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08:24:19

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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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훈자
파일:문화옥관.jpg
<colbgcolor=#980000><colcolor=#EDE4D3> 연도 <colbgcolor=#EDE4D3><colcolor=#980000> 2006
이름 황지우
분야 시인
옥관문화훈장(4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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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제5대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황지우
黃芝雨
파일:황지우.jpg
본명 황재우(黃在祐)
본관 창원 황씨[1]
출생 음력 1952년 1월 25일[2] ([age(1952-01-25)]세)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신월리 배다리마을
학력 광주중앙국민학교[3] (졸업)
광주서중학교 (졸업)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철학[4]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제적)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 / 석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 / 박사)

1. 개요2. 생애3. 작품
3.1. 대표작3.2. 시집3.3. 시론집3.4. 희곡집
4. 수상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시인, 교수. 본명은 황재우(黃在祐).[5] 정치인 황광우의 형이다.

대표작으로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뼈아픈 후회', '나는 너다',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게로', '너를 기다리는 동안'[6]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한 뒤 쓰여진 추모시 중 가장 유명한 지나가는 자들이여, 잠시 멈추시라를 쓴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그의 서거 후 일주일만에 써서 경향신문에 기고했는데, 김대중을 '시대의 목소리'이자 '용서'[7] 그 자체로 정의하며, 근대사 속 수많은 위기를 항상 힘겹게 넘어 민주화까지 온 뒤에도, 그를 공격해온 상대에게 용서라는 태도를 보여주기까지 한, 한국 민주화 역사의 영원한 기둥 김대중에게 다음의 만남을 약속하며, 그를 떠나보내는 산문시다. 멈추라는 뜻도 그를 보내기 위해 사람들 모두 다같이 그를 잠시 생각하자는 뜻이다. 단기간에 쓴 산문시치고는 상당히 수준이 높은 시[8]라서, 김대중을 추종한 사람들에게는 널리 읽힌다.

2. 생애

1952년 1월 25일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신월리 배다리마을의 빈농가에서 아버지 황길주(黃吉周, 1917. 3. 2 ~ 1975. 7. 24)와 어머니 보성 선씨 선귀례(宣貴禮, 1920. 7. 15 ~ ?) 사이의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56년 가족들을 따라 전라남도 광주시(現 광주광역시)로 이주했고, 광주중앙국민학교, 광주서중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 재수하여 1972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미학 전공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1973년 박정희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었고, 강제로 입대했다. 1976년 제대해 복학했고 1979년 졸업해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가담으로 구속되면서 대학원에서 제적당했다. 경찰에서 고문당하고 석방된 후 1981년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 입학하여 1985년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1994년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활동하다가 1997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장을 거쳐 2006년 3월부터 2009년 5월까지 제5대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역임했고,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교수로 재임하다 2018년 8월 정년퇴임하고 고향에 내려가 살고 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을 입선하였고 '나는 너다'는 시문에서 마르크스주의적인 내용으로 한 때 논란이 되었으나 이것은 큰형인 혜당(慧撞, 1938. 12. 14 ~ ) 스님[9]과 철학자이자 노동운동가였던 남동생 황광우[10]에게 주는 헌시(獻詩)로 알려졌다.

한국 해체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시인으로 도표나 특수 문자, 그림들을 도입해 혁신적인 시작법으로 유명해졌다. 후기로 갈수록 연극에 관심이 많아져 연극적인 요소들이 강해지는 편이다. 가족 이력 때문에 불교적인 색채도 있는 편이다. 전반적으로 군부 독재 시절 한국의 암울함을 풍자하거나 저항하는 내용들이 많으나, 서정시도 자기식으로 구사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획득했기도 했다. 친구 이성복과 더불어 1990년대 젊은 시인들에게 많이 영향을 줬다.

3. 작품

3.1. 대표작

3.2. 시집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민음사, 1985)
  • 《나는 너다》 (풀빛, 1987/ 개정판: 문학과지성사, 2015)
  • 《게 눈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1990)
  •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조각 시집/ 학고재, 1995)
  • 《어느 날 나는 흐린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1998)

3.3. 시론집

  •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 (한마당, 1993)

3.4. 희곡집

4. 수상



[1] 공희공계-장무공파(莊武公派)-감사공파(監司公派) 20세 우(祐) 항렬.[2] 양력 2월 20일.[3] 現 광주중앙초등학교[4] 미학 전공이다. 1969년 12월 17일 종교학과와 함께 철학과의 한 전공으로 격하되었다가 1985년 다시 미학과로 독립했다.[5] 본명과 필명이 다른 이유가 약간 재미있는데, 한글 타자기의 오타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고 한다. (출판사 풀빛, 황지우 시집 '나는 너다' 131p, 홍정선의 발문에 수록돼있다.)[6] 수능 모의고사에도 나온 적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라는 시구절이 유명하다.[7] 시의 도입이 공자의 제자로 유명한 자공이 공자에게 묻고 답하는 걸로 시작한다. "평생을 다 써서 해야 할 게 무엇이냐"고 묻자, 거침없이 공자가 대답한다. "그거? 용서하는 거야."(원래 논어에 나오는 원문은 조금 다르게 '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이다. 즉, "바로 恕인 것이다. 자기가 원치 않는 걸,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는 것이란다."가 원문인데, 이 서라는 한자는 용서라는 단어의 서이기도 하나, 단순히 '용서한다'라는 의미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나의 마음을 타자의 입장과 생각에 맞추어 보는 것'으로서, 공자가 평생에 걸쳐 강조한 仁과 禮의 기본 자세임을 말하는 큰 의미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항상 낮은 자세에서 민중과 함께하려 한 점을 기리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8] 과거 고은의 시가 수준이 떨어진다고 싫어했던 한 블로거(문인이거나 문학 박사 혹은 교수급 문학 전문가로 추정된다)가 이 시와 고은의 시집 만인보에 들어간 시를 전문적으로 상세히 비교하며, 황지우의 시가 산문시임에도 불구하고 술술 익힐만큼 압도적으로 뛰어남을, 반대로 고은의 시가 짧아도 이해하기 힘들만큼 한참 형편없음을 주장하며 비평한 적(그 외 다른 여류시인이나 그 시대보다 과거시대 시인들의 시와도 비교하였다.)이 있다. 당시는 미투 운동보다 수년 전이라 일반인들이 고은의 시는 안 읽었어도 고은을 추종하던 시기라 비난의 댓글들이 달렸으나, 한국 문학계 미투운동이 일어나며 그 블로그가 재평가되었고 황지우의 이 추모시의 가치도 재조명되었다.[9] 속명은 황승우(黃承祐). 1939년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서 태어나 광주사범대학,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에서 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육군에서 통역장교, 번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목포 문태중학교·문태고등학교, 광주서중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전남고등학교, 광주교육대학교 등에서 영어 교사 및 강사를 지냈다. 이후 한국불교 태고종 선암사에서 득도했다. 저서로는 '스님 어떻게 영어를 그렇게 잘하십니까', '아시게나, 우리가 선 이 땅이 바로 낙원이라네', '룰루랄라 영어 발음' 등이 있다.[10] 1977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했으나 긴급조치 9호 위반 및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제적 당한 뒤, 1998년에 복교해 뒤늦게 졸업했다. 공장에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정인'이라는 필명으로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같은 책을 썼으며 1980년대 대학가의 필독서였다. '철학 콘서트'의 저자다.[11] 대도 조세형이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