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15 06:16:29

교통국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장.svg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30066><colcolor=#fff>문서한성정부 · 대한국민의회 · 연통제 · 교통국 · 삼균주의 · 독립신문 · 수립 기념일 · 한인애국단 · 한국독립당 · 법통 논란 · 대일선전성명서
군사기구광복군사령부 · 육군주만참의부 · 한국광복군
사건국제공산당 자금사건 · 김립 피살 사건 · 위임통치 청원 사건 · 국민대표회의 · 사쿠라다몬 의거 · 훙커우 공원 의거 · 단파방송 밀청사건
인물김구 · 안창호 · 지청천 · 김원봉 · 박은식 · 김규식 · 이승만 · 송병조 · 윤기섭 · 이시영 · 유동열 · 신익희 · 이상룡 · 양기탁 · 이동녕 · 이동휘 · 홍진 · 조소앙 · 여운형 · 오영선 · 최동오 · 이봉창 · 윤봉길 · 문일민
청사상하이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 항저우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 전장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 창사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 충칭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 경교장
역대 수반 · 지역별 임시의정원 구성}}}}}}}}}


1. 개요2. 설치3. 와해

1. 개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부 산하의 통신연락 기구이다. 연통제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금 수합 임무를 맡았다.

2. 설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수립 이후 국내외 동포들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을 선전하고 독립운동 단체 및 독립운동가와의 연락 및 접촉, 독립운동 자금 수합을 위한 조직으로 교통국을 설치하였다.

교통국은 1919년 5월 임시정부 내무차관 조완구가 교통부에 안전한 기관 4개를 설치한다는 시정방침을 밝혔는데, 교통부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교통국은 1919년 5월 12일 교통부 안동지부 사무국[1]을 영국 국적의 조지 쇼(George L. Shaw)가 경영하는 무역회사 이륭양행에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같은 해 8월에 임시지방교통사무국장정을 공표하면서 교통국 설치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임시지방교통사무국장정에 의하면, 교통총장이 교통국의 위치를 설정하고 교통사무국이 우편사무와 독립운동가의 접선 사무를 겸임하며, 직원은 교통국장 1명, 참사 2명, 서기와 통신원을 약간 두었다. 이후 1920년 1월 13일에 임시지방교통사무국장정을 개정하여, 교통국장과 참사를 교통총장의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서기와 통신원은 교통국장이 직접 선정하는 것으로 개정되었다.

교통국은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함경남도, 황해도, 평안도 지방, 서울에 설치되었지만, 그 이외의 지역은 일제의 철저한 감시로 인해 교통국이 설치되지 못하였다.

3. 와해

연통제와 함께 설치된 교통국은 국내 독립운동 세력 결집과 자금 모집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일제 당국의 철저한 감시와 색출로 많은 탄압을 받았다. 교통국은 1922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통신기관으로 존속하였으나 조직이 이미 여러 차례 와해되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결국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줄이 끊겨버렸다. 이 때문에 한동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역량이 위축되기도 했다.


[1] 경상북도 안동시가 아니라 오늘날 단둥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