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14:33:07

프란츠 라이헬트

<colbgcolor=#000,#000000><colcolor=#fff,#dddddd> 프란츠 라이헬트
Frantz Reichelt | François Reichelt
파일:프란츠 라이헬트 컬러.jpg
▲ 활강용 옷을 입은 모습 (컬러 복원)
본명 프란츠 칼 라이헬트
Franz Karl Reichelt
출생 1878년 10월 16일
보헤미아 왕국 베그슈테틀[1]
사망 1912년 2월 4일 (향년 33세)
프랑스 파리
국적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틀:국기|]][[틀:국기|]] (1878~1909)

[[프랑스|]][[틀:국기|]][[틀:국기|]] (1909~1912)
직업 발명가, 재단사

1. 개요2. 생애3. 실험4. 사망5.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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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발명가이자 재단사. 윙슈트의 기원으로 보는 활강용 옷을 발명했다. 동영상 속에 처음으로 죽음이 담긴 인간이기도 하다.

2. 생애

1878년 10월 16일, 보헤미아 왕국 베그슈테틀에서 태어나서 1898년에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다. 이후 1909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여 이름을 프랑수아로 개명했다.

프란츠는 그 후부터 미혼으로 살았으며 1907년부터 오페라 가르니에 근처 가이용 거리 8번지의 3층 아파트에서 살았다.

또한 파리를 여행하는 오스트리아인들을 상대로 한 의류 사업을 하기도 했다.

3. 실험

프란츠는 1910년 7월부터 활강용 옷(착용형 낙하산)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개발을 시작한 원인은 비행기 조종사들이 추락할 때 탈출하지 못하고 그대로 사망하는 사건들을 듣고서 활강용 옷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후 마네킹을 활용하며 실험을 했지만, 대부분 결과는 실패적이였고 결국 프란츠는 자신이 직접 실험체가 되기로 했다.

4. 사망

1912년, 프란츠는 파리 경찰청으로 부터 실험을 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이후 프란츠는 자신의 발명품을 사용해 에펠탑에서 뛰어내리기로 결심했다.

같은 해의 2월 4일 오전 7시경, 프란츠는 자신의 두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서 에펠탑 앞에 도착했다. 이후 그는 에펠탑의 1층에서 자신의 활강용 옷을 입고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프란츠에게로 주목됐다. 사람들은 프란츠가 직접 뛰어내리지 않고 마네킹을 사용할 줄 알았기 때문에 엄청난 놀라게 되었다.[2]

프란츠는 두 친구와 카메라맨 한 명과 함께 에펠탑에 올라왔으며 오후 8시 22분, 그는 카메라를 향해 "곧 만나요.(À bientôt.)"라고 말한 뒤 종이 한 장을 던지며 바람의 방향을 확인했다. 이후 프란츠는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발명품이 자신을 안전히 착지 시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파일:프란츠 라이헬트 추락.jpg
땅에 추락하기 직전의 프란츠 라이헬트

하지만 그의 낙하산은 추락하는 그의 몸을 뒤덮으며 결국 57m에서 그대로 떨어져 즉사했다. 이로인해 프란츠의 오른쪽 다리와 팔이 으스러지고 두개골과 척추가 부러졌다.

구경꾼들은 프란츠의 이미 사망한 시신을 가지고 네케르 병원으로 이송시켰지만, 결국 병원에서 공식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았다.

5. 이후

파일:프란츠 라이헬트 신문.png
사건 다음날의 신문 내용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 신문에서는 해당 소식이 신문 한 면에 '비극적인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보도되었다.

또한 프랑스 정부는 이후의 낙하산 실험을 허가하는 것에 더욱 신중해졌다.


[1]체코 우스터 주 우스티나트라벰 슈테티.[2] 심지어 현장에 있었던 경찰들도 프란츠가 직접 뛰어내리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