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8 13:52:20

토마스 다니엘 라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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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토마스 다니엘 라이언
Thomas Daniel Ryan
파일:토마스 다니엘 라이언.jpg
한국식 이름 나도마
출생 1907년
아일랜드 메이요주 크로스 오모라이나
사망 1971년 11월 20일
아일랜드
묘소 제주시 화북동 황사평성지 성직자 묘역
소속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서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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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일랜드 출신 가톨릭 신부, 선교사이자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907년경 아일랜드 메이요주 크로스 오모라이나에서 태어났다. 그는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1]에 입회하여 사제서품을 받았고, 1933년 10월 조선으로 파견되었다. 이후 제주도에서 사목하던 그는 1939년 봄부터 1940년 가을까지 여러 차례 신자들에게 일제의 패망을 예언하는 내용의 강론을 하였다.
"일본의 신문에는 일본군만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도되고 있지만, 그것은 전부 허위다. 금후 중국영국·미국의 원조를 받아서 사변이 장기화되면 일본은 패망한다. 이번에 한국에 지원병제도를 만들어 한국인을 군으로 징집하는 것은 중일전쟁으로 일본군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 일본은 반드시 패전할 것이다."

그는 또 서귀포에 사는 강붕해(姜鵬海)로부터 일제가 제주도에 설치한 비행장에 관한 군사기밀을 제공받았고, 강붕해에게 "현재 일본, 독일, 이탈리아 3국이 동맹을 체결하고 있으나 이번의 영국과 독일의 전쟁에서 독일이 패전할 경우에는 후일 일본은 영, 미에 의해 참혹함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서귀포 천주교회에서 신자 10여명에게 "지금 일본이 승리하고 있어도 중국은 대국으로서 영, 미의 원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최후에는 일본이 패전할 것이다."라며 일본의 패전을 예언했다.

이러한 일련의 발언은 훗날 일본 경찰에 접수되었고, 일본 경찰은 1941년 12월 그를 체포했다. 이후 라이언은 1942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육군 형법 및 해군 형법 위반 혐의로 금고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에는 연금 상태에 놓였다가 8.15 광복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고, 이후에도 광주와 제주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다가 1971년 11월 20일에 선종했다. 선종 직전 남긴 "나는 죽으면 서귀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가시머리 동산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서귀포에 안장되었다가 1995년 황사평성지에 성직자 묘역이 조성되어 묘소가 옮겨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토마스 다니엘 라이언 신부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또한 그가 21년간 주임신부로 사목했던 서귀포성당 전시실에는 그가 순교자 축일 때마다 입었던 제의가 전시되어 있다.

패트릭 도슨 신부(1999년 애국장), 어거스틴 스위니 신부(1999년 애족장)와 함께 2024년 1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1] 제주도(천주교 제주교구)와 전라남도(천주교 광주대교구)의 사목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