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孝明世子嬪 冊封 竹冊. 조선 후기, 1819년(순조 19)에 조만영(1776∼1846)의 딸인 신정왕후 조씨를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빈으로 책봉할 때 사용한 조선 왕실 유물.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2. 내용
파일:효명세자빈 책봉 죽책2.jpg1819년(순조 19년) 효명세자빈을 책봉할 때 만든 6첩(각쪽 가로 17.5㎝, 세로 25㎝)의 죽책으로 글은 당시 우의정 남공철이 지었고 글씨는 서사관 이만수가 썼다. 전형적인 조선왕실의 죽책 형식을 엿볼 수 있는 공예품으로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왕실 의례 상징물이다. 이러한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은 타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조선 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의 시대상을 드러내는 중요한 유물로, 201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이 죽책은 강화도 외규장각에 소장되던 중,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하여 불타 없어진 것으로 확인되어 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살아남아 프랑스 파리 고미술 시장으로 흘러들어갔고, 150년의 시간이 흐른 뒤인 2017년 6월에 게임 업체 라이엇 게임즈[1]가 한 경매 사이트를 검색하던 중 해당 유물을 발견하였다.
이에 라이엇 게임즈에서 이 죽책을 상속받은 프랑스인 소장자와 협의해 약 2억 5900만원을 주고 유물을 사들인 후, 한국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국립고궁박물관에 무상 기증하였다. 조선 시대 역사학자 이태진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지금까지 소실된 것으로 여겨지던 외규장각 소장 죽책의 귀환은 매우 반갑고 놀라운 사건”이라며 “조선왕실의 품격과 높은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이 죽책의 발견을 시작으로 해외에 있는 소중한 우리 문화재의 발견과 귀환이 계속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효명세자가례도감의궤'에 따르면 원래는 죽책에 글자를 새긴 후 글씨 하나하나마다 정성스레 금을 입혔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상당수의 금을 긁어간 상태이다.
150여년간 외국을 떠돌다 환수된 조선 왕실 유물로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3. 외부 링크
- 연합뉴스 : 150여년간 행방 몰랐던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佛서 귀환
- 세계일보 : 150여년 만에 프랑스서 경매물로 등장한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 스포츠서울 :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라이엇 게임즈 도움으로 국내 환수
- KBS : [문화광장]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150년 만에 고국 귀환
- 동아일보 :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150년만에 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