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0 21:24:11

마리 안젤리크 드 스코라이

퐁탕주 공작부인에서 넘어옴
프랑스 메트레상티트르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샤를 7세 루이 11세
아녜스 소렐 앙투아네트 드 메녤레 펠리제 레나르 마르그리트 드 사세나쥬
프랑수아 1세 앙리 2세 샤를 9세
프랑수아즈 드 푸아 안느 드 피셀뢰 드하일리 디안 드 푸아티에 마리 투셰
앙리 3세 앙리 4세
루이즈 드 라 베로디에르 라 벨 샤토뇌프 마리 드 클레브 가브리엘 데스트레
앙리 4세 루이 14세
카트린 앙리에트 드 발자크 올랭프 만치니 마리 만치니 마리 안젤리크 드 스코라이
루이 14세 루이 15세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 몽테스팡 후작부인 맹트농 후작부인 마이 자매
루이 15세
퐁파두르 부인 뒤바리 부인
프랑스 왕국 }}}}}}}}}}}}
<colbgcolor=#E9C2B8><colcolor=#000000> 퐁탕주 여공작
마리 안젤리크 드 스코라이
Marie Angélique de Scorailles, Duchesse de Fontanges
파일:Marie-Anglique_de_Scorailles_de_Roussille,_duchesse_de_Fontanges.jpg
이름 마리 안젤리크 드 스코라이
(Marie-Angélique de Scoraille)
출생 1661년 7월 27일
프랑스 왕국 오베르뉴
사망 1681년 6월 28일 (향년 19세)
프랑스 왕국 파리 포르루아얄 데 샹 수도원
아버지 장리갈 드 스코라이
어머니 에이미 엘레오노르 드 플라
형제 프랑수아즈, 잔, 안 가스파르, 장 마르크, 피에르 장, 카트린, 가스파르드, 아네 조제프
1. 개요2. 생애3. 독살 의혹4. 여담

[clearfix]

1. 개요

프랑스의 국왕 루이 14세의 애첩.

보통 퐁탕주 공작부인으로 불린다. 그러나 결혼을 하지 않고 본인이 작위를 받았기에 퐁탕주 여공작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2. 생애

훗날 퐁탕주 여공작이 되는 마리 안젤리크는 퐁탕주 영주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아름다운 붉은 머리카락과 하얀 피부를 가진 미인이었기에 그녀의 가족들은 유력자의 눈에 들게 할 목적으로 마리 안젤리크를 궁에 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1678년, 오를레앙 공 필리프 1세의 아내인 오를레앙 공작부인 엘리자베트의 시녀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루이 14세는 마리 안젤리크를 자신의 정부로 들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루이 14세의 사랑을 받아온 몽테스팡 후작부인이나 맹트농 부인과는 완전히 다른 타입의 여성이었다. 마리 안젤리크는 루이 14세의 아들 그랑 도팽 루이와 동갑인 어린 아가씨였으며, 루이 14세가 좋아하는 지적인 여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루이 14세는 신선한 타입의 마리 안젤리크에게 빠져들었다. 왕은 스스로를 리본 등으로 치장하면서 어린 애인과 어울리게 꾸미고 마리 안젤리크에게 많은 선물과 돈을 주었다. 기고만장해진 마리 안젤리크는 궁의 안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행세하고 다녔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루이 14세가 자신에게 준 호의와 선물을 자랑했는데, 심지어 왕비인 마리 테레즈 앞에서 루이 14세가 준 보석을 자랑하기도 했다. 몽테스팡 후작부인은 그러한 마리 안젤리크를 매우 미워하고 질투했다.

그러나 당시 궁중 사람들은 마리 안젤리크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당시의 평가를 종합하면 마리 안젤리크는 전형적인 얼굴은 예쁘고 머리는 빈 여인이었다. 궁중 사람들은 그녀를 향한 루이 14세의 관심이 지극히 일시적인 일이라고 예측했다. 과연 정부로 들인지 1년쯤 되는 1679년부터 루이 14세가 마리 안젤리크를 찾는 일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1680년에 마리 안젤리크는 아들을 사산했다. 이후 루이 14세는 그녀를 퐁탕주 여공작에 임명하고 연금을 주었다. 이는 애정어린 선물보다는 위로인 동시에 이별 선물에 가까웠다. 사산 후 계속 몸이 좋지 않자 마리 안젤리크는 궁을 나와 수녀원에 들어갔다. 수녀원에서 마리 안젤리크는 딸을 조산했고 이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고 한다. 1681년 6월 28일, 19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3. 독살 의혹

1680년경에 몽테스팡 부인이 라 부아쟁이라는 마녀로부터 독약 등의 약물을 구입한 사실이 적발되었다. 마리 안젤리크의 유가족들은 평소 마리 안젤리크를 미워한 몽테스팡 부인이 그녀를 독살한 것이 틀림없다고 여겨 부검을 요청했다. 오를레앙 공작부인 엘리자베트 샤를로트 또한 몽테스팡 부인이 마리 안젤리크의 우유에 독을 넣도록 사주했다고 주장했다.[1] 루이 14세는 사건의 여파가 염려되어 부검을 거절했지만 결국 사인의 확인이 이루어졌고, 마리 안젤리크의 죽음은 병에 의한 것이라고 판명이 났다. 그러나 이후에도 세간에는 독살 루머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4. 여담

  • 당시 프랑스 궁중에서 유행했던 퐁탕주 헤어스타일을 만들어냈다. 하루는 마리 안젤리크가 숲에서 사냥을 하다가 높이 쌓아올린 머리가 나뭇가지에 걸려 머리카락이 풀렸다. 마리 안젤리크는 가터로 머리카락을 올려묶었고 루이 14세는 그 머리 모양을 맘에 들어했다. 그러자 다음날부터 모든 궁의 여성들이 머리를 올려묶었다고 한다.
  • 몽테스팡 부인의 애완 곰 두 마리가 마리 안젤리크의 방을 엉망으로 만든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 사고로 치부되었다고 한다.
  • 넬 그윈과 더불어 몇 안되는 미혼 출신의 정부이기도 하다.


[1] 그러나 오를레앙 공작부인 엘리자베트는 몽테스팡 부인과 앙숙이었기에 이 주장은 신빙성이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