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1-24 20:09:41

청비


1. 개요2. 역사3. 관련 문서

1. 개요

淸匪

청나라비적(匪賊)을 말한다. 비적이란 말 자체는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에서 반군[1]이나 의병 등 조정에 대항하는 모든 세력을 통칭하는 데 쓰인다. 청비는 주로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며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로 들어왔던 마적이나 군벌을 가리킨다.

2. 역사

만주 지역은 청나라 황실인 만주족의 봉금 정책에 따라 비어 있었지만 한민족이나 한족이 넘어가 사는 일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틈관동 이후에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는데 행정력은 부족하였다. 그러면서 비적이 발생하기 좋은 구조가 되었다.

1869년에는 의주부에 비적이 침입하여 청나라에 대처를 요구하는 일을 논의하였다. # 1870년에는 러시아와 청나라와의 국경 지역에 비적이 언급되었다. # 훈춘에서 비적 8명을 압송해와 조사하는 등 조선과 청나라가 비적을 두고 협조하는 일도 있었다. 무관인 황계훈(黃繼賢)이 중국 훈춘에 가서 비적들을 압송하였다. #

1871년엔 후창군에 비적들이 넘어와 불을 질렀다. #

1872년의 기록에 따르면 본래 압록강 인근의 중국 국경은 비어 있어야 했으나, 청나라의 행정력이 감소하여 무단으로 들어와 살고 월경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자가 생겼다. # 중국 상선이 마적을 피해 월경하였고 마적도 따라 들어오는 일도 있었다. 조선군이 비적과 교전하였다. #

1876년에도 비적이 들어와 경원부를 약탈하였다. #

1890년대 후반엔 점차 의화단 등과 관련된어 청비의 준동이 확대되었다.

1899년의 기록에선 삼수군갑산군이 비적의 피해가 심하다고 말하고 있다. 북청지방대가 있지만 거리가 400리가 넘어 지원이 어려워 주민들은 포수를 모아 계를 설치하여 대응하고 있었다. 이 일로 북청진위대는 5연대로 확장되어 종성과 덕원에 대대가 설치되었다. #

1901년에 삼수 군수인 채규승(蔡奎昇)이 삼수의 변성에서 비적을 격퇴시켜 포상하였다. # 채규승은 포계(砲契)를 만들어 민병 위주로 방어한 것으로 추정된다. # 같은 해 5월에 북청진위대 소속의 소대장들인 조기설(趙基卨), 김상열(金商說), 강희규(姜煕圭)가 삼수 지역에서 청비를 격퇴하여 포상하였다. # 종성진위대 소속의 소대장 나영훈(羅泳熏)도 비적 150명을 격퇴하여 포상을 받았다. #

1902년에도 관련하여 포상하였다. #

1903년에는 강홍대가 상소하여 진위대만으로는 막기 어렵다며, 옛 제도를 복구하여 진과 보를 재건하자고 하였다. # 그해 여름에는 청비들이 진위 5연대 2대대의 삼수주둔대를 공격하여 총기 34정과 탄약 5천7백 발을 약탈하는 일도 있었다. 중대장인 조기설은 이들의 추적을 지시했는데, 2개 소대가 월경하여 청나라 땅에 들어가 17명을 사살하여 국경을 넘은 죄로 처벌을 받았다. #

3. 관련 문서

대한제국군 진위대의 국경 부대들이 청비와 주로 교전하였다.

[1] 청나라에 다녀온 사신들에게 태평천국의 난을 물을 때, 비적이란 표현을 쓰고 동학 관련해서도 비적이라 표현한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