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20 22:58:23

케냐-탄자니아 관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아시아·유럽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아프리카
파일:소말리아 국기.svg
소말리아
파일:탄자니아 국기.svg
탄자니아
파일:남수단 국기.svg
남수단
파일:에티오피아 국기.svg
에티오피아
파일:우간다 국기.svg
우간다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아시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서아시아
파일:오만 국기.svg
오만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튀르키예
유럽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아프리카
파일:케냐 국기.svg
케냐
파일:우간다 국기.svg
우간다
파일:모잠비크 국기.svg
모잠비크
}}}}}}}}} ||
파일:케냐 국기.svg 파일:탄자니아 국기.svg
케냐 탄자니아
1. 개요2. 단순 비교3. 역사적 관계
3.1. 고대3.2. 근세3.3. 19세기3.4. 20세기3.5. 21세기
3.5.1. 2000년대3.5.2. 2010년대3.5.3. 2020년대
4. 경제 교류5. 문화 교류6. 여담7. 관련 항목

1. 개요

케냐탄자니아의 관계에 대한 문서다. 양국은 언어, 문화, 민족 등에서 공통점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양국은 영연방, 아프리카 연합의 회원국이기 때문에 교류와 협력도 활발하다.

2. 단순 비교

항목 케냐 탄자니아
면적 582,650 km² 947,303 km²
인구 46,479,000 47,421,786
1인당 GDP $2,129 $1,104
명목 GDP $106,041,000,000 (60위) $65,619,000,000 (71위)
국방비 - -
IMF 분류 개발도상국 최빈국

3. 역사적 관계

3.1. 고대

고대에는 코이산 제어의 민족들이 거주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케냐와 탄자니아 지역에 반투족들이 코이산 제어의 민족들을 나미비아로 몰아내고 정착했다. 그 뒤에 나일사하라어족의 민족들이 케냐와 탄자니아에 일부 정착하기도 했다. 이후, 케냐와 탄자니아의 나일사하라어족의 민족들과 반투족들은 교류가 많아지게 되었다.

3.2. 근세

근세에는 케냐와 탄자니아 해안지역에 거주하던 반투계 민족의 스와힐리족들은 아랍, 페르시아, 인도와 교역을 했다. 중국 도자기가 발견되었을 정도로 중국과도 교역이 많았다. 스와힐리족들은 아랍과 페르시아의 영향으로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고 스와힐리어도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랍과 페르시아의 영향하에서 스와힐리족들은 문화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다가 해안 지역은 19세기에 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오만 제국은 케냐와 탄자니아 지역의 해안을 지배하면서 수많은 흑인 노예들을 오만 본토로 데려가기도 했다. 잔지바르도 오만 제국의 영토이기도 했다.

3.3. 19세기

19세기에는 케냐와 탄자니아 내륙 지역을 영국독일이 정복하기도 했다. 영국은 케냐의 내륙 지역을 차례차례 정복했다. 독일은 탄자니아 지역을 차지하면서 현지 주민들을 학살하면서 현지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그리고 탄자니아 지역은 독일령 동아프리카의 일부였다.

3.4. 20세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케냐 지역과 탄자니아 지역은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영국의 지배하에서 케냐 지역과 탄자니아 지역은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20세기 중반에 케냐와 탄자니아 지역은 영국에서 독립했다. 그리고 잔지바르 지역이 탄자니아와 합쳐졌다. 양국은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에 공식 수교했다.

1997년, 양국에서 콜레라 환자가 많이 발생해 사망자가 발생했다.#

3.5. 21세기

양국간의 교류는 매우 활발한 편이며 국립공원과 관련된 분야에서도 협력하고 있다. 특히 킬리만자로 산 관광을 위해서는 양국 협력이 필수적이다시피한데, 킬리만자로는 탄자니아 영토에 있으며 그 탄자니아로 가기 위해서는 인프라가 그나마 빵빵한 케냐로 입국하는 편이 가장 수월하다. 또한 킬리만자로뿐만 아니라 세렝게티 등 인접한 3개의 국립공원이 모두 이어져 있는데다가 이들 대평원은 모두 양국의 국경에 걸쳐 있고 야생동물들은 양국 국경을 계절에 따라 자유로이 넘어다닌다. 즉 관광을 위해서는 서로 윈-윈을 노려야만 하는 운명공동체에 가깝다. 다만, 킬리만자로 산을 두고 양국이 갈등을 겪는 경우가 존재한다.#

영국의 지배와 영향으로 영어가 널리 쓰이고 영연방 회원국이다. 그와 동시에 케냐와 탄자니아는 아프리카 연합, 동아프리카 공동체의 회원국이다. 케냐와 탄자니아는 동아프리카 공동체에 가입하면서 여권도 공동 여권을 발행하고 있다.

3.5.1. 2000년대

2008년 1월 5일, 케냐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나자 케냐 정부가 탄자니아에 원조를 요청했다.#

2월 29일, 케냐의 소요사태를 종식시키는 조인식에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과 자카야 키크웨테 탄자니아 대통령도 참석했다.#

7월 22일, 탄자니아 정부는 기근이 일어난 케냐에 밀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3.5.2. 2010년대

2010년 7월 7일, 동아프리카를 잇는 해저 케이블에서 문제가 일어나 남아공, 케냐, 탄자니아에서 인터넷 장애가 발생했다.#

2013년 11월 30일,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 부룬디, 르완다 정상이 만나 공동화폐 창설을 합의했다.#

2014년 10월 17일,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에볼라 대응을 위해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부룬디, 르완다 등이 600여명의 보건 인력을 보내기로 했다.#

12월 23일, 케냐 최대 상아밀매조직의 두목이 탄자니아에서 체포됐다.#1#2

2017년 3월 18일, 탄자니아 측이 의료 대란이 일어난 케냐에 의료진 500명을 파견한다고 밝혔다.#

2019년, 양국은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시키는 정책을 통과시켰다.#1#2

3.5.3. 2020년대

2021년 3월 23일, 존 마구풀리 전 탄자니아 대통령 장례식에 케냐의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 등 아프리카 9개국 정상이 참여했다.#

2024년 4월 28일, 케냐와 탄자니아 양국에서 일어난 홍수로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다.#

4. 경제 교류

케냐와 탄자니아는 경제적으로 교역이 활발하다. 양국은 아프리카 대륙 자유무역지대의 회원국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교류가 활발하다. 양국은 커피 산업에서 유명하다.#1#2 그리고 양국은 동아프리카 경제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케냐의 데브키 제철소가 탄자니아, 우간다로 철강을 많이 수출하면서 케냐와 탄자니아의 철강 사용량이 늘어나고 있다.#

2013년 8월 22일, 양국은 항만시설 확충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9월 8일, 케냐가 15억 달러의 국채를 발행했고 11월에는 탄자니아가 국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2021년 1월 1일부터 아프리카 대륙 자유무역지대가 출범하면서 양국은 아프리카 대륙 자유무역지대의 회원국이 됐다.

5. 문화 교류

케냐와 탄자니아는 영국의 지배와 영향으로 영어가 널리 쓰이지만, 양국은 국어가 스와힐리어이다. 스와힐리어의 경우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널리 쓰이고 있고 케냐와 탄자니아내의 소수민족들도 스와힐리어를 링구아 프랑카로도 쓰고 있다. 심지어 스와힐리어는 아프리카 연합의 공식 언어중의 하나로 지정될 정도로 영향력이 매우 큰 언어에 속해 있다. 그러다보니 양국은 스와힐리어권에 속해 있다.# 양국은 음식 문화에서 공통점이 많이 있다.#

6. 여담

  • 양국은 마사이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양국의 마사이족들은 마사이 랜드(Masai Land)를 이루고 있다.#1#2
  • 2004년 10월 24일, 케냐에서 무상교육을 실시하자 말라위, 레소토, 우간다, 탄자니아에서도 도입했다.#

7. 관련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