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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램파드/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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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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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램파드의 선수시절 활약상을 서술하는 문서이다.
커리어 통산 기록: 1021경기 303골 169도움[1]

2.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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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햄 유스 출신으로, 아버지 프랭크 램파드 시니어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레전드 풀백 출신으로 코치를 맡고 있었으며, 이모부 역시 웨스트햄 선수 출신으로 감독까지 맡고 있는 해리 레드냅[2]이며 처조카인 제이미 레드냅은 잉글랜드 국가대표와 리버풀 FC에서 뛰었었다.

그러나 이렇게 성골에 가까운 출신이 팀이 부진하는 시절에는 빽으로 기용된다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고, 경기에서 질 때마다 램파드는 팬들에게 혹독하게 까이고 빛을 보지 못했다. 결국 이모부와 아버지가 경질당하면서 본인도 짐을 싸게 되고, 공교롭게도 런던에서의 라이벌인 첼시가 2001년에 1,100만 파운드의 가격으로 램파드를 영입하게 된다. 당시에는 거품이 낀 가격이었다는 평이 대세로, 웨스트햄 입장에서는 아쉽지 않게 처분한 셈이었다. 그러나 이후 웨스트햄 팬들은 이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레드냅과 램파드의 이모부, 아버지의 사이는 완전히 갈라지게 된다.

3. 첼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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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8경기 211골 141도움[3]

흔히 국내 팬들이 램반장이라 불러 착각하기 쉬운데, 어디까지나 램퍼드는 부주장이고 존 테리가 공식적 캡틴이다.[4]

3.1. 입단~2004-05 시즌

파일:영파드.jpg

2001년 8월 19일 뉴캐슬 유나이티드전에서 첼시 소속 데뷔전을 치렀다.

2001/02 시즌: 53경기(선발 49경기) 7골 3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7 34 3 5 3
유로파 리그 4 4 0 1 0
FA컵 8 7 1 1 0
EFL컵 4 4 0 0 0
합계 53 49 4 7 3

2002/03 시즌: 48경기(선발 46경기) 8골 3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8 37 1 6 3
유로파 리그 2 1 1 1 0
FA컵 5 5 0 1 0
EFL컵 3 3 0 0 0
합계 48 46 2 8 3

2003년 7월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켄 베이츠로부터 첼시를 인수하여 새 구단주가 된 2003-04 시즌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으며, 팀도 리그 준우승 및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이라는 업적을 기록했다.

2003/04 시즌: 58경기(선발 56경기) 15골 6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8 38 0 10 5
챔피언스 리그 12 11 1 4 1
FA컵 4 4 0 1 0
EFL컵 2 1 1 0 0
챔피언스 리그 예선 2 2 0 0 0
합계 58 56 2 15 6

조세 무리뉴 감독이 새로 부임한 2004-05 시즌에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서 가히 절정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리그 13골 및 시즌 19골을 기록하고, 리그 도움왕에 오르며 호나우지뉴 뒤를 이어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2005 FIFA FIFPro 월드 XI에 선정되었다.

2004/05 시즌: 58경기(선발 53경기) 19골 23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8 38 0 13 18
챔피언스 리그 12 12 0 4 4
FA컵 2 0 2 0 1
EFL컵 6 3 3 2 0
합계 58 53 5 19 23

3.2. 2005-06 시즌~2008-0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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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클로드 마켈렐레, 마이클 에시엔, 그리고 프랭크 램파드
전 시즌은 마케렐레와 평행한 자리였다면 이 시즌은 조금 앞선 자리에서 보다 자유롭게 경기 전체를 조율하면서 득점까지 만만찮은 무서운 미드필더였다.

05-06 시즌은 에시앙의 영입으로 박스 투 박스에서 지금의 위치인 프리롤에 가까운 미드필더로 전업하는데 미드필더로서는 경이로운 득점인 리그 16골을 기록하여 득점 랭킹 공동 4위에 올랐다. 시즌 전체를 놓고보면 20골을 기록했다.

2005/06 시즌: 50경기(선발 48경기) 20골 12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5 35 0 16 8
챔피언스 리그 8 8 0 2 3
FA컵 5 4 1 2 1
EFL컵 1 0 1 0 0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50 48 2 20 12

06-07 시즌과 07-08 시즌에도 리그 두 자릿수 득점에 시즌 20골 이상씩 기록했지만, 첼시는 2년 연속 리그 준우승에 그쳤다. 그리고 램파드는 07-08 시즌에 부상으로 리그 24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06-07 시즌 FA컵 결승전에서 MOM으로 선정되는 등 팀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07-08 시즌에는 첼시를 역사상 처음인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맨유와의 결승전에서 선제골로 끌려가던 중 전반 종료 직전 동점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5] 시즌 종료 후, 은사인 주제 무리뉴가 있던 인테르로부터 적극적인 구애를 받았으나, 첼시와 5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2006/07 시즌: 62경기(선발 58경기) 21골 20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7 36 1 11 10
챔피언스 리그 11 11 0 1 3
FA컵 7 7 0 6 5
EFL컵 6 3 3 3 1
커뮤니티 실드 1 1 0 0 1
합계 62 58 4 21 20

2007/08 시즌: 40경기(선발 38경기) 20골 1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4 23 1 10 8
챔피언스 리그 11 10 1 4 2
FA컵 1 1 0 2 1
EFL컵 3 3 0 4 0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40 38 2 20 11

이번 시즌에는 다른 팀들의 팬들마저 감탄하게 만들 정도로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며 비록 스탯은 그렇게 높지 않았으나 거의 전 경기를 기복없이 소화하는 괴물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실제로 이 시즌에서 찬스메이킹으로는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다. 중요 경기때마다 빛나는 활약을 펼쳤는데, 우선 리버풀과의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두 골을 집어넣어 팀의 승리를 이끌었으며, 바르셀로나 전에서는 토나오는 킬패스를 뿌려넣어 바르셀로나의 공세를 뒤흔들었고, FA컵 결승전에서는 역전골을 집어넣었다. 이 시기 첼시의 프랭크 램파드-마이클 에시엔-미하엘 발락으로 이어지는 삼각편대는 아직까지도 칭송받는 08-09시즌의 바르샤를 상대로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일 정도로 강력했다.

2008/09 시즌: 57경기(선발 56경기) 20골 2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7 37 0 12 10
챔피언스 리그 11 11 0 3 7
FA컵 7 7 0 3 3
EFL컵 2 1 1 2 1
합계 57 56 1 20 21

3.3. 2009-10시즌

파일:8_jinhyungez.jpg
램파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FA 커뮤니티 실드 경기에서 72분에 득점을 기록하면서 시즌을 시작했다. 그리고 승부차기 끝에 4-1 승리를 거두면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0월 21일에 펼쳐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경기에서 첼시에서의 133번째 득점을 기록하면서 첼시 역대 최다 득점 5위가 되었다. 3일 뒤, 블랙번 로버스와의 리그 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5-0으로 승리했다.

이후 12월 16일에 펼쳐진 포츠머스와의 경기에서 79분에 결승골을 기록하여 팀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20일 웨스트햄전에서 pk를 성공시키면서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리고 1월 선더랜드전에서는 멀티골을 기록하였으며, 이어서 펼쳐진 버밍엄 시티전에서도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두 경기 모두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3월 27일 아스톤 빌라전에서는 홀로 4골을 기록하였으며, 첼시에서의 151번째 골을 넣으면서 피터 오스구드를 제치고 첼시 역대 최다 득점 3위가 되었다. 이후 스토크 시티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면서 리그 20호 골을 기록하였다.

리그 38라운드 위건과의 경기에서 웨인 루니와 득점왕 경쟁을 펼치는 드록신에게 PK를 양보하지 않으면서 해충갤에서 스탯 덕후라고 미친듯이 까였다. 물론 2번째로 얻은 pk는 드록신에게 양보하고 결국 드록바가 득점왕을 얻어내면서 묻히긴 했지만...참고로 드록바가 넣은 첫 번째 골, 즉 득점왕을 결정지은 골도 램파드가 어시스트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드록바의 득점왕 등극엔 램파드의 도움이 컸다고 할 수 있다.

09-10 시즌에는 초반에 다소 주춤하더니 22골 14도움을 찍으면서 스탯 괴물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시즌 27골, 리그 22골이란 정신나간 스탯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리그 14도움으로 도움왕까지 차지한건 덤이다.)[6][7][8]

2009/10 시즌: 57경기(선발 56경기) 27골 16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6 36 0 22 14
챔피언스 리그 7 6 1 1 1
FA컵 6 6 0 3 1
EFL컵 1 0 1 0 0
커뮤니티 실드 1 1 0 1 0
합계 57 56 1 27 16

3.4. 2010-11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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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0-11 시즌 중에 탈장 수술을 받은 이후 경기력이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램파드 최대의 장점인 강철몸이 무너져 버린 것. 허나 30을 넘긴 나이였으니 언젠가는 그렇게 될 일이었다. 이 수술을 받은 이후 피지컬이 하락해 버린 게 컸다. 본래 강력한 몸빵과 뛰어난 활동량, 준수한 주력을 바탕으로 재빠른 2선 침투와 슈팅 및 중원에서의 키핑과 빠르고 정확한 볼배급으로 활약했지만 피지컬이 무너지니 도미노처럼 한순간에 그의 거의 모든 능력이 무너져 버렸다.

하지만 볼턴 원더러스 FC와의 경기에서 무려 해트 트릭을 선사하며 램파드의 부활을 알렸다. 첼시 역사상 현재 5번째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가 되었으며, 첼시의 10,000번째 골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였다. 본인은 긱스처럼 선수 생활을 오래하고 하고 싶다고 한다.

2010/11 시즌: 32경기(선발 31경기) 13골 4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4 23 1 10 2
챔피언스 리그 4 4 0 0 1
FA컵 3 3 0 3 1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32 31 1 13 4

3.5. 2011-12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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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시즌 안드레 빌라스보아스가 부임하면서 새로운 체제가 시작되었는데, 3R 노리치 전에서 후반 80분 경 1-1 동점 상황에서 하미레스가 키퍼 퇴장 유도와 함께 PK를 얻어냈고, 이를 램파드가 침착하게 중앙으로 꽂아넣어 결승골을 기록하였다.

리그 6R 스완지 전에서는 지난 경기 동안의 부진으로 빠졌고, 교체 출전하지 않았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2차전 발렌시아 전에서는 후반에는 전술에 변화를 준 첼시가 먼저 밀어붙였으며, 전반 보다 강력한 경기력을 앞세웠다. 결국 후반 57분, 오른쪽 측면 돌파를 한 말루다의 패스를 받은 램파드가 선취골을 만들었고, 결승골이 되는 듯 했으나...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리그 7R 볼튼 전에서는 선발출전하여 지난 경기에서 폼이 떨어졌다고 욕먹던 것은 어디로 가고 해트트릭을 달성하였다!! 이로서 2경기 4골이라는 엄청난 스탯을 쌓으며 또한 첼시 역대 득점 5위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램파드는 분명히 미드필더다..

8R 에버튼 전에서 선발출전하여 프리킥 찬스에서 크로스를 올려 존 테리의 득점을 어시스트했다. 지난 경기에 이어 폼이 올라온 모습을 보여주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3차전 겐크 전에서는 1도움을 기록했다.

웨스트 햄에서 시즌을 보낸 것을 포함해서 EPL 통산 500경기를 넘었다. 상대는 9R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그러나 램파드를 위한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경기에는 주심이 직권을 남용하였다. QPR에 대한 무조건적으로 호의적이고 첼시에게는 악의적인 심판을 가하여 결국 시즌 EPL 최악의 경기로 뽑혔다.

10R 아스날 전에서는 선제 헤딩골을 넣었으나, 팀이 5-3으로 역전패를 당하며 빛이 바랬다.

리그 11R 블랙번 전에서는 후반 5분, 이바노비치가 오버래핑하여 넣은 크로스를 램파드가 헤딩골로 완성시켜 결승골을 기록했다. 팀은 1-0 승리.

리그 14R 뉴캐슬 전에서는 선발출전하여 원정경기임에도 초반부터 뉴캐슬을 거세게 몰아붙여 전반 14분에는 뉴캐슬 페널티박스 안에서 스터리지가 페널티킥을 얻어냈지만 램파드의 킥을 뉴캐슬 골키퍼 팀 크룰이 막아내 득점에 실패했다. 그래도 경기는 첼시의 3-0 승리로 종료되었다.

15R 맨시티 전에서 선발출전하여 후반에 파상공세를 가져갔음에도 불구하고 야야 투레의 중원 장악에 중원의 빌드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번번히 막혔지만, 경기 막바지에 레스콧의 핸드볼로 얻은 PK를 램파드가 성공시키면서 2-1 역전을 만들었고, 경기가 그대로 종료되면서 결승골이 되었다.

20R 울버햄튼 전에서 종료직전인 88분에 상대 진영 중앙에서 공을 배급하던 램파드가 토레스에게 패스를 건넨 뒤 문전으로 파고들어쏜데, 토레스의 스루패스를 받은 애슐리 콜이 왼쪽 측면에서 땅볼 크로스를 연결했고, 이 공을 놓치지 않은 램파드가 결승골을 성공시키면서 극적인 2-1 승리를 거뒀다. 종료 직전 결승골을 넣으며 가까스로 승리를 따낸 첼시는 잠시나마 아스날을 앞질러 4위 자리를 탈환했다. 뒤이어 열리는 풀햄 대 아스날전에서 아스날이 승리하지 못한다면 첼시가 4위를 유지할 수 있다.

이어서 21R 선덜랜드 전에서도 결승골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22R 노리치 전에서 부상으로 교체되었다.

현재 카를로 안첼로티파리 생제르맹을 비롯해 LA 갤럭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여러 팀이 램파드를 원하고 있다고 한다.

26R 볼턴 전에서는 팀의 3번째 골을 넣으며 3-0 승리에 이바지했다. 이 득점으로 리그 10호골을 작렬, 9시즌 연속 두 자리수 득점이란 대기록을 달성했다. 램파드의 이번 기록은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래 최초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램파드와 함께 8시즌 연속 두 자리수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선수로는 티에리 앙리가 있다.

시즌 중반부터 시작된 보아스와 선수들간에 세력싸움, 즉 항명파동에 휘말렸다. 램파드가 아무리 첼시의 레전드급 선수라지만 새롭게 부임한 보아스는 실리주의파로서 폼이 떨어진 램파드는 가끔씩 벤치에 앉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마찰이 일어난 것. 출전 시간에 대해 불만을 표하면서 첼시 베테랑 선수들과 새로이 부임한 감독 간의 감정의 골이 더욱더 깊이지면서, 첼시는 더욱더 나락으로 빠졌다. 물론 골도 꼬박꼬박 넣어주며 10시즌 연속 두 자리 수 리그 득점이라는, 유일무이한 프리미어 리그 역사에 남을 대기록을 세웠다.

사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빌라스보아스 감독의 행동에서 나왔다고 볼 수도 있다. 최고참격인 드록바와는 5달, 램파드와는 9달 차이인 보아스는 그가 라커룸을 휘어잡기 위해 했던 행동[9]들이 평소에 이루어졌던 행동들과는 거의 다른 것들이었고, 이것이 잘못 맞춰진 톱니바퀴 마냥 불협화음을 내는것. 결국, 고참 선수들은 이러한 행동에 자신들이 외면받는다는 느낌을 받고 있고, 이러한 것으로 하여금 적대감이라는 소통의 벽이 생기는 것이다.

결국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보아스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7월 펼쳐질 여름 이적시장에서 피의 숙청이 펼쳐질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생각했다. 그와 감독간의 불화설이 터진 이후로 미국팀을 비롯한 많은 팀으로부터 많은 이적설이 터진 것도 사실이었지만 2012년 초, 보아스가 성적 부진을 이유로 전격 경질 당하면서 미래는 불투명하게 되었다.

보아스 감독 경질 이후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첼시의 미드필더진에서 홀로 빛나고 있다. 로베르토 디 마테오 감독 지휘 하에 투 볼란치의 한 자리를 맡으며 볼 전개와 수비적인 롤을 매우 잘 소화해내는 중이다. 3월 15일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나폴리 전에서는 1골 1어시를 기록하면서 팀의 극적인 8강 진출에 기여했다. 4월 10일 33R 풀럼 전에서도 결승골을 기록하였고, 이 득점으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최초로 150골 고지에 오른 미드필더가 됐다.

특히 강팀과의 중요한 경기에서 램파드는 빛났다. 토트넘과의 FA컵 4강전에서 전성기 급의 롱패스를 전달해 드록바의 골을 도왔으며, 3년 만에 프리킥 골까지 넣었다. 이번시즌 램파드가 기록한 골 중 단연 최고였다.[10] 곧바로 이어진 바르샤와의 1차전에서는 리오넬 메시의 볼을 뺏어서 하미레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롱패스로 드록바의 결승골을 도왔고, 수비력 역시 훌륭했다. 4강 2차전에서는 그야말로 람마에. 1명이 퇴장 당해 볼장 다 봤다고 생각했던 상황에서 클래스 돋는 멋진 패스를 하미레스에게 찔러넣어 만회골에 큰 공헌을 했다. 바르샤와의 1, 2차전의 숨은 공신 중 한 명.[11]

그 뒤 FA컵 결승전에서 드록바의 쐐기골을 멋진 패스로 도왔으며,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는 4강전에서 퇴장당한 존 테리를 대신해 주장 완장을 차고 자신의 몫을 충실히 수행했으며 승부차기 역시 깔끔하게 성공시켰다. 우승 이후 디디에 드록바, 존 테리와 부둥켜 안고 있는 모습은 이 세 사람을 지켜본 첼시 팬들로 하여금 눈물나게 하는 장면. 시상식에서는 많은 첼시 팬들이 그와 존 테리가 함께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장면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11/12 시즌: 49경기(선발 38경기) 16골 10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0 26 4 11 5
챔피언스 리그 12 8 4 3 3
FA컵 5 3 2 2 2
EFL컵 2 1 1 0 0
합계 49 38 11 16 10

3.6. 2012-13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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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3 시즌을 끝으로 첼시와 결별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한 시즌 더 잔류하게 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팬들은 왜 버리냐면서 로만을 까지만 현재 첼시가 새로운 규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긴축재정이 필요한 지라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다. 다만 딱히 중원에 대한 대책 없이 선수를 파는 것에 대한 우려도 없잖아 있다. 현재 램파드의 대체자는 오스카르가 유력한데 아직 오스카는 램파드 수준의 피지컬을 갖추지 않아 불안한 면이 많았다. 어찌됐건 만약 헤어져야 한다면 마지막은 깔끔하게 끝내는 것이 양쪽에게 좋은 상황이다.

리그 2R 레딩 전에서 에덴 아자르가 얻어낸 PK를 성공시키며 선제골을 넣었다. 이후 2-2 동점 상황에서 나온 토레스의 결승골의 기점이 되는 등 팀의 2골에 관여하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UEFA 슈퍼컵 경기에서 상대 중원에 탈탈 털리면서 4-1 패배에 일조했다.

4R QPR 전에서는 A매치를 뛰고 왔다고 해도 그렇지 떨어질 대로 떨어진 경기력을 보였다. 미켈과 함께 애매한 활동량으로 첼시 팬들이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5R 스토크시티 전에서는 벤치에서 출발했다. 후반전이 되어서도 팀이 득점없이 0-0 스코어를 이어가자 교체 투입되었다. 램파드가 좌우로 벌려주는 패스로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자 점점 첼시의 공격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애슐리 콜의 결승골의 시발점이 되면서 다시 좋은 활약을 펼쳤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2차전 경기에서 원터치로 페널티 박스로 질주하는 마타에게 넘겨줬으며 마타가 가볍게 밀어넣으며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6R 아스날 전에서도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었는데, 부상 때문이라고 한다.

7R 노리치 전에서는 전반초반에 토레스에게 정확한 롱패스를 연결했으나 토레스가 기회를 날려먹으며 아쉬움을 삼켰다. 그러다 전반 22분, 토레스가 오버헤드 킥으로 떨군 볼을 운좋게 잡아 하프 발리 슛으로 역전골을 집어넣었다. 운과 램파드의 기술이 합쳐진 멋진 골. 이것으로 램파드는 무려 EPL 통산 149골로 역대 득점 5위로 올라갔다. 지난 시즌에도 이야기가 나왔지만, 램파드는 미드필더다. 그런데 미드필더가 해트트릭, 멀티골도 자주 넣고 이렇게 골도 꾸역 꾸역 넣다보니 미들라이커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처럼 이 경기에서 램파드는 지난 몇 경기 동안의 좋지 못했던 폼을 끌어올려 수비적인 면과 공격적인 면에서 모두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FIFA 클럽 월드컵 결승 코린치아스 전에서 선발출전하였으나 0-1로 패해 준우승으로 만족해야했고 2007년 이후로 이어진 유럽 클럽의 5년 연속 클럽월드컵 우승을 이어가지 못한 채로 6년만에 남미 클럽에게 우승을 넘겨줘야 했다. 더불어 코린치안스는 12년만에 이 대회 2번째 우승을 거뒀다.

18R 아스톤 빌라 전에서는 후반전에 전성기 시절을 연상케하는 환상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을 기록하면서 8-0 완승에 기여했다. 이 날 득점으로 램파드는 EPL 500번째 경기에서 골까지 넣는 대기록을 수립해 나갔다.

20R 에버튼 전에서는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전반 42분에는 하미레스의 크로스를 헤더로 마무리해 동점골을 기록했으며, 후반 27분에는 마타의 크로스를 받은 아자르의 헤딩슛을 에버튼 수비수의 처리 미스로 다시 쇄도해 드러온 마타의 슈팅이 팀 하워드 골키퍼의 손에 맞고 나왔고, 이를 램파드가 그대로 밀어넣으면서 역전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그렇게 첼시의 승리로 경기가 마무리되면서 MOM으로 선정되었다.

21R QPR 전에서는 팀이 답답한 경기력을 보이자 램파드는 중거리 슛만 남발했다. 이날 패배로 단숨에 첼시 팬들은 단체멘붕에 빠졌으며,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가 되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진 상대가 무슨 강팀도 아니고 이 경기 전까지 올 시즌 1승밖에 거두지 못한 꼴찌 팀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대에게 한 골도 넣지 못하고 패배했다는 것은 어떤 이유를 붙여도 구차한 변명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첼시 안방경기에서 졌다. 더불어 올 시즌 첼시는 QPR에게 1무 1패를 당했다.

FA컵 사우스햄튼 전에서 교체 출전하여 PK를 성공했다.

22R 스토크시티 원정에서 램파드는 미드필드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비록 두 번의 좋은 득점 찬스를 놓쳤지만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면서 이번 시즌 두 자릿수 득점까지 겨우 2개 밖에 남지 않았다.

23R 아스날 전에서는 1-0으로 앞서던 전반 16분 경에 하미레스가 얻어낸 PK를 성공시켰다. 그 뒤 거의 전반 35분까지 첼시가 계속해서 밀어붙였고, 점유율이 첼시 7:아스날 3까지 몰아붙일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첼시 역시 심각한 혹사로 인해 체력 저하가 전반 40분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것은 후반전에 만회골을 내주는 원인이 되었지만, 끝내 2-1 승리를 따냈다.

24R 레딩 전에서는 이 경기 5경기 연속 풀타임 출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평타를 쳤다. 그리고 램파드는 이 날 헤딩골을 기록하였다.

2013년 2월 3일 뉴캐슬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뒤지던 후반에 환상적인 중거리 슛을 골로 만들어내며 첼시에서 EPL 최초로 10시즌 연속 리그 두자리수 득점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03/04~12/13시즌) 하지만 팀이 3-2 스코어로 패배하면서 빛이 바랬다.

여기에 2월 6일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에서 역전 중거리골을 넣었다. 그와 함께 귀신같이 첼시에서 다시 램파드와의 재계약 협상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나왔다.[12]

26R 위건 전에서 선발출전하여 3선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후반 42분, 측면에서 아자르의 패스를 마타가 흘려준 것을 그대로 차 넣으면서 멋진 골을 만들어냈다. 이 득점으로로 이번 시즌 리그에서만 11골, 게다가 최근 11경기 9골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해내며 나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FA컵 32강 재경기 브렌트포드 전에서는 팀의 3번째 골을 넣었다.

27R 맨시티 전에서는 느려터지고 활동량도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며 경기 내내 적은 수비 가담과 어정쩡한 모습으로 팀의 경기력 저하에 한몫을 했다. 그나마 맨시티가 전반 내내 체흐의 선방과 아궤로의 삽질 등으로 겨우 버티며 후반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후반전, 말리는 경기를 하던 첼시에게 뎀바 바가 결정적인 PK 찬스를 선물했다. 키커로 램파드가 나섰고, 200호골을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나 놀랍게도 조 하트의 선방으로 선제골의 기회는 날아가버리고 만다. 그리고 다시 경기는 말려들어갔고 결국 후반 18분 야야 투레의 환상적인 선제골을 내주고 만다. 결국 경기는 2-0 패배로 종료되었다. 이 날 경기는 이번시즌 램파드의 최악의 경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3년 3월 17일 리그 30R 경기에서 첼시 통산 200골을 달성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는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였다. 첼시에서 최다 득점자이자 레전드인 바비 탬블링과는 이제 2골차. 프리미어리그는 물론이고 UEFA 유로파 리그, FA컵도 아직 남았기에 최다 득점기록도 무난히 깰것이라 예상중.

35R 스완지 시티 전에서는 램파드 특유의 원터치패스를 받은 오스카가 멋진 페널티 박스 끝자락에서 때린 강슛으로 득점에 성공하며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이후 3분 뒤 추가시간에 마타가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이를 램파드가 성공시켰다. 이 골로 램파드는 첼시 통산 201골을 달성하여 바비 탬블링이 보유한 첼시 사상 단일 선수 최다 득점(202골)에 한 골 차로 다가섰다.

그리고 2013년 5월 11일 잉글리쉬 프리미어리그 37R 아스톤 빌라 FC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출전하여 혼자 동점 골과 결승 골 두 골을 집어넣으며 팀의 승리와 다음 시즌 챔스 진출을 견인, 마침내 첼시 통산 203골을 달성하며 첼시 역사상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이날 램파드가 두 번째 골을 넣은 뒤 첼시 원정팬들에게 달려가 세리머니를 하는 도중 원정팬들 몇 명이 우르르 난입하기도 했다.#

유로파 리그 결승전에서도 주장 완장을 차고 루이즈와 함께 중원을 이루며 벤피카에게 털리기도 했으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중거리 슛을 전반 전에 날리기도 했으며, 후반전에도 골대에 맞고 나오는 화끈한 중거리 슛을 때리기도 했다. 그리고 주장으로서 테리와 함께 UEFA 유로파 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경기 종료 후 첼시와 1년 재계약에 성공하며 2014년까지 뛰게 되었다! 여기에 전성기 시절 은사 of 은사인 주제 무리뉴 감독까지 돌아오면서 다음 시즌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2012/13 시즌: 47경기(선발 36경기) 17골 7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9 21 8 15 1
유로파 리그 7 7 0 0 4
FA컵 4 3 1 2 0
EFL컵 3 2 1 0 1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클럽 월드컵 2 1 1 0 0
슈퍼컵 1 1 0 0 1
합계 47 36 11 17 7

3.7. 2013-14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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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4 시즌 헐 시티와의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서 전반 초반 토레스가 얻어낸 PK를 골로 연결하는데는 실패했지만 이후 프리킥으로 아름다운 골을 만들어내며 본인의 기록을 204골로 늘렸다. 팀도 2:0으로 쉽게 승리했다.

3R 아스톤빌라 전에서는 부정확한 롱패스를 보이는 등 아쉬운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지연되었던 2R 맨유 전에서는 램파드-하미레스 중원이 맨유의 중원에 박살났으며, 무승부를 거둔 것이 매우 다행인 수준이었다.

리그 4R 에버튼 전에서는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첼시는 파상공세에도 불구하고 득점없이 1-0으로 뒤지자, 결국 53분 경에 오스카르와 함께 램파드를 투입시켰다. 이는 동선이 겹치는 마타를 빼고 오스카로 공격의 활로를 찾고, 쉬얼레는 나쁘진 않았으나 뭔가 감독이 플레이가 나오질 않는듯하기도하고 중원에서 좀더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고자 하는 의도로 램파드를 투입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토레스 투입 후 중원과 수비 조직력이 완전히 박살나면서 제대로된 빌드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결국 뻥축구를 하게되었다. 그러다보니 그나마 나오던 창조적 플레이들도 램파드 투입 이후 전반보다 훨씬 더 단조로운 플레이가 되었고, 도저히 눈뜨고 봐줄 수 없는 졸전을 치루고 1-0 패배로 끝났다.

리그 9R 맨시티 전에서는 그동안 맨시티와 만나면 지워지기 바빴던(...) 하미레스-램파드 라인이 가동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날은 둘 다 거하게 약을 빨았는지 대활약을 펼치며 패스, 압박, 공수양면에서 두루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러면서 팀도 토레스의 극적인 라스트 미닛 골로 2-1 짜릿한 승리를 거두었다.

12R 웨스트 햄 전에서는 전반 20분에 얻은 PK를 손쉽게 넣으면서 첼시의 리드를 가져온다. 이후 후반 81분에는 공격 찬스에서 흘러나온 공을 제대로 때려 멀티골을 기록하였다. 정말 오랜만에 4-3-3으로 가동되어 경기를 진행하였으며, 쉽지 않은 웨스트 햄 원정에서 3:0으로 깔끔한 승리를 거두게 하는데 큰 몫을 했다. 이 날 램파드는 확실히 자기 롤을 맡자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14R 선더랜드 전에서는 1-0으로 뒤지던 전반 16분에 아자르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골을 기록하면서 동점을 만들었으며, 이후 후반 17분에 아자르와 2대1 패스를 주고받았고, 아자르가 이를 환상적인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가르면서 어시스트도 기록했다. 총 1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팀 승리에 기여했다.

램파드 재계약건에 대해서는 첼시에 대해 잘 모르는 팬들은 첼시를 레전드 대우가 형편없다며 까지만 첼시 팬들은 오히려 첼시 보드진이 아닌 램파드를 깐다. 기량이 여전하다면 모를까 기량이 하락할만큼 하락한 현재도 한화로 2억이 넘는 과분한 주급을 요구했다. 첼시 구단측에서는 기량도 예전만 못한 램파드를 무리한 주급까지 주면서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첼시 팬들은 램파드의 이런 태도를 문제삼았다.

그런 가운데 2014년 6월 들어서 리얼부 구단주 만수르가 구단주인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팀으로 창단되는 뉴욕 시티 FC이적될 가능성이 커졌다.

결국 첼시 오피셜 트위터를 통해 13-14 시즌을 끝으로 첼시를 떠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램파드가 첼시를 떠난다고 할 때, 로만 아브라모비치주제 무리뉴는 언제든지 돌아오라고 말했다.

2013/14 시즌: 40경기(선발 32경기) 7골 5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6 20 6 6 3
챔피언스 리그 11 9 2 1 2
FA컵 1 1 0 0 0
EFL컵 1 1 0 1 0
슈퍼컵 1 1 0 0 0
합계 40 32 8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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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통산 기록 648경기 211골 149도움[13]
첼시 FC에서의 통산 득점기록은 211골. 다시 말하는데 어디까지나 중앙 미드필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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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bye, Lampard

4. 맨체스터 시티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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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부터 MLS가 시작되므로 시즌 전까지 맨체스터 시티로 임대된 줄 알았지만 맨시티로 이적하였다.[14] 홈그로운 충족과 동시에 야야 투레의 포지션을 백업해준다는 것이 맨시티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다만 맨시티의 첼시전에서는 출전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후 9월 13일 아스날 FC와의 프리미어리그 4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으로 맨시티 데뷔전을 치렀는데 전반 45분 동안 눈에 띄는 활약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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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시티의 유니폼을 입고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자신의 친정팀을 상대로 동점골을 넣은 램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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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난 후, 오랜 동료였던 디디에 드록바와의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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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팀 팬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박수[15]
9월 21일 첼시와의 프리미어리그 5라운드 홈 경기에 77분 교체 출전하여 동점골을 기록했다. 득점 후 세레머니를 하지 않으며 진정한 첼시 레전드이자 프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파블로 사발레타가 퇴장당해 램파드가 뛴 시간 동안 한 명이 부족했던 맨체스터 시티는 그의 조율 능력 앞에서 이게 한 명이 부족한 게 맞는가 할 정도로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아이러니한 건 웨스트햄에서 첼시로 이적했을때 첫 골을 넣은 날짜와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해서 첫 골을 넣은 날짜가 똑같다! 링크 여담으로, 이 골로 램파드는 EPL 모든 팀 상대로 골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파일:Lampard Sheffield Goal(14-15).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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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일 캐피털 원 컵 32강전인 2부리그 6위 팀인 셰필드와의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풀타임 또한 소화해 체력에 아무 문제가 없음을 증명했다! 맨시티의 대승에 크게 공헌하여 2골 1도움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했으며[16] 중원에서 공수조율 및 볼배급을 혼자서 캐리하는 저력을 보였고 MOM으로 선정되었다.

한편 첼시는 2부리그 21위인 볼턴을 상대로 홈에서 가까스로 이겨 맨시티와 큰 대비를 보였다.

9월 27일 또 골을 넣었다! 헐 시티 AFC 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어 사발레타의 크로스를 원터치로 골까지 만들어냈다! 클래스는 영원하다. 맨시티 커뮤니티에선 램파드를 맨시티의 레전드로 대우하는 등 매우 분위기가 좋았다.

토트넘 전에서는 부상으로 실려가는 중에서도 2어시스트를 하는 위엄을 보여줬다.

11월 30일 프리미어리그 13라운드 경기에서 사우스햄튼 FC를 만나서는 교체 출전해서 맹활약했다. 25분정도 뛰었는데 1:0으로 이기고 있고, 엘리아킹 망갈라가 퇴장당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지능적인 중거리슛으로 쐐기골을 넣고, 이후에도 모르간 슈네데를랭의 공백을 공략하며 맹활약, 가엘 클리시의 세번째 골에서도 빌드업을 담당했다.

그야말로 레전드 클래스가 무엇인지 보여주며 하늘색 피의 램파드로 활약중이다.동영상 맨시티에서 활약하는 걸 아쉬워하는 첼시 팬들의 댓글이 많이 보인다.

맨시티에서 램파드에게 임대 연장 계약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램파드도 EPL 잔류에 긍정적인 반응이고, 야야 투레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출전에 따른 공백을 메울 수 있어 양쪽 모두 긍정적으로 보인다. 결국 2월까지 임대 계약을 연장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12월 14일,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선 무려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결승골을 터뜨렸다. 이 골로 티에리 앙리와 프리미어리그 통산 득점 동률을 이루며 이 부분 공동 4위로 올라섰다. 12월 13일까지 12경기 6골.

2015년 1월 1일, 맨체스터 시티 공식 홈페이지에 시즌 말까지 계약을 연장한다는 오피셜이 떴다.

2015년 1월 2일, 선더랜드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시즌 7번째 골을 넣었다. 덤으로 EPL 역대 득점 단독 4위로 올라섰다(EPL 통산 176골).

첼시가 당해 시즌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 램파드와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사실 당시 상황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당시 중원을 개편해야했던 첼시 입장에서 램파드를 데리고 있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고연령, 고액주급). 램파드도 첼시의 상황과 자신의 입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재계약에 매달리지 않고 이적을 선택한 것이다.[17][18] 그 결과 첼시는 네마냐 마티치세스크 파브레가스로 완벽하게 중원을 개편할 수 있었고, 램파드는 빅리그+돈+출전이 보장되는 맨시티 임대를 선택하여 축구선수로서의 말년을 좋게 보내게 되었다. 양쪽 모두 윈윈한 셈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2014년 12월 31일 부로 종료되는 임대 연장을 할 경우 임대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고 EPL 사무국 측에 선수 로스터를 재등록하는 절차가 필요하기에 2015년 첫 경기인 선더랜드와의 경기에는 출전이 불가능해야 정상이지만, 램파드의 출전이 이루어지면서 수많은 뒷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온스타인과 같은 영국의 주요 스포츠 기자들의 취재 결과 진상이 밝혀지는데 램파드는 뉴욕 시티와 계약한 적이 없으며, 맨체스터 시티와의 1년 계약을 한 것이다. -뒤통수-

전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9]
* 맨시티가 당초 언론에 발표한 내용은 램파드를 뉴욕 시티에서 임대 영입했다는 것.
* 실제 계약은 임대가 아니라 맨시티와 램파드 간에 6개월 보장, 6개월 연장 옵션 계약임. 맨시티가 12월 31일부로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조건으로 최소 6개월, 최대 1년의 단기계약을 맺음. 맨시티가 12월 31일에 계약을 파기하기로 결정한다면 직후 1월 1일 뉴욕 시티와 사인하기로 상호 합의.
* 맨시티가 뉴욕 시티에서 임대한 것으로 발표를 한 이유는, 첫 번째로 뉴욕 시티가 주급을 지급하는 형식의 임대로 발표하여 맨시티의 페이롤을 절약해 FFP를 피해 가기 위한 것이었음.
* 맨시티가 뉴욕 시티에서 임대한 것으로 발표를 한 두번째 이유는, 당시 은퇴 수순을 밟고 있던 램파드가 맨시티의 쟁쟁한 선수진들 가운데 주전을 차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따라서 램파드의 활약이 저조할 경우 정말로 12월 31일 부로 계약을 파기하고 뉴욕 시티와 램파드가 1월 1일에 새로운 계약서를 작성하고, "자연스레 임대 복귀"하는 것 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었음. 실제로 당시 맨시티 수뇌부는 램파드와 6개월 후 계약을 파기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함.
* 램파드는 첼시가 아닌 잉글랜드 팀에서 뛸 수 있는 자연스런 상황과 명분, 프리미어리그 커리어를 연장하는 실리를 챙길 수 있으며, 무엇보다 6개월 후 맨시티가 정말로 계약을 파기하여 뉴욕 시티로 넘어가게 되었을 때 체면을 구기지 않고 단지 임대 복귀라는 자연스러운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음.
* 임대 연장의 경우 계약서를 새로 쓰고 스쿼드 등록 절차를 거처야 하기에 선더랜드전에 출전할 수 없음.
* 그러나 램파드와 1년 계약에서 파기조항만 삭제하는 것이기에 절차 없이 바로 선더랜드전 출전 가능.
* 램파드는 뉴욕 시티에 입단하지 않은 상태이며 맨시티와의 계약이 파기되는 1월 1일에 사인하기로 합의만 본 상태.
* MLS는 3월에 개막하기에 램파드의 이적만 믿고 시즌권을 구입한 뉴욕 시티 팬들이 피해자. 뉴욕 시티는 상당한 상업적 이익을 챙김.

뉴욕 시티 팬들은 당연히 분노했고, 일부 첼시 팬들도 배신감을 느꼈다. EPL 사무국 측에서 컨펌을 해주면서 루머가 사실임이 드러났다. 기사 뉴욕 시티 팬들은 우리가 무슨 맨시티의 하청구단이냐 라면서 분노했고, 뉴욕 시티와 공동으로 창단 작업에 착수한 뉴욕 양키스까지 영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기사 이미 티에리 앙리등을 통해 인지도를 쌓은 뉴욕 레드 불스가 터줏대감으로 있기에 뉴욕 시티는 창단 과정부터 잡음을 드러내며 인심을 잃었다. 뒤늦게 유럽 리그가 끝나는 7월 부터 뉴욕 시티에서 뛴다고 발표했지만 이미 성난 팬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기엔 늦은걸로 보인다. 기사 첼시 팬들 역시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 클럽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레전드 중 한명이자, 엄청난 사랑을 받던 선수가 이런 식으로 부메랑이 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첼시와 뉴욕 시티 팬 모두에게 공분을 사게 된 램파드에게는 결과적으로 악수가 된 듯 하다.

이런 상황에서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벌어지는 프리미어리그 23라운드 첼시 대 맨시티 경기가 주목받았다. 페예그리니 감독이 첼시 상대로 또 램파드를 출전시키는 첼시 팬들을 확인사살하는강수를 둘지, 램파드에 대해 배신감과 애정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첼시 홈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맨시티 홈에서 램파드가 첼시를 상대로 동점골을 넣은 경기에서는 첼시 원정팬들이 기립박수를 쳐줬지만 사건이 심각해졌다. 맨시티와의 경기를 앞두고 첼시 측은 램파드를 위한 식전행사는 없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과거에 발락이나 드록바가 타팀 소속 선수로 스탬포드 브릿지에 돌아왔을때랑은 대비되는 부분이다.[20] 첼시 팬들은 한때 구단의 레전드가 완전한 적이 된것에 대해 많이 씁쓸할 듯하다.

결국 23라운드 첼시와의 홈경기에 교체 출전했는데 야유와 박수 모두가 램파드를 맞이해줬다. 그래도 터치라인에서 몸풀때는 터치라인 바로 옆 구역의 팬들 대부분이 박수를 쳐준 것을 봤을때 비록 통수맞기는 했어도 팬들의 램파드에 대한 애정은 여전해 보였다. 물론 '램파드 배신자 꺼져라!!'같은 피켓을 들고있던 팬들도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논란과 잡음들이 있었지만 15년 리버풀과의 첼시의 홈경기를 관전하며 충격적으로 패배할 때도 근심과 걱정하는 듯한 모습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기에 첼시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깊다고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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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극후반에는 딱히 엄청난 폼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투레의 폼이 결정적으로 떨어지며 상당히 자주 출전하게 되었고, 결국 38라운드 마지막 경기에는 주장 완장을 차고 결승골을 넣는 활약을 보이며 아름다운 이별을 하게 되었다.

이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램파드는 뉴욕 시티도 아니고 맨시티도 아닌, CFG[21]과 계약을 맺은 것이라고 한다. 어찌 되었건 해당 시즌에 뉴욕 시티에서 뛸 예정이 없던 것은 변함없다. 사태가 심각해진 것을 램파드와 CFG 측도 인지했는지 허겁지겁 뉴욕 시티와 램파드의 정식 계약을 체결을 발표했다. 결과적으로는 더이상 맨시티에 뛰지 않고 2015년 7월부터 뉴욕 시티에 합류하게 되었다.

2014/15 시즌: 38경기(선발 13경기) 8골 3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2 10 22 6 1
챔피언스 리그 3 1 2 0 0
FA컵 2 1 1 0 0
EFL컵 1 1 0 2 2
합계 38 13 25 8 3

5. 뉴욕 시티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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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름부터는 드디어 뉴욕 시티에서 정식으로 뛰게 되어 시티 풋볼과의 악연을 드디어 끊어내었다.

입단 하자마자 공식 캠프에서 종아리 부상을 당했다. 당초 계획으로는 7월 13일 토론토 FC와의 홈경기에서 MLS 데뷔전을 치르는 것이었으나 무산되었고 7월 18일 뉴 잉글랜드 레볼루션과의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7월 26일 안드레아 피를로와 함께 올랜도 시티를 상대로 홈에서 MLS 데뷔를 치를 확률이 높아졌다. 그리고 MLS에서는 1경기도 뛰지 못한 주제에 2015 MLS 올스타에 선정되어 7월 29일 토트넘 홋스퍼 FC를 상대로 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부상 회복이 늦어지며 MLS 데뷔전은 물론이고 올스타전 출전도 무산되었다. 언제쯤 회복이 가능한지도 언론 보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기화 될 수 있다. 그러나 8월 2일 몬트리올 임팩트와의 홈 경기에서 후반전 교체 출전으로 홈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MLS에 데뷔했다. 뉴욕 시티는 8월에 와서야 다비드 비야-안드레아 피를로-프랑크 램파드라는 화려한 라인업을 드디어 가동하게 되었지만... 몬트리올과의 경기에선 2:3으로 패배. 8월 10일 경기에 뉴욕 레드 불스와의 더비 매치에 주전으로 나왔지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후반에 교체 당했고 그 뒤에 부상을 당해 8월 14일 DC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는 불참했다. 하지만 램파드의 불참덕에 오히려 팀의 경기력은 폭풍 상승하여 3:1 완승을 거두었다.

8월 30일 콜럼버스 크루와의 경기에서 약 20일만에 복귀하였으나 별 다른 활약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60분 교체되었다. 37살이라는 나이와 2014/15시즌 EPL을 풀로 뛰고 바로 MLS에 합류한 점 때문인지 부쩍 체력적으로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MLS 선수들에게 신체적으로 밀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후반부에 그럭저럭 활약하며 10경기 출전 3득점으로 시즌을 마무리 했다. 하지만 이미 팬들에겐 이적 파동으로 한 차례 찍힌 데다 썩 좋지 않는 모습을 보인 탓인지 골닷컴이 선정한 2015 MLS 급료 도둑 베스트 11에 메인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2016시즌 리그 19경기 12골을 기록하며 녹슬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15시즌 10경기, 2016시즌은 19경기 출전에 그쳐 한화로 연봉 70억을 수령하는 선수치고는 2시즌 합쳐 리그 절반 가량 나오질 못해 먹튀소리를 면치 못할 상황이다.

2016년 8월 14일, MLS 23라운드 콜럼버스 크루 SC전에서 전반 41분 선제골을 넣으면서, 통산 300골 고지를 밟았다.기사[22]

시즌 종료 이후 뉴욕 시티와 재계약 없이 자유 계약으로 방출되었으며, 겨울 이적 시장에서 새로운 팀을 알아볼 것으로 보였으나 결국 2017년 2월 2일, 램파드는 21년 간의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겠다는 발표와 함께 현역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6.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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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국가대표만 가면 죽을 쑤기 때문에[23] 역대 잉글랜드 감독들이 매번 스티븐 제라드와 함께 효용성에 대해 골치 아파하는 선수.슈팅대비 득점수만 봐도 문제점이 나오긴한다.

이러한 현상은 첼시와 대표팀의 전술적 차이에서도 기인하는 바가 있고, 램파드 개인의 성향에도 그 원인이 있다.

램파드는 체력, 활동량, 중거리 슈팅력, 높은 곳에서의 위치선정 능력과 그에 따른 결정력, 뛰어난 피지컬, 빠른 사고력 등이 장점인 선수다. 이를 바탕으로 원터치 투터치 패스나 슈팅 등 다이나믹한 공격전개에는 출중하다. 첼시의 허리진은 전적으로 램파드의 이러한 공격적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 맞춰져 있다. 에시앙, 마케렐레 등의 허리진영은 주로 수비 위주의 플레이를 하며 램파드를 지원하고, 램파드의 패스를 받아먹을 좌우 날개들은 빠르고, 드리블과 컷 인, 즉 사이드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가는 플레이나 공간 따먹기에 능숙하다. 공격진도 드록바 등 힘과 체격을 겸비한 공격수가 일선에서 수비수들을 견제하며 램파드를 위한 공간을 지원한다. 이 때문에 첼시가 2000년대 후반 전유럽을 호령하던 바르셀로나의 대항마로 여겨졌던 것. [24]

반면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는 이러한 전술을 활용하기가 대단히 애매하다. 제라드 램파드 논쟁에서 문제가 되듯 제라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 사실 제라드가 멀티플레이어인 만큼 사이드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하면 되기 때문에 최대한 활용 못하는 것까진 괜찮다.

굉장히 복합적인 문제인데 클럽에선 주로 4231이나 433을 쓰던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442로 전환하고, 최전방은 결정력이 그다지인 떡대 - 결정력이 좋지만 키 작은 친구들. 그런데 날개는 보통 크로스 셔틀 혹은 창의적이지만 느리다거나 피지컬이 안 좋다거나 해서 433에 어울리는 날개, 거기다 드리블로 활로를 뚫어줄 선수는 부상으로 맛이 가서 잘 보이지 않는다.

램파드는 첼시에서처럼 투터치 역습 등 최대한 빠르게 합리적으로 전개해야 될 때는 무섭지만 돌파구가 일목요연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에선 공을 효율적으로 돌리거나 선수들 재배치를 시키거나 하는데는 좀 부족한지라 이제 중원에서 개싸움이나 하게된다. 이래서 가레스 베리 등으로 실험하고 하는 것이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8강전에선 페널티 킥에 그렇게 강하면서도 포르투갈과의 승부차기에서 첫 번째 키커로 나섰다가 히카르두의 선방에 막혀 버려 패배의 한 축을 담당했다.
파일:램파드노골.gif
그리고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16강에서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전반에는 그가 찬 중거리슛이 누가 봐도 명백히 골라인 안쪽에 떨어졌으나 주심은 이를 골로 인정하지 않았고 [25], 후반에는 프리킥을 찼는데 골포스트를 맞고 나갔다. 이쯤되면 그저 지못미. 그리고 팀은 앙숙이자 라이벌인 독일에 4:1로 관광당하며 16강에서 떨어졌다. 이 상황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결승전 제프 허스트의 골논란과 놀랄만큼 유사한 상황이여서 44년만에 퉁쳤다는 드립이 흥했다.

이 오심은 다음 월드컵부터 심판들에게 골라인을 넘기면 반응하는 센서가 부착된 손목시계를 차는 원인이 되었다.

자신의 3번째 월드컵인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는 이탈리아전, 우루과이전은 교체 명단에 있었으나 출전하지 않았고 팀은 2패를 기록, 일찌감치 탈락이 확정되어버렸다. 마지막 코스타리카전에서는 출전했으나 결국 무승부를 기록했다. 월드컵을 마친 뒤 대표팀 은퇴를 발표했다.

[1] 소속팀+국가대표 통산[2] 이후 포츠머스 FC사우스햄튼 FC, 토트넘 홋스퍼 FC 등을 거쳐서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감독을 하게 된다.[3] 첼시 역대 최다 득점자[4] 그렇기에 램반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물론 존 테리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있으나 팀의 주장인 테리와의 차이를 두기 위해 애칭인 램반장을 달아주었다.[5] 결과는 승부차기 끝에 맨유의 승리.[6] 참고로 야야 투레의 (스탯 상으로는)최전성기때 기록이 13-14시즌의 20골 9도움이다. 당시 야야 투레가 저 기록으로 골 넣는 미드필더라 불리며 엄청난 화제가 되었음을 감안하면 램파드의 저 스탯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7] 20-21 시즌에 브루노 페르난데스가 경신하기 전까지 PL 미드필더로서 모든 대회 총합 최다골 기록이었다.[8] 그리고 이 리그 36개 공격포인트 기록은 아직까지 단일 시즌 중앙 미드필더 최다 공격포인트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 기록에 최근접한 선수는 케빈 더 브라위너의 19-20시즌 13골 20도움으로 33개.[9] 라니에리 시절부터 앞서 말했던 고참격 선수들은 라커룸을 자율적으로 이끌어나가도 된다고 했다. 즉, 라커룸의 분위기를 그들이 조성하게 한것. 그러나 보아스는 그가 라커룸을 잡기 위해 이러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또한 첼시 감독 대변인으로 꽤 오랫동안 활동해온 코치가 갑자기 해임되었다. 이는 곧 그가 실세를 잡겠다는 말로도 해석될수 있다.[10] 이 골은 첼시 팀 선정 11/12시즌 베스트 골 2위이다. 1위는 후술된 하미레스의 바르셀로나전 칩슛[11] 애초에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가장 강한 미드필더 중 한 명이다. 04-05 시즌에는 16강 홈 2차전 4-2 관광에 한 몫 하여 한 골 넣었다. 05-06 때도 좋은 활약을 펼치며 역시 1골. 06-07 때는 골라인 근처에서 골대를 향해 툭 찬것이 그대로 들어가는 놀라운 골을 성공시켰고 08-09 2차전에서는 그야말로 킬패스 오브 킬패스를 모두 보여주며 바르샤의 문전을 위협했다. 드록바가 날려먹어서 그렇지 여러모로 바르샤 킬러다.[12] 소문에 의하면 로만 구단주가 직접 개입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애슐리 콜과의 재계약 협상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13] 첼시의 현재까지 역대 최다 득점자이자 역대 출장 순위 4위이다.[14] 정확히는 MLS는 3월에서 11월까지 진행되므로 2014년 9월 당시 리그는 진행중이었다. 다만, 뉴욕 시티가 새롭게 리그에 참여하기 때문에 2015년 3월 새 시즌부터 경기를 하는 것이다.[15] 첼시 팬들도 그에게 기립박수로 맞이해줬다[16] 2경기 연속골, 이번시즌 총스텟은 3경기 3골 1도움. 경기당 1골 수준이다.[17] 보내는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던것도 아니고 첼시에서도 최대한 레전드 대우를 해줬으며 램파드도 프로답게 자신의 재계약 불발을 받아들였다.[18] 프로의 세계에서 구단과 선수가 합의점을 찾지 못해서 계약을 하지 않는것은 당연한 것이다. 상호 합의하에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인데 의리없다며 첼시나 램파드를 비난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19] 가디언지가 가장 먼저 기사화했다.[20] 물론 깔끔하지 못한 이적으로 첼시 팬들이 많은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다. 그리고 설령 이적 스캔들이 없었다 하더라도 첼시와 맨시티는 치열한 선두 경쟁중이기 때문에 현재 라이벌팀 소속인 레전드를 환영하는 행사는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21] 시티 풋볼 그룹: 맨시티, 뉴욕 시티, 맬버른 시티 소유 그룹.[22] 국가대표, 클럽 합산[23] 첼시에서 활약상에 비해 국대에서는 조금 떨어지는 데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25슈팅 무득점을 하는 바람에 이러한 고정관념이 생겼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33슈팅 무득점으로 타이 기록을 세웠으며, 독일과의 16강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최고 기록 경신도 넘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독일전에서 슛에 영혼이 실리지 않아서 득점 인정이 안되고 멋진 프리킥이 골대를 맞고 나오는 등의 불행을 겪으며 최고기록(39슈팅 무득점)을 수립하였다.[24] 그러나 이러한 전술도 에시앙이 장기 부상으로 인해 서서히 폼이 떨어지면서 수비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램파드의 포지션도 애매하지기 시작했다.[25] BBC에서 남아공 월드컵의 쇼킹한 순간 top 50을 선정했는데 이 오심을 1위로 선정하였다. 사실 그럴만한 것이 월드컵 시작전에 골라인 판독기술을 도입하자는 여론이 거셌는데 FIFA(특히 제프 블라터 회장)에서 묵살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사건으로 인해서 FIFA도 생각을 바꿨는지 골라인 판독기술이 본격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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