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9-16 00:32:12

현영섭

<colbgcolor=#000><colcolor=#fff> 현영섭
玄永燮
본명 현영남(玄永男)
창씨개명 아마노 미치오
天野道夫
히라노 히데오
平野永男
쿠도 히데오
工藤永男
출생 1907년 12월 29일
서울특별시
사망 불명
본적 경성부 장사동
부모 父 현헌, 어머니
학력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졸업)
경성제국대학 (수료)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문학과 / 졸업)
주요
경력
녹기연맹 이사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주사
황도학회 이사
내선일체실천사 이사

1. 개요2. 생애
2.1. 무정부주의, 독립운동에 투신하다2.2. 친일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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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 시절 이론가, 친일반민족행위자.

2. 생애

1907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현헌(玄櫶)은 교육자 출신이였는데 조선총독부 관료, 중추원 참의, 동민회 이사를 맡는 등의 유명한 친일반민족행위자였다. 반면에 현영섭은 처음부터 급진적인 친일파는 아니였다. 192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는데 그때 그는 카를 마르크스, 블라디미르 레닌, 표트르 크로포트킨 등 사회주의자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1925년 봄에 마르크스주의 성향의 조선인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노동운동을 한 전력이 있다. 다만 이에 환멸을 느끼며 2개월 만에 탈퇴를 하였는데 이유는 불확실하다. 이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해 1928년 수료하였으며, 같은 해 동대학 법문학과 문학부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하였다. 거기서 프랑스어, 독일어, 에스페란토를 배웠고, 이 시기에 문예평론가를 꿈꾸며 최재서랑도 인연을 맺었었다.

2.1. 무정부주의, 독립운동에 투신하다

1931년 졸업을 마친 그는 무정부주의자로서 항일독립투쟁에 투신하게 되었다. 독립운동가 원심창을 찾아간 현영섭은 상해로 건너가,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입하였으며 거기서 번역, 교육, 사설 집필, 내외 운동상황 소개 및 연락 등의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원심창의 명령을 받고 '조선동흥노동동맹회'에 가입한 후 일본인 다케우치 데루요와 함께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활동은 1934년 때까지 계속 된 걸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활동 때문에 1930년 11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었으나, 무죄를 받고 출옥하였다.

2.2. 친일 행적

그는 변절 이후부터 아버지의 대를 이은 그야말로 극렬 친일파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친일성향 수필, 평론, 논설 등을 써서 발표하였는데 그 중 1936년 8월에 「정치론의 한 토막」 이라는 글을 통해 조선어를 폐지하라는 '조선어 전폐론'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면서 조선인 생활의 일본화, 내선(內鮮) 결혼을 떠들어댔으며, 강연이나 기고문을 통해 내선일체를 그야말로 찬양하고 강조했다. 1937년 1월 녹기연맹(綠旗聯盟)에 가입하였고, 6월부터 녹기연맹 기관지 《녹기》에 계속해서 글을 기고했다. 그리고 편집국 서기, 녹기연구소 연구원이 되었고, 8월부터 녹기연맹 이사에 취임하였다. 1937년 9월 「북지사변과 조선」이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