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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봉산 회룡사 道峰山 回龍寺 | Hoeryongsa | |
| <colbgcolor=#B9A26A><colcolor=#fff> 창건 | 681년 (신라 신문왕 1년) |
| 의상 대사 | |
| 소속국가 | |
| 주지 | 성진 스님 |
| 유형 | 제25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 |
| 위치 | |
| 경기도 의정부시 전좌로 155번길 26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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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룡사 전경 |
1. 개요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2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末寺)이다.2. 역사
신라 신문왕 1년(681년)에 의상(義湘) 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에는 법성사(法性寺)라 하였다. 경순왕 10년(936년)에 동진국사(洞眞國師)가 중창하였으며, 문종(고려) 24년(1070년)에 혜거국사(慧炬國師)가 삼창하였다.회룡사로 불리게 된 것은 1384년(우왕 10년)에 무학대사가 중창을 한 뒤이며, 여기에는 이성계와 관련된 설화가 전한다.
1384년 이성계는 무학과 함께 이 절에 와서 3년 동안 창업성취를 위한 기도를 하였는데, 이때 태조는 지금의 석굴암에서, 무학은 산등선 가까이에 있는 무학굴에서 각각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 뒤 이성계가 동북병마사가 되어 요동으로 출전하자, 무학은 홀로 남아 작은 절을 짓고 손수 만든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그의 영달을 축원하였는데, 왕위에 오른 이성계가 이곳으로 무학을 찾아와서 절 이름을 회룡사라 하였다고 한다.
1630년(인조 8년) 비구니 예순(禮順)이 중건하였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다가 6.25 전쟁 때 불탄 것을 1954년부터 비구니 도준(道準)이 중건하였다.
3. 가람
3.1. 회룡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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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룡사 대웅전 |
한쪽 벽에는 하술할 회룡사 신중도가 봉안되어있다. 문단 참조.
3.2. 회룡사 극락보전
회룡사의 극락보전으로 1996년에 개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을 갖춘 다포계의 목조 건물이다. 내부 불단에는 아미타불과 지장보살, 관음보살을 봉안하고 있고, 그 좌우에는 천불상을 조성하였다.3.3. 회룡사 설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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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룡사 설화당 |
본래 44칸의 규모였으나 1998년에 100칸의 규모로 중건되었다. 이전에는 강당과 선원으로 쓰이다가 현재는 요사채로서 쓰인다.
3.4. 회룡사 취선당
회룡사의 선원으로 2000년에 개축되었다. 1층은 콘크리트 건물이고, 2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갖춘 목조 건물이다.3.5. 회룡사 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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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룡사 범종각 |
종루 1층에는 하술할 회룡사 석조가 위치한다. 문단 참조.
3.6. 회룡사 삼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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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룡사 삼성각 |
1955년에 개축되었을 당시에는 대웅전으로 지어져 사용되었다. 이후 현재의 대웅전이 지어지며 삼성각으로 바뀌었고, 1996년에 새로 지어져 2002년에 증축되었다.
3.7. 회룡사 약사전
회룡사의 약사전으로 2013년에 조성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을 갖춘 건물이다. 내부에는 석조약사여래좌상을 모셨다.3.8. 회룡사 석조관음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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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룡사 석조관음보살입상 |
3.9. 회룡사 부도전
회룡사의 부도전이다. 원구형 부도 3기가 모셔져 있다.4. 유물과 성보
4.1. 의정부 회룡사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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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의정부 회룡사 오층석탑#|]] 부분을 참고하십시오.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86호.
4.2. 회룡사 석조
회룡사 석조는 전체 가로 153cm, 세로 224cm, 높이 90cm의 대형 석조이다. 석조란 생활에 필요한 물을 저장하여 사용하는 수조를 말하는데, 예로부터 사찰에서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이 석조는 전체적으로 석재가 잘 다듬어져 있어 표면이 매끄럽고, 바닥으로 내려가면서 안쪽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기 때문에 보기에도 안정적이다. 물이 흘러내리는 부분인 주구의 홈과 끝 부분도 부드럽고 매끈하다. 이 석조는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서산 보원사지 석조에 버금갈 만한 규모와 솜씨를 지니고 있어, 조선 시대 석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서울 근교의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예이다. 회룡사 오층 석탑이 세워진 시기와 비슷한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4.3. 회룡사 신중도
회룡사 신중도는 가로 219.5cm, 세로 176cm 크기의 불화이다. 신중이란 부처나 보살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불교의 여러 신들을 말하며, 이 신들을 그린 것을 신중도 또는 신중탱화라고 한다. 회룡사의 신중도 화면 위쪽에는 제석천과 범천이, 아래쪽에는 위태천이, 그 주위에는 여러 권속과 팔부중이 그려져 있다. 신중들의 신체는 늘씬하고 경직되어 보이며, 얼굴은 19세기 말에 유행하던 특유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들의 옷은 분홍색에 가까운 옅은 붉은 색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군청색과 녹색이 약간 더해져 19세기 후반기의 신중탱화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특히 서울 근교의 불화 양식이 잘 표현되어 있으며, 서울 동작에 있는 지장사의 신중도와 관련이 깊은 작품으로 19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신중도이다.
4.4. 회룡사 괘불석주
대웅전 앞에 조성되어 있는 돌기둥으로 괘불을 거는 받침대이다.4.5. 회룡사 노주
회룡사 오층석탑과 함께 모셔져 있는 노주로, 법당 인근에 세우는 기둥이었다가 탑의 상륜부 부재로 사용되었다. 원래의 모습이 많이 유실되어 원위치와 형태를 알 수 없다.5. 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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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봉산 석굴암 道峰山 石窟庵 | Seokguram | |
| <colbgcolor=#B9A26A><colcolor=#fff> 창건 | 1900년대 |
| 복전 스님 | |
| 소속국가 | |
| 등급 | 제25교구 회룡사의 암자 |
| 위치 | |
| 경기도 의정부시 전좌로 155번길 186-95 | |
회룡사의 북쪽에 위치한 회룡사의 암자이다. 이성계가 무학대사와 함께 창업 성취를 위한 기도를 한 곳이라고 전해진다.
김구와 인연이 깊은 곳이기도 한데, 김구가 상하이로 떠나기 전에 지냈던 곳이라고 전한다.[2] 이전에는 사우 내의 백범사라는 곳에서 김구를 배향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5.1. 김구선생필적암각문
의정부시의 향토문화재. 암자 내 석굴 입구에 김구의 친필을 새긴 암각문이다. “石窟庵 佛 白凡 戊子 仲秋 遊此金九[3]”라고 새겨져 있다.암각문의 바탕이 된 친필은 1948년에 쓰여진 것으로, 석굴암에 방문한 김구가 언론인 남상도외 7인에게 남긴 것이다. 당시 친필을 받은 남상도외 7인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49년부터 새긴 것이다.
6. 교통
대중교통으로는 의정부 버스 202-1과 인근 회룡역 등으로 갈 수 있으며, 자가용 이용시 회룡역 공용주차장에서 회룡골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나온다.7. 기타
- 경기북부, 그리고 한수이북 최대의 비구니 사찰로, 1630년에 비구니 혜순이 절을 중창한 것이 비구니 사찰로서의 역사의 시작이었다.
- 1954년부터 6.25 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회룡사가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재건하기 시작한 비구니 도준이 당시의 그 부대를 찾아가 자재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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