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3년 페루 사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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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페루 친위 쿠데타 시도 El intento de autogolpe de Estado de Perú de 2022 2022 Peruvian self-coup attempt | |
체포되는 카스티요 대통령 | |
일시 | |
2022년 12월 7일 | |
장소 | |
[[페루| ]][[틀:국기| ]][[틀:국기| ]] | |
원인 | |
페루 의회의 대통령 탄핵안 | |
대치 세력 | |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 | 페루 의회 자유 페루 페루 국가경찰 페루군 디나 볼루아르테 부통령 |
피해 | |
사상자 없음 | 사상자 없음 |
결과 | |
친위 쿠데타 실패, 카스티요 전 대통령 파면 및 구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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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22년 12월 7일에 페루에서 발생한 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시도로 페루 의회에서 탄핵을 시도하자 이에 대응하겠다고 벌어진 일이었다.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12월 7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의회를 해산하고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비상정부를 수립해 헌법 개정 전까지 대통령령으로 통치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1992년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와는 달리 실패로 끝났다. 사실 페드로 카스티요가 참고할 만한 인물들인 우고 차베스나 에보 모랄레스, 라파엘 코레아 모두 기존의회와 별도로 제헌의회를 창설했을 때 국민들의 지지율이 높아 집권여당이 전부 압승을 거두었을 정도로 지지율이 높았고 페루에서도 의회 해산을 했을 때 후지모리의 지지율은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전혀 낮지 않았으며 똑같이 탄핵당한 마르틴 비스카라는 의회해산을 했을 때 부패한 의회에 맞선 투사라는 이미지가 크게 작용하여 지지율이 무려 80%를 넘었을 정도로 고공행진했다. 그러나 페드로 카스티요의 지지율은 30%대 정도에 불과했고 정무감각 또한 앞선 인물들과 달리 서툴러서 여당인 자유 페루와도 관계가 틀어졌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부에서조차 호응해 주는 사람들이 그리 없었다. 결국 이 친위 쿠데타의 결말은 뻔할 뻔자였다.
페루 의회는 물론 페루군과 헌법재판소, 여당이었던 자유 페루[1] 일각에서도 격렬하게 반발했으며 일부 장관들까지 이에 반발해 사임했다. # 볼루아르테 부통령은 카스티요 대통령이 의회 해산을 시도하자 “헌법 질서를 붕괴하려는 결정을 거부한다”며 카스티요의 행위를 쿠데타라고 비판했다. #
2. 결말
결국 몇 시간만에 페루 의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됨으로써 카스티요 대통령은 파면되었고 볼루아르테 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카스티요의 친위 쿠데타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카스티요의 파면으로 디나 볼루아르테 제1부통령이 대통령 직무를 승계했다.12월 9일 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 변호인측은 구속이 부당하다며 불구속 및 석방을 신청하였으나 리마 제2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었고 사안의 중대성을 위해 구속기한을 1주일 연장하였다. 페루 현지 매체에 따르면 페루 헌법에 따라 카스티요 前 대통령은 내란 및 폭동 혐의로 최대 2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페루 의회도 신뢰도가 낮을 뿐더러[2] 애초에 친위 쿠데타 시도가 일어난 배경도 탄핵 시도에 대응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탄핵 찬반 여론 자체는 팽팽했고 의회도 당장 해산해서 재선거 치르자는 여론이 대세였다.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도 마뜩치 않지만 의회는 더 싫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예상 외로 시위가 강하게 벌어졌다.
친위 쿠데타 시도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찬성 33%, 반대 63%로 반대가 두 배 정도 나왔다. #
2.1. 훌리아카 대학살
시위 도중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해 훌리아카에서 사망자 18명이 발생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훌리아카 대학살 문서 참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