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z Welser-Möst | |
본명 | 프란츠 레오폴드 마리아 뫼스트 Franz Leopold Maria Möst |
출생 | 1960년 8월 16일 (64세) 오스트리아 린츠 |
직업 | 지휘자 |
소속 |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90~1996)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1995~2002) 빈 국립 오페라극장 (2010~2014)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2002~)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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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 출신의 지휘자이다. 미국 최고의 관현악단인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으며, 브루크너와 말러의 교향곡은 그의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2. 생애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의사, 어머니는 국회의원이었다. 청소년기에 바이올린을 지망했으나, 자신이 출연하기로 되어 있던 슈베르트 서거 150주년 공연에 가는 도중 교통사고로 부상을 입고 지휘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카라얀의 제자'라는 수식어도 이 기간에 생겨났다. 뮌헨 음악대학 진학 후 19세의 나이로 참가한 카라얀 국제 지휘자 콩쿠르에서 참가자 중 최연소 준결승자라는 기록을 남긴 것이다. 그 후 25세에 세계적인 음악 축제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참가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데뷔한다. 이때부터 뫼스트는 예명으로 활동해 왔는데, 스승[1]의 조언에 따라 본인이 성장해온 도시인 '벨스'를 이름 중간에 넣어 사용했으며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Franz Welser-Möst'이다.26세에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레퀴엠(모차르트) 연주를 지휘하며 EMI 그룹 음반을 녹음하기 시작했고, 곧 스위스와 미국[2]에서도 데뷔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30세에는 런던 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합창단장과 바이올리니스트를 해고하는 등 단원들과 크고 작은 마찰을 빚었고 단원들도 '평균 이하'라고 비아냥대며 단체 탈퇴로 맞대응해 갈등이 깊어져서 끝내 런던을 떠나게 되었다.[3]
이후 35세에 스위스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음악감독으로 발탁되어 2002년까지 오페라에 몰두했다. 바그너를 비롯한 여러 작곡가의 27가지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으며, 이러한 성과는 뫼스트 본인의 성공과 오페라단의 성장 모두에 크게 기여했다. 덕분에 뫼스트는 2005년에 다시 돌아와 총감독으로 취임했고 2008년에 사임했다.
2002년에는 미국 'Big 5' 정상급 관현악단으로 이미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어 현재까지 그 직을 유지하고 있다. 뫼스트는 초기부터 여러 원로 단원들을 사임시키고 래퍼토리를 바꾸는 등 변화를 시도했는데, 런던에서와 마찬가지로 도시 유일의 음악 평론가의 비난을 샀고 자신의 해고 소송에서 직접 진술하기도 하는 등 궂은일을 치렀다. 그러나 비난은 뫼스트를 끝까지 깎아내리지 못했다. 뫼스트는 처음으로 오보에 수석에 여성 연주자를 임명하고 21세기 작곡가들의 작품 초연을 진행했는데, 이러한 혁신은 탁월한 실력의 연주와 함께 뫼스트를 전진하게 했으며, 그렇게 20년 넘게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는 중이다.
2010년에는 빈 국립 오페라극장 음악감독에 취임했다. 자국민으로서는 카라얀 이후 거의 반세기 만에 사령탑을 맡는 것이라 오스트리아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2014년 9월에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두고 갑작스러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총감독과의 의견 충돌이 원인이라고 꼽았고, 사퇴와 동시에 예정되어 있던 무려 34회의 공연을 전부 취소하겠다고 발표했다.[4]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인연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각별한 인연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뫼스트는 무지크페라인 정기 연주회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공연에 매년 객원 지휘자로 등단하고 있다. 매년 첫날 전 세계가 주목하는 공연이자 세계 최고의 마에스트로들이 초청받는 공연이기도 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는 2011년, 2013년, 2023년 이렇게 총 세 차례 지휘했다. 특히 그중 2023년 연주는 뫼스트와 빈 필하모닉의 동행 25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하이라이트인 왈츠와 앙코르를 제외한 모든 작품[5]을 초연으로 공개하고 빈 소녀 합창단이 출연한 첫 시도이기도 했다.
3. 내한
1995년에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내한 당시 소프라노 조수미와 협연을 가졌고 이로써 한국 관객들을 처음 마주했다.2010년에 음악감독 직위를 맡고 있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했다. 이틀간 드뷔시, 모차르트, 브루크너, 베토벤 등의 작품을 지휘했다.
2022년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을 이끌고 예술의전당 무대에 섰다. 한국-오스트리아 관계에 있어 수교 13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여 오스트리아 자국 출신 지휘자를 섭외했다고 하며, 뫼스트 본인에게는 12년 만의 내한이었다. 이틀간 바그너[6], 드보르자크[7], 브람스[8], 리하르트 슈트라우스[9]의 작품을 지휘했다. 단순히 해외 투어라는 '이벤트'만을 위한 작품이 아니라 빈 현지에서 연주하는 래퍼토리를 그대로 연주한 것이라 국내 클래식 팬들의 많은 기대를 얻기도 한 공연이었다. 또한 내한 며칠 전에 이태원 압사 사고가 있었기에, 이틀간의 두 공연에서는 예정에 없이 시작 전에 빈 필하모닉 이사장의 추도사와 함께 바흐의 작품인 G선상의 아리아 연주가 추가되었다.[10] 이로 인해 앙코르는 생략할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지만, 뫼스트 본인이 직접 '빈의 정신을 담은 왈츠는 빈 시민들의 희로애락을 함께한다'는 짧은 연설 후 2023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에서 연주될 왈츠[11]를 미리 선보임으로써 객석의 큰 박수를 받았다.
[1] 안드레아스 폰 베닝젠. 리히텐슈타인의 남작으로, 어린 시절 푸르트벵글러 밑에서 자랐으며 동시에 그의 광팬이라고 한다. 1986년에 뫼스트를 입양하면서 양부가 되었는데, 당시 뫼스트의 친부모는 이를 반대하지 않았다.[2] 1989년에 뉴욕 필하모닉, 보스턴 심포니, 시카고 심포니를 처음 지휘했다.[3] 시간이 흐른 지금은 뫼스트 본인만의 잘못으로 볼 수는 없다는 의견이 많다. 수석지휘자 임명 후 양부의 전처와 결혼한 일로 인해 영국인 단원들이 그를 부정적으로 바라봤고, 평론가들 역시 그의 지휘를 지속적으로 까내렸다. 뫼스트 본인은 회고록에서 자신이 이 기간 동안 '일부 이해 관계자들의 방패막으로 사용되었다'고 밝혔다.[4] 과거에 말러, 카라얀, 로린 마젤, 아바도 역시 비슷한 이유로 사임한 바 있다. 어찌되었건 극장에서는 빠른 시일 내에 공연 대타를 마련해야 했고, 그 결과 정명훈이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5] 총 19곡 중 14곡[6] 파르지팔(바그너) 전주곡[7] 교향곡 제8번(드보르자크)[8] 비극적 서곡, 교향곡 제3번(브람스)[9] 죽음과 변용,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교향시)[10] 이때 추모의 마음으로 박수는 생략할 것을 당부했다.[11] 카나리아 왈츠, 수채화 왈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