2부 형식+코다 혹은 해체부로 볼 수도 있다. 첫 번째 부분은 클라리넷이 빠르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음형의 주제로 시작하며, 이 주제에서 파생시킨 발전부가 뒤를 이어 단일 주제로 구성된 형태를 취한다. 팀파니와 금관악기들의 짤막한 이행부를 거쳐 중간부에서는 빠른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현악기들의 반주 위에서 트럼펫 솔로가 낭랑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악기를 클라리넷에서 피콜로로 바꾸어 악장 첫머리로 돌아가나 싶지만, 그냥 주제 제시 선에서 끝내고 현악기들의 이행부를 거쳐 곧장 매우 짧은 4악장으로 이어진다. 구성은 매우 단순한 편이어서, 트롬본과 튜바가 얼핏 위압적이고 무거워 보이는 짤막한 악구들을 연주한 다음 바순 솔로가 매우 인상적인 긴 솔로를 연주하는 응답식의 진행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솔로 악구는 바순 주자들에게 꽤 어려운 대목이라서, 관현악단 오디션에서 이 부분을 주고 불어보라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바순 솔로가 끝날 즈음 마찬가지로 곧장 5악장으로 이어지며, 여기서도 첫 번째 주제는 그대로 바순이 제시한다. 약간 폴카 분위기가 나는 경쾌한 선율로, 바이올린이 이어받아 한 차례 더 연주한 뒤 오보에가 좀 더 부드럽지만 반음이 많이 들어가 좀 알쏭달쏭한 느낌의 두 번째 주제를 연주한다. 그 뒤 첫 번째 주제가 반복되고 중간부로 들어간다.
중간부는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세 번째 주제로 시작되고, 여기에 첫 번째 주제와 두 번째 주제가 섞여들어가면서 발전부 성격을 강하게 띄기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음량이 점차 커져 바순이 연주했던 첫 번째 주제를 트롬본과 튜바, 저음 현악기들이 두드러지게 크게 연주하며 재현부로 들어간다.
세 번째 주제도 피콜로의 연주로 뒤이어 재현되고, 곧 이 짤막한 교향곡에는 다소 길고 장황해 보이는 종결부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탬버린과 트라이앵글, 심벌즈 등의 고음 타악기들이 가볍게 반주하는 가운데 템포도 더 빨라져 속도감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6번 3악장 코다에서 보여주는 난리버거지스러운 면은 없고, 아주 밝고 간결하게 마무리된다.
악기 편성은 피콜로/플루트 2/오보에 2/클라리넷 2/바순 2/호른 4/트럼펫 2/트롬본 3/튜바/팀파니/심벌즈/스네어드럼/베이스드럼/트라이앵글/탬버린/현 5부(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플루트족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그리 크지 않은 2관편성을 취해 관현악 규모도 이전 교향곡들보다 훨씬 작아졌다.
3. 초연과 출판
1945년 11월 3일에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지휘의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초연했는데, 의외로 초연 당시의 반응은 좋은 편이었고 악보도 초연 직후 소련 국립음악출판소에서 별 무리 없이 간행되었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 자신은 좀 달리 본 것 같은데, 지인들의 증언으로는 사석에서 '연주자들은 연주하면서 기쁨을 느끼겠고, 비평가들은 들으면서 박살내는데 기쁨을 느낄 곡이겠군' 이라고 꽤 냉소적으로 예견했다고 한다.4. 평가
쇼스타코비치의 예견은 초연 후 불과 1년도 안되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식으로 나타났는데, 1946년 초가을에 바노 무라델리라는 듣보잡 작곡가가 쓴 오페라 '위대한 친선' 을 강철의 대원수 동지께서 혹평하면서 시작된 대대적인 음악계 정화운동(이라고 쓰고 숙청이라고 읽음)에 얽혀 하루아침에 불쏘시개 수준으로 평가가 떨어졌다.[4]그나마 서방에서는 '순수한 느낌의 승전 감정을 담은 작품' 이라고 비교적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그것이 소련에서 행해진 레이드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결국 이 작품은 1948년에 검열 당국에 의해 금지곡으로 지정되었고, 이 조치는 대원수님이 떡실신하신 뒤에 이어진 해빙기까지도 지속되어 흐루쇼프 집권기가 되어서야 풀렸다.
소련 정부에서 느낀 '승전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곡이 되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그 전까지는 기존 교향곡 형식에서 꽤 일탈한 대규모 형태의 곡들을 주로 쓰던 쇼스타코비치가 왜 여기서는 이렇게 간결하고 가벼운 느낌의 곡을 썼는지에 의문과 흥미를 갖는 이들도 많았다. 작곡 당시에 쇼스타코비치가 하이든의 교향곡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는 정황도 있는데, 자기 작품에 대해 말을 많이 아낀 쇼스타코비치의 성향 때문에 진의는 오리무중이다.
진지한 얘기는 아니고, 혹자는 이러한 예상보다 가벼운 풍의 작곡이 9번 교향곡의 저주를 벗어나려는 쇼스타코비치 나름의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마의 9번 교향곡이라고 자기도 거창하고 웅장하게 작곡했다가는 자칫 본인도 저주에 걸릴 수 있으니(병이나 사고, 혹은 스탈린에 의한 숙청으로든), 9번을 상대적으로 평범하게 써서 피해갈 수 있었다는 것.
일단 음악적으로 보면 고전적으로 긴축한 형식을 취했음에도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신랄함 같은 개성 또한 유지하고 있고, 형식과 내용이 굉장히 안정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이 때문에 지휘자나 관현악단의 정치적 견해나 곡에 대한 사회적 해석에 따라 연주가 천차만별인 다른 쇼스타코비치 교향곡들보다 해석차가 그리 많지 않은 꽤 드문 곡이기도 하다.
그리고 실제 연주 무대에 필요한 인원수를 감안해도 정규 편성의 관현악단으로 연주가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쇼스타코비치 교향곡들 중 연주 빈도가 꽤 높은 곡들 중 하나로 집계되고 있기도 하다.
[1] 발레리 게르기예프지휘,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연주[2] 다만 이 때 작성한 1악장의 악보는 그럭저럭 연주 가능한 형태로 남아 있어서, 2006년에 일부 보완을 거쳐 2008년에 초연했고 1년 뒤인 2009년에는 CD로도 발매되었다. 제목은 '교향적 악장(또는 단편)'.[3] 사실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이 교향곡에 있어 성공적인 알레그로를 쓴 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는데, 형식미라는 측면에서 이 9번 교향곡의 알레그로는 쇼스타코비치가 썼던 가장 모범적인 1악장이라고 볼 수 있다.[4] 이 난장판의 원인을 제공한 무라델리는 이후 충실하게 자아 비판을 하면서 서기장 동무의 분노에서 벗어났고, 오히려 쇼스타코비치나 프로코피에프, 하차투리안, 먀스콥스키 등의 작곡가들이 결정타는 거의 다 맞는 형국이 되었다. 쇼스타코비치 자신은 무라델리를 '그저 구실만 제공한 바보'로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