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00000><colcolor=#fff,#dddddd> 프란츠 라이헬트 Frantz Reichelt | François Reichel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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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강용 옷을 입은 모습 (컬러 복원) | |
이름 | 프란츠 카를 라이헬트 (독일어) Franz Karl Reichelt |
앙리 프랑수아 라이헬트 (프랑스어) Henry François Reichelt | |
출생 | 1878년 10월 16일 |
보헤미아 왕국 베그슈테틀[1] | |
사망 | 1912년 2월 4일 (향년 33세) |
프랑스 파리 에펠 탑 | |
국적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틀:국기| ]][[틀:국기| ]] (1878~1909)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1909~1912) |
직업 | 발명가, 재단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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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발명가이자 재단사. 최초로 윙슈트를 발명한 인물로 여겨진다.동영상 속에 처음으로 죽음이 담긴 인간이기도 하다.
2. 생애
1878년 10월 16일, 보헤미아 왕국 베그슈테틀에서 태어나서 1898년에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다. 이후 1909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여 이름을 프랑수아로 개명했다.프란츠는 사망할 때까지 미혼으로 살았으며 1907년부터 오페라 가르니에 근처 가이용 거리 8번지의 3층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는 파리를 여행하는 오스트리아인들을 상대로 한 의류 사업을 하기도 했다.
3. 실험
프란츠는 비행기 조종사들이 추락할 때 탈출하지 못하고 그대로 사망하는 일들을 여러 번 듣고 1910년 7월부터 활강용 옷(착용형 낙하산)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후 마네킹으로 실험을 했지만 결과는 대부분 실패였고, 결국 자신이 직접 실험체가 되기로 했다.4. 사망
1912년, 프란츠는 파리 경찰청으로부터 실험 허가를 받았다. 이후 프란츠는 자신의 발명품을 사용해 에펠 탑에서 뛰어내리기로 결심했다.같은 해 2월 4일 오전 7시경, 프란츠는 자신의 두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서 에펠 탑 앞에 도착했다. 이후 그는 에펠 탑의 1층에서 자신의 활강용 옷을 입고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프란츠에게로 주목됐다. 사람들은 프란츠가 마네킹을 사용할 줄 알았기 때문에 엄청나게 당황했다.[2]
프란츠는 두 친구와 카메라맨 한 명과 함께 에펠 탑에 올라왔으며 오후 8시 22분, 그는 카메라를 향해 "곧 만나요(À bientôt)."라고 말한 뒤 종이 한 장을 던지며 바람의 방향을 확인했다. 이후 프란츠는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발명품을 믿고 뛰어내렸다.
땅에 추락하기 직전의 프란츠 라이헬트 |
하지만 그의 발명품은 그의 기대를 배신하고 그의 몸을 뒤덮어버렸고, 결국 57m에서 그대로 떨어진 프란츠는 즉사했다. 구경꾼들은 프란츠의 시신[3]을 네케르 병원으로 이송시켰지만, 결국 병원에서 공식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았다.
5. 이후
사건 다음날의 신문 내용 |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 신문에서는 해당 소식이 신문 한 면에 '비극적인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보도되었다.
또한 프랑스 정부는 이후 낙하산 실험을 허가하는 것에 더욱 신중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