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7:27:39

후치자키 유리코

<colbgcolor=#000><colcolor=#fff> 후치자키 유리코
[ruby(渕崎, ruby=ふちざき)]ゆり[ruby(子, ruby=こ)] | Yuriko Fujizaki
파일:후치자키 유리코.jpg
출생 1968년 12월 5일 ([age(1968-12-05)]세)
출신 도쿄도 오타구
직업 성우, 배우
신체 160cm, O형
가족 배우자, 쌍둥이 아들(2005년 8월 29일생)
애칭 훗치
소속사 리맥스(2003.07.01~현재)
[ 이전 소속사 ]
극단 코마도리(1984~1991)
시그마 세븐(1991~2003.06.30)
활동 배우: 1970 ~ 현재
성우 : 1984 ~ 현재

1. 개요2. 활동3. 출연작
3.1. 애니메이션3.2. 게임3.3. 실사 출연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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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여성 성우, 배우.

2. 활동

10세부터 아역으로서 활동했으며 [1], 고등학교 1학년 재학중인 1984년 그룹 코마도리 소속으로 마법의 요정 페르샤의 시노카와 노리노부 역을 맡아 성우로 데뷔했다. 초창기에는 이름을 渕崎 有里子 또는 淵崎 ゆり子[2]로 표기하기도 했다. 주로 소년이나 활발한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공주 캐릭터들도 잘 소화한다. 취미는 음악 감상.

아역 배우 출신이라서 연기 경험이 풍부하고 어린 나이에 성우 데뷔를 해서 본인과 비슷한 나이대인 시라토리 유리, 미츠이시 코토노, 야지마 아키코, 히사카와 아야 등 이런 성우들보다도 경력이 오래된 선배다. 또한 본인과 함께 소녀혁명 우테나에서[3] 주연 역할을 맡았던 후배인 카와카미 토모코와도 나이는 겨우 2살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성우로서의 경력은 무려 10년이나 차이나는 엄청난 선배이며 카와카미가 90년대 중후반에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냈을 때 후치자키는 이미 업계에서는 베테랑이었다.[4] 물론 카와카미는 나이에 비해 성우 데뷔가 좀 늦은 편이었다.[5] 공교롭게도 카와카미가 2011년 41살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난 시점부터 후치자키 역시 성우 활동이 거의 없어졌다.

본인과 같은 68년생 여성 성우들인 시라토리 유리와 히사카와 아야와 함께 커리어 초창기부터 다양한 작품들에 출연하면서 두각을 나타낸 성우지만 커리어에 비해 인지도는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다.[6]

이후 니혼대학 예술학부를 졸업하였으며, 1991년 소속사를 시그마 세븐으로 옮겼고, 2003년 7월 1일에 현 소속사인 리맥스로 다시 이적했다.

2005년 3월 31일에 혼인 신고를 올렸으며, 그 해 8월 29일에 쌍둥이 남자 아이가 태어났다.[7]

다른 일본의 여자 베테랑 성우들처럼 이쪽도 나이를 먹은 이후로는 출연이 매우 드물어졌다.[8] 다만 전체적인 활동만 줄어들었을 뿐 2000년부터 방영중인 오자루마루에 20년 넘게 고정출연하며 성우로서의 명맥은 여전히 잇고 있다.[9]

3. 출연작

3.1. 애니메이션

  • 1985년
    • 무사시의 검 - 나츠키 무사시[10]
  • 2017년

3.2. 게임

3.3. 실사 출연

4. 관련 문서



[1] 성우 데뷔 후 일본 영화 중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는 소마이 신지태풍 클럽에서 주인공 일행 중 하나로 등장하기도 했다. 다만 실사 배우로는 큰 역을 얻지 못했고, 성우로서 인기를 끈 케이스다.[2] 둘 다 역시 후치자키 유리코로 읽는다.[3] 앞에 언급한 성우들도 전부 소녀혁명 우테나에 출연했다. 또한 소녀혁명 우테나에 출연한 성우들 중 후치자키보다 경력이 많은 성우는 카와무라 마리아, 히다카 노리코, 혼다 치에코 정도밖에 없고 안시의 오빠를 맡은 코스기 쥬로타랑 나이는 띠동갑 가까이 차이나지만 경력은 후치자키가 위다.[4] 그래서인지 소녀혁명 우테나가 막 방영한 당시 진행한 인터뷰에서 소감 차이가 대조되는데 카와카미는 처음에 우테나를 잘못 해석하고 연기해서 자신이 계속 연기해도 되나 고민했었던 반면 후치자키는 안시를 겉보기에는 얌전해보이지만 여자로서 가장 무서운 타입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안시의 행적을 생각하면 초반부터 캐릭터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한 셈.[5] 1994년 데뷔라서 당시 24살의 나이라 일반적인 일본의 여성 성우들에 비하면 늦은 나이에 데뷔하였다.[6] 이는 시라토리 유리도 마찬가지였으며 히사카와 아야는 시라토리와 후치자키에 비하면 성우 활동이 상당히 많아서 인지도도 가장 높다.[7] 이 때문에 당시 공연인 사쿠라 대전 슈퍼 가요쇼 신 파랑새에서는 직접 등장하지 못하고 뉴욕화격단을 도우러 미국으로 갔다는 설정으로 때웠다. 영상으로 타이가 신지로역의 스가누마 히사요시와 같이 등장하였다.[8] 자신의 동년배 성우인 시라토리 유리 역시 후치자키 유리코와 비슷한 케이스에 해당되며 반면 다른 동년배 성우인 미츠이시 코토노히사카와 아야는 현재도 왕성한 성우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니시하라 쿠미코도 본인과 비슷한 케이스에 해당되지만 이쪽은 그래도 원피스의 페로나같은 비중있는 캐릭터로 꾸준히 활동을 하면서 입지가 좋은 편이다.[9] 사실 장수 애니메이션에 한 두개 이상 고정출연 중인 베테랑 성우가 활동을 줄이는 것은 꽤나 흔한 현상이다.[10] 유소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