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1 00:19:49

2019다255416

대한민국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
파일:0007557602_001_20240523142610321.jpg
사건번호 대법원 2024. 12. 19. 선고 2019다255416 판결
선고일 2024년 12월 19일
재판장 조희대
주심 노태악
판결요지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른 국가귀속결정이 확정판결로 취소된 경우, 개정 친일재산귀속법 부칙 제2항 단서에 따라 종전 국가귀속결정의 대상재산에 대하여는 친일재산의 인정 범위를 확장한 신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다수의견 8인 (조희대, 오석준, 서경환, 권영준, 엄상필, 신숙희, 노경필, 이숙연)
반대의견 5인 (김상환, 노태악[1], 이흥구, 오경미, 박영재)

1. 개요2. 배경3. 쟁점4. 판결 내용
4.1. 다수의견(법정의견)4.2. 반대의견
5. 관련 문서

1. 개요

2024년 12월 19일에 선고된 대한민국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구(舊) 친일재산귀속법상 친일재산이 아니라는 행정소송 판결이 확정된 재산 및 그 동종재산을 친일재산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친일재산귀속법의 개정이 이루어진 경우, 당초 판결이 확정되었던 재산권자를 상대로 국가가 재산권 이전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이다. 결과적으로 대법관 8 대 5의 다수의견대로 그러한 민사소송은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판결이 났다.

2. 배경

조선왕실 종친 이해승일제강점기였던 1910년 일제로부터 후작의 작위를 받은 친일반민족행위자였고, 이에 따라 2007년 친일재산조사위원회는 이해승이 일제강점기 당시 취득한 재산을 친일재산으로 결정(=국가귀속결정)하여 그 상속자인 이우영(이해승의 손자)의 재산을 친일재산귀속법 규정에 따라 국가에 귀속시켰다.

그런데 당시의 친일재산귀속법은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자'의 재산만이 친일재산이라고 규정하고 있었음이 문제되었다. 이해승은 왕실의 종친이었기에 작위를 받은 것이었지, 한일합병에 공으로 작위를 받은 것은 아니었기에 이우영은 "국가가 가져간 내 재산은 친일재산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국가귀속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고, 2010년 이우영의 승소가 법원에서 확정되었다.

이 확정판결 이후 친일파 후손의 재산축적에 관한 부정적 여론이 고조되자 국회는 2011년 친일재산귀속법상 친일재산의 기준인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자' 부분의 규정을 그저 '작위를 받은 자'로 축소하는 개정을 단행하였고, 결과적으로 친일재산이 되기 위하여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자의 재산'일 필요가 없게 됨으로써 친일재산귀속법상 친일재산에 해당하는 범위는 더 넓어지게 되었다. 개정법 규정만 보자면 이해승의 재산은 이제 친일재산에 해당하게 된 것이다.

이에 국가는 이해승의 손자 이우영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의 민사소송을 청구하였고, 원심법원은 이우영의 손을 들어준다. 국가가 대법원에 상고하였다.

3. 쟁점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약칭: 친일재산귀속법)[2]
제2조(정의)
1.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는 대상인 친일반민족행위자”라 함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나.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자.
2.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이하 "친일재산"이라 한다)”이라 함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ㆍ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ㆍ증여를 받은 재산을 말한다. 이 경우 러ㆍ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한다.

제3조(친일재산의 국가귀속 등)
친일재산은 그 취득 · 증여 등 원인행위시에 이를 국가의 소유로 한다.

법 개정에 의해 이해승의 재산은 친일재산이 된 것이므로 국가에 당연히 귀속되는가? 일단 위 법조항만 보자면 당연히 국가에 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해승은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자'이므로 제2조 제1항에 따라 친일파에 해당하고, 제2조 제2항을 매개로 그의 재산은 친일재산이 되며, 이러한 친일재산은 최종적으로 제3조에 따라 취득 당시(=일제시대)부터 대한민국의 소유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즉, 위 규정만 보자면 이해승의 손자가 상속받아 보유 중인 재산은 애당초 이해승이 일제시대 당시 이를 취득할 때부터 대한민국의 소유로 법률상 간주된다.

하지만 문제는 훨씬 복잡했다. 개정법 부칙 제2항은 소급입법금지원칙에 따라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약칭: 친일재산귀속법)[3]
부칙 제2항
위원회가 종전의 제2조 제1호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경우에는 제2조 제1호의 개정규정에 따라 결정한 것으로 본다. 다만, 확정판결에 따라 이 법의 적용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정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즉, ① 만약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종전 법에 따라 친일파로 결정된 사람은 개정 후에도 여전히 친일파인 것으로 간주하되, ② 위원회의 결정이 이미 법원 판결에 의해 취소 확정되었다면 예외라는 것이다. 이해승은 이미 종전 법에 따라 친일파로 결정된 것은 맞다(=①은 충족). 그런데 이해승은 행정소송에 의해 친일파라는 결정이 취소되기도 했다(=②도 충족). 따라서 ②에 의해 ①에 대한 예외가 적용되어야 한다. 여기서의 '예외'란 무엇에 대한 예외인가? 다음과 같은 2가지 의견이 대립한다.
  • '이해승을 신(新)법상 친일파로 보는 것'에 관한 예외라는 의견
    위 부칙 제2항을 "위원회에 의해 구법상 친일파로 결정된 자를 신법상 친일파로 간주한다. 다만, 위원회의 구법상 결정이 법원판결로 취소된 경우에는 친일파가 아닌 것으로 본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이해승은 신(新)법상 친일파가 아니므로 이해승의 재산도 친일재산이 아니고, 따라서 국가는 이해승의 손자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 '위원회의 결정을 신(新)법상 결정으로 보는 것'에 관한 예외라는 의견
    위 부칙 제2항을 "위원회의 구법상 결정을 신법상 결정으로 간주한다. 다만, 구법상 결정이 법원판결로 취소된 경우에는 위원회의 해당 결정은 없는 것으로 본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이해승은 신(新)법상 친일파가 충분히 될 수 있고, 따라서 국가는 이해승의 손자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4. 판결 내용

대법원은 대법관 총 13명 중 8명의 다수의견에 따라 친일재산귀속법 부칙 제2항 단서가 '이해승을 신(新)법상 친일파로 보는 것'에 관한 예외를 규정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해승을 상대로 국가가 청구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는 최종적으로 기각되었다.

4.1. 다수의견(법정의견)

어떤 재산이 법에서 정한 친일재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재산에 관한 국가귀속결정을 취소하는 판결이 확정됨으로써 그 재산이 자신의 소유임을 종국적으로 확인받은 사람은 장차 또 다른 소급입법을 통하여 그 확정판결에서 선언된 법률관계에 반하여 그 소유권을 국가에 박탈당하리라고 쉽게 예상하기 어렵다. 한편 친일재산의 환수를 포함한 일제 식민지 역사의 청산을 통하여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세우는 일이 가지는 공익적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중대한 공익적 가치는 극히 예외적으로만 인정되는 진정소급입법을 허용하게 하는 핵심적인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친일재산귀속법이 제정ㆍ시행되어 그 규율 체계에 따라 공익적 가치가 대부분 구현되고 있는 과정에서 법원이 그 법의 해석상 친일재산에 속하지 않는특정한 재산에 관하여 내려진 국가귀속결정을 취소한 판결이 확정된 경우가 다루어지고있다. 이때 바로 그 특정한 판결을 염두에 두고 친일재산의 범위를 사후적으로 확장한 신법 조항을 바로 그 특정한 재산에 소급하여 적용하여야 할 공익적 가치가 극히 예외적으로만 인정되어야 할 진정소급입법을 허용할 만큼 중대한가는 별도로 살펴보아야 할 문제이다. 이는 입법의 미비 또는 국가기관의 잘못된 결정을 진정소급입법의 형태를빌려 국민의 부담으로 소급하여 전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판결문 다수의견 中
대법원장 조희대, 대법관 오석준, 서경환, 권영준, 엄상필, 신숙희, 노경필, 이숙연 총 8명에 의한 다수의견은 부칙조항의 문언 및 체계와 입법자의 의도, 헌법합치적 해석의 필요성 등에 비추어 볼 때 친일재산조사위원회의 국가귀속결정이 확정판결로 취소된 이상 그 '대상재산'에 대하여는 이 사건 부칙조항 단서에 따라 개정 친일재산귀속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개정 친일재산귀속법은 이해승의 손자가 2010년 행정소송에서 승소한 것에 따른 (이해승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바탕으로 입법된 것이긴 하나, 쟁점이 되고 있는 부칙 조항은 소급입법금지원칙이라는 헌법상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 입법자가 일부러 삽입한 조항이므로 이러한 입법자의 취지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해승의 재산은 법적으로 친일재산이 아니고, 따라서 이해승 손자에 대한 국가의 소유권이전등기 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4.2. 반대의견

다수의견은 입법자가 이 사건 부칙조항 단서를 둠으로써 확정판결로 법적 분쟁이 종료된 재산만큼은 개정 친일재산귀속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개정 친일재산귀속법 시행을 계기로 그 재산을 사후적으로 다시 국가에 귀속시키는 사태를 방지하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한다. 특정한 재산이 구 친일재산귀속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취지의 판결이 확정되었다면 그 소송 형태를 불문하고 확정판결이 다툼의 대상으로 삼았던 법률관계에 대한 종국적 판단은 개정 친일재산귀속법의 시행으로 소급하여 변경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법자의 진정한 의도가 과연 그러한가.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개정 친일재산귀속법은 소외인이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국가귀속결정을 취소한 이 사건 확정판결을 계기로 발의되었다. 입법자의 법 개정은 구법의 폐해를 발견하고 이를 시정하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 행하여지는 것이 통상적이다. 친일재산귀속법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친일반민족행위로 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킴으로써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며 일제에 저항한 3.1운동의헌법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개정 친일재산귀속법도 소외인[=이해승]의 친일재산에 대한 국가귀속절차를 완료하기 위한 의도에서 제정된 것이다.
판결문 반대의견 中

대법관 김상환, 노태악, 이흥구, 오경미, 박영재 총 5명에 의한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의 태도가 부칙조항의 문언과 체계를 지나치게 형식적으로만 이해하여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친일재산귀속법 부칙 제2항 단서가 '위원회의 결정을 신(新)법상 결정으로 보는 것'에 관한 예외를 규정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결과적으로 이해승의 재산은 개정된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에 따라 여전히 친일재산이고, 이해승 손자에 대한 국가의 소유권이전등기 청구는 인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5. 관련 문서


[1] 주심[2] 법률 제10646호, 2011. 5. 19., 일부개정[3] 법률 제10646호, 2011. 5. 19., 일부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