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이즈미 가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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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대 | 고이즈미 준야 (데릴사위) | |||
| 3대 | 고이즈미 준이치로 | |||
| 4대 | <rowcolor=#D7003A> 장남 | 차남 | ||
| 고이즈미 고타로 | 고이즈미 신지로 | |||
| 처 타키가와 크리스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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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정치인, 고이즈미 신지로의 가족관계를 설명하는 문서.고이즈미 가문은 4대째 세습중인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 집안이다. 초대 고이즈미 마타지로 이후 고이즈미 준야[1], 고이즈미 준이치로, 고이즈미 신지로로 이어지며 네 세대 동안 같은 지역에서 정치 활동을 이어 왔다.
2. 상세
초대 고이즈미 마타지로는 야쿠자 조직 고이즈미구미(小泉組)의 보스로 활동하다가 자유민권운동에 투신하며 정계에 입문해 메이지 시대 말부터 쇼와 시대 중기까지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12선 중의원 의원, 중의원 부의장, 체신대신, 요코스카시장, 귀족원 의원을 역임했다.
2대 고이즈미 준야는 마타지로의 딸과의 결혼 조건으로 데릴사위가 되어 그 뒤를 이었다. 9선 중의원 의원, 법무정무차관, 18-19대 방위청 장관을 역임했다.
3대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제 87-89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했다. 고이즈미 가문하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4대 고이즈미 신지로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계에 입문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현재 6선 중의원 의원이자 방위대신이다.
3. 가족관계
-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 (1942 ~ ) / 어머니 미야모토 가요코 (1957 ~ )
아주 어릴 적에 아버지 준이치로와 어머니 카요코가 이혼했다. 2016년 일본 여성지 <이키이키> 4월호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준이치로와 카요코는 14살 차를 극복하고 결혼했다고. 준이치로가 만 36세, 부인 카요코가 만 22세.
그러나 결혼 4년 만인 1982년, 어린 두 아들을 두고 카요코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이즈미 가문을 떠났다. "셋째를 임신 중이었는데도 이혼을 감행할 정도로 성격 차가 컸다고만 말했다"라고. 부부 사이뿐 아니라, 카요코와 고이즈미 일족 사이에서도 갈등이 깊었다는 말이 있다. 이혼 후 첫째 고타로와 둘째 신지로의 친권은 아버지 준이치로에게, 태중의 셋째는 어머니 카요코에게 친권이 돌아갔다.
부모의 이혼 이후, 고타로와 신지로는 고모들의 손에 자랐다. 준이치로의 첫째 누나 미치코(道子)도 이혼해 친정 고이즈미 가로 돌아와 있었고, 둘째 누나 다카코(隆子)도 친정과 긴밀히 교류했고, 셋째 누나 노부코(信子)는 아예 결혼하지 않고 준이치로의 정치와 가사를 돕고 있었다. 고타로와 신지로는 고모들과 가정부들의 보살핌 속에 자라났으나 어머니와는 만나지 못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미치코 고모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으나, '고모가 나에겐 친엄마나 다름없으니 상관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
한편 카요코는 이혼 이듬해인 1983년에 3남 요시나가(佳長)를 낳았고, 요시나가는 어머니 카요코의 성씨를 따라 '미야모토 요시나가'가 되었다.
이키이키 인터뷰에 응한 카요코는 "당시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다"라고 술회했다. 이혼 후 고이즈미 집안은 카요코와 요시나가가 고타로와 신지로를 만나지 못하게 했고, 요시나가가 커서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라고 청했지만 역시 거절했다. 2001년 할머니인 고이즈미 요시에(小泉芳江)가 91세의 나이로 죽었을 때도, 고이즈미 일족은 카요코와 요시나가의 문상을 거절할 정도로 매몰찼다. 무작정 장례식장을 찾아간 카요코와 요시나가는 결국 잠깐의 문상을 허락받았지만 문상이 끝나자마자 쫓겨나듯 떠나야 했다고 한다.
준이치로와 카요코 모두, 이혼하고 [age(1982-01-01)]년이 지난 지금까지 재혼하지 않았다. 준이치로는 독신으로 3번의 총리 연임을 수행했고, 정계 은퇴 후인 2010년에야 4부자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고. 2013년 요시나가가 결혼할 때는 어머니 카요코까지 총 5명이 모였다고 한다. "만감이 교차했다"는 인터뷰를 덧붙였다.
4. 여담
- 할머니 고이즈미 요시에는 예전 입헌민정당의 간사장 고이즈미 마타지로의 외동딸이었다. 마타지로는 야쿠자 출신으로 정계 거물이었다. 하마구치 내각 - 제2차 와카쓰키 내각에서 체신대신을 지냈는데, 몸에 문신이 있어서 '이레즈미(문신) 대신(いれずみ大臣)'이란 살벌한 별명이 붙었다고. 영화 청연의 주인공인 실존인물 비행사 박경원을 지원한 사람이 바로 그다.
- 그런데 신지로의 할아버지 사메지마 준야는 야쿠자의 딸인 요시에와 눈이 맞아서 그녀와 '사랑의 도피'를 했다. 원래 사메지마 준야는 가고시마현 서민 출신으로 야학을 다녔고, 얼마 안 되는 학업을 마치고는 옷가게 점원, 심지어 서울 조선은행에서 차 심부름을 하는 사환 일을 하기도 했다. 이후 오사카에서 공장을 전전하다가 가나가와현의 아사히 글라스 공장으로 오게 된다. 거기서 운명의 사랑을 만난 것. 마타지로는 체면 다 내려놓고 "딸아, 제발 돌아와라"라고 신문 광고까지 냈다. 원래 명문가의 아들과 정략결혼을 시키려 했던 딸을 뺏긴 마타지로는 결국 사메지마 준야에게 데릴사위로서 자신의 성을 따르고 자신의 대를 잇는다는 조건으로 결혼을 허락했다. 그는 고이즈미 준야로 개성하고 1937년 입헌민정당 후보로 고향 가고시마에서 초선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된다.
- 1945년 조부 준야는 패전 후 정계에서 일단 물러나 있었다가 기시 노부스케 밑으로 들어갔다. 1952년 장인과 함께 개진당으로 옮겨 장인의 지역구였던 가나가와현에 출마해 당선된다. 고이즈미 가문의 지역구는 이때부터 가나가와현 제11구가 된다. 하토야마 이치로와 함께 일본민주당(1954년) 결성에 참여했다가 1955년 보수 대연합 때 자민당 결성 멤버가 된다. 제2차 하토야마 이치로 내각에서 법무성 정무차관, 1964년에는 방위청장관에 올랐다. 1965년 자위대의 한반도 파병 가능성을 모색한 <미쓰야 연구>를 폭로하고 이듬해 급사했다. 지역구는 아들 준이치로가 세습했다.
- 2019년 8월 7일, 혼전임신한 타키가와 크리스텔과 함께 총리관저를 찾았다. 방문한 이유는 "아베 신조 총리 및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인사하기 위해서"라고 했으나, 결국 목적은 언론에 두 사람의 결혼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총리관저 방문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밝힌 총리와 관방장관과의 후일담을 보면, 역시나 전혀 소원한 모습이 없다. 아베는 "결혼(생활)은 쉽지 않아. 축하합니다"라고 말했다고. 자신을 환경대신으로 밀었다는 스가 관방장관에게도 인사했다.
- 총리관저 앞에 도열한 관저 담당 기자들에게 타키가와 크리스텔의 임신과 결혼 계획을 밝혔다. 교제는 2018년 1월에 시작해, 출산 예정은 2020년 초라고. 형 고이즈미 고타로도 인터뷰에서 "19년 6월에야 동생과 크리스텔의 교제 사실을 알았다"라고 말했다. 동생이 독신주의인 줄 알았고, 신지로는 부모를 보면서 결혼 생활에 자신이 없다고 말했었단다. 어렸을 때부터 "결혼뿐만 아니라 여성과 사귀는 것도 포기하겠다"라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고. "정말 오랜만에 신지로에게서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이 아닌, 어릴 때 신지로의 모습을 보았다"라고 기쁜 얼굴로 덧붙였다.
- 신지로 본인이 말하길 ''그녀와 함께 있으면 '정치인 고이즈미 신지로'가 아니라 '인간 고이즈미 신지로'가 될 정도로 편하다. 나는 항상 갑주를 입고 있는 상태와 같았으나, 크리스텔의 앞에서는 '갑주를 벗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는데, 말을 중언부언 길게 하는 신지로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 말이라 빅웃음을 주었다. 2020년 1월 17일, 아들이 태어났다. (현재 [age(2020-01-17)]세)
- 2020년 2월 5일, 장남의 이름을 미치노스케(道之助)라고 지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형과 자신을 키워준 첫째 고모 미치코(道子)를 기리는 의미라고 한다.
- 2024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면서 자신의 복잡한 가정사를 언급한 뒤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자민당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부모님이 어렸을 때 이혼했는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이혼 사실을 몰랐다. 어머니인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은 고모(고이즈미 전 총리의 친누나)였다. 형제는 형(배우인 고이즈미 고타로)뿐인 줄 알았는데 동생이 더 있었다. 대학생 때 처음으로 성이 다른 동생과 만났으며 아버지랑 꼭 빼닮아서 깜짝 놀랐다. 순식간에 그동안의 거리와 공백이 메워졌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고모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드러내며 "나를 낳아준 어머니와 만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만나면 생모 대신 나를 키워준 고모를 배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고모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결혼 후 아들이 태어나고 아버지가 된 뒤 달라졌다며 "올해 처음으로 엄마를 만났다. 자세하게는 말하지 않겠지만 만나서 좋았다. 43년 동안 (생모와) 만나지 않았고 성도 다르지만, 그래도 가족은 가족이다"라고 말했다.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