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14 08:03:09

화경고개

<colbgcolor=#363><colcolor=#fff> 화경고개
위치 <colbgcolor=#363><colcolor=#fff>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성동구 옥수동
좌표 북위 37°32'21"
동경 127°00'42"
해발고도 62.93m
도로 독서당로
1. 개요2. 역사3. 특징

1. 개요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성동구 옥수동 사이에 있는 해발고도 62.93m의 고개. 옥수동고개라고도 한다.

매봉산의 남쪽 줄기를 넘어가는 고개로, 독서당로가 이 고개를 지난다. 이 고개를 경계로 용산구 한남동과 성동구 옥수동이 맞대고 있다.

2. 역사

화경고개라는 이름은 이 고개의 남쪽에 있는 언덕(지금의 유엔빌리지)을 화경대(華鏡臺)라고 부른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화경대의 유래는 지금의 한남더힐 자리에 있던 화경사(華鏡寺)라는 절에서 유래한 것이며, 화경사와 화경대 사이 골짜기에 있던 마을은 화경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화경대나 화경고개라는 지명은 거의 잊혀졌다.

본래의 화경고개는 지금의 독서당로가 지나는 길이 아니라 북한남삼거리에서 지금의 대통령 관저 자리를 지나 옥수동 극동그린아파트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이 고갯길은 지금처럼 매봉산 남쪽 고개를 S자로 빙 둘러서 가지 않고, 한남동과 옥수동을 직선으로 바로 잇는 길이었다. 이 고갯길의 존재는 6.25 전쟁 이후에 나온 지도에서도 확인이 되지만, 이후 군 부대가 자리잡으면서 완전히 폐쇄된 것으로 보인다.[1] 이 자리에서 국군 부대가 철수한 뒤로도 외교부장관 공관이 들어섰고, 현재는 대통령 관저로 쓰이고 있다.

대신에 6.25 전쟁 휴전 이후 용산역-서빙고동-한남동-왕십리역-고려대-미아리-정릉동-홍제동-연희동-원효로를 거쳐 다시 용산으로 돌아오는 형태의 순환도로를 계획하면서 옛 화경고개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새 고갯길을 개설하기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전후 복구 사업에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리면서 2년 가까이 미뤄지다가 1955년에 겨우 첫 삽을 떴는데, 다시 재정 부족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기 일쑤였고, 거기에 더해 이곳 지형이 워낙 험준하다 보니 난공사 구간이 되어 개통이 늦어졌다. 지금의 화경고갯길이 완공이 된 것은 첫 삽을 뜬 지 2년 만인 1957년이었는데, 당초 계획대로 왕십리오거리까지는 완공하지 못하였고, 금호사거리까지만 개통하였다. 왕십리오거리까지 완전 개통이 된 것은 6년 뒤인 1963년이었다.

3. 특징

화경고갯길은 용산구 한남동 한남오거리에서 시작하여 성동구 옥수동 옥정중학교에서 끝나는 약 1.1km의 구간이다. 옥수동 쪽은 지대가 높아서 고개 정상부와 고저차가 그렇게 심하지 않지만, 한남동 쪽에서는 고개를 오르려면 경사가 많이 가파르다. 이 때문에 고갯길이 개설된 직후에 고개를 넘나들기 힘드니 고개를 더 깎아 달라는 주민들의 청원이 있었으나, 실제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차량들도 이 고개를 오르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는데, 자동차엔진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1970년대까지는 이 고개를 넘다가 차가 퍼지는 바람에 뒤로 미끄러져 사고가 났다는 기사가 다수 발견된다. 차량의 사정이 나아진 지금도 겨울에 길이 얼면 고개를 오르지 못 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서울 버스 110B가 여기서 퍼지는 바람에 승객들이 내려서 버스를 미는 영상도 있다.

고개 정상부에서는 차도(車道)와 보도(步道)의 고저차가 심하다. 차도 부분은 산허리를 많이 깎아 냈지만, 인도 부분은 옹벽 위로 가도록 되어 있다. 실제로 보면 옹벽의 높이가 꽤 높다. 도보로 이 고개를 넘으려면 숨이 찬다. 지금이라면 터널을 뚫어서 해결했겠지만, 이 고갯길이 뚫린 때가 1950년대다 보니, 기술력도 부족하고 전후 복구로 이곳저곳에서 소요되는 비용이 많아서 재정도 부족했기 때문에 능선을 타고 S자로 넘어가는 식으로 건설되었다. 엄청난 고저차를 극복하려고 일부러 도로를 S자로 굽히면서 도로 연장을 늘려 경사를 완만하게 하려고 한 노력이 엿보인다.

한남동 구간에서 보면 도로 북쪽에는 한남더힐이, 남쪽에는 유엔빌리지가 있으며, 이집트·아랍에미리트·가나·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의 대사관들이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다. 고개 정상부에는 한남시범아파트가 있고, 옥수동으로 넘어가면 한남하이츠아파트가 나온다.
[1] 이 당시에는 국군 부대와 미군 부대가 지금처럼 용산기지로 통합되어 있지 않고, 몇몇 부대는 이태원동, 동빙고동, 한남동 일대에 흩어져 있었다. 이 부대들은 1970년대부터 차차 용산기지 안으로 이전하였고, 그 자리에 한남외인아파트와 한남동 공관촌이 들어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