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9 16:26:52

헤인리히 우키비

파일:Heinrich Uukkivi.jpg
본명 헤인리히 루돌프 우키비
(Heinrich Rudolf Uukkivi)
출생 1912년 5월 10일
러시아 제국 훙어부르크
사망 1943년 4월 12일 (향년 30세)
국적 파일:러시아 제국 국기.svg 러시아 제국(1912~1918)
파일:발트 연합 공국 국기.svg 발트 연합 공국(1918)
파일:에스토니아 국기.svg 에스토니아 제1공화국(1918~1940)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1940~1943)
포지션 포워드
신체 175cm
소속팀 탈리나 JK (1931)
JS 에스토니아 탈린 (1932-1940)
국가대표' 46경기 7골 (1931-1940)



1. 개요2. 생애
2.1. 출생2.2. 선수 생활2.3. 사망
3. 뒷이야기4. 수상
4.1. 선수
4.1.1.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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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스토니아의 전 축구 선수.

2. 생애[1]

2.1. 출생

우키비는 1912년, 훙어부르크(Hungerburg)에서 태어났다.

2.2. 선수 생활

우키비는 JS 에스토니아 탈린 소속으로 에스토니아 축구 챔피언십 5회 우승을 거뒀다.

우키비는 에스토니아 대표팀으로 총 46경기를 뛰었다. 1934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는 소집되지 않았지만 1938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는 2경기에 출전했다. 에스토니아는 독일, 스웨덴, 핀란드와 함께 1조에 소속되었고 우키비는 스웨덴전에서 골을 넣었지만 에스토니아의 2대7 대패를 막을 수 없었다.

2.3. 사망

우키비는 탈린에서 공부를 마치고 철도와 인쇄소에서 일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우키비는 소련 공산당원이 아니었지만 소련군에 징집되었다. 그는 공병 대대의 중위로 복무했다. 기록에 따르면 우키비는 1942년 12월 31일, 전투 임무를 수행하던 중 실종되었다. 그는 독일군에게 체포되었으나 소련군에 의해 석방되어 다시 체포되었다. 1943년 2월, 우키비는 독일에 망명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4월에는 15년형으로 감형됐다.

그는 크라스노야르스크수용소로 이송되는 동안 사망했다.

3. 뒷이야기

  • 우키비는 축구 외에 밴디, 아이스하키 선수로도 활약했다. 밴디 선수로서 에스토니아 밴디 선수권 3회, 아이스하키 선수로서 에스토니아 아이스하키 선수권 2회 우승 경력이 있다.

4. 수상

4.1. 선수

4.1.1. 클럽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