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지 전경
히포레기우스 유적과 아우구스티누스 성당
1. 개요
아랍어 عنّابة프랑스어 Bône
영어 Annaba
알제리 동북부에 위치한 산업 항구도시. 현재 인구는 47만명으로, 알제리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다. 콩스탕틴에서 동쪽으로 80km 가량 떨어져 있고, 튀니지와의 국경과는 50여 km 떨어져 있다. 고대에는 히포 레기우스 혹은 히포나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가톨릭 성인인 아우구스티누스의 고향이자 그 임지로 유명하다. 지금도 그 유적이 시가지 남쪽에 남아있다. 그후 중세를 거치며 쇠락했다가 19-20세기 프랑스 지배기에 개발되어 현재는 알제리 동부의 주요 항구 도시로 남아있다. 시내에는 프랑스 시절 세워진 건물들이 여럿 남아있다.
2. 역사
히포 레기우스 유적
430년 6월, 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카르타고 정복을 목표로 정한 반달족의 왕 가이세리크은 그 여정의 일환으로 도시를 포위하였다. 그들은 히포 주변의 경작지에 불을 질러 주민들을 기아에 시달리게 하였고, 그 와중에 주교 아우구스티누스는 그해 8월 사망하였다. 14개월 간의 처절한 포위 끝에 보급품이 바닥난 반달족은 포위를 풀고 철수하였다. 하지만 로마 사령관 보니파키우스는 카르타고 수비에 집중하기 위해 도시를 포기, 주민들을 해상으로 소개시켰다. 따라서 히포는 반달 왕국령이 되어 8년 후 카르타고가 함락될 때까지 그 수도로 기능하였다. 534년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재정복으로 반달 왕국이 멸망하며 도시는 다시 로마령이 되었다. 당시 히포나는 반달족 최후의 왕 겔리메르가 항복 전에 거쳐 간 도시였다.
그후 699년 도시는 우마이야 왕조령이 되었다. 그후 압바스 왕조, 아글라브 왕조, 파티마 왕조, 지리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던 1033년 지리 왕조가 복속을 철회한 것에 대한 응징으로 파티마 조가 파견한 바누 힐랄에 의해 도시는 파괴를 겪었고, 그 이듬해에는 피사 공화국 함대의 습격까지 당하였다. 여기에 홍수까지 겹치며 히포나는 유적이 되었고, 시가지는 현재의 북쪽 방향으로 옮겨졌다. 1152-3년 시칠리아 왕국의 노르만인들이 도시를 점령했으나[1] 1160년 무와히드 왕조의 칼리파 아브드 알 무민이 이슬람령으로 수복하였다. 1250년부터 도시는 하프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는데, 1360년에 카스티야 왕국이 일시적으로 점령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1533년 오스만 제국령이 되었고, 1535-44년의 스페인 지배를 제외하면 그 지배는 3세기간 이어졌다. 그동안 도시는 바르바리 해적들의 거점이 되었다. 도시는 1832년 프랑스령 알제리의 일부가 되었고, 많은 프랑스인들이 정착했다가 1960년대 독립전쟁 시에야 축출되었다.
3. 갤러리
[1] 그 사령관인 필리프는 사실 비밀 무슬림이었기에 현지인들을 잘 대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후에 그 의혹으로 인해 처형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