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7 22:29:20

청단역

청단역
다른 문자 표기
로마자 Chŏngdan
한자 靑丹
주소
황해남도 청단군 청단읍
역 등급
(평양철도총국)
운영기관
배천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철도성
개업일
토해선 1932년 9월 1일
철도거리표
장방 방면
화 산
← 9.0 ㎞
배천선
청 단
은빛 방면
월 계
8.2 ㎞ →

靑丹驛 / Chŏngdan Station

1. 개요2. 상세
2.1. 청단이라는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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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단벌 나리는 눈에
오고가는 사람 사라지고 길은 없구나
이북으로 정처없이 떠나는 淑
눈 오는 창밖에 서서 헌수건 휘젓는 淑아
너는 너무 야무지구나 너는 너무 애처롭구나
바람 불고 눈 휩쓸리나 창유리는 도무지 말 없구나
남편과 아가를 버리고
학대받는 관념의 실리려 북으로 떠나는 淑아
너와 나, 사이에 점점 어그러져가는 커다란 혼의 공간
눈 나리는 슬픈 벌판이다
태초에 길은 있었드니
청단벌 나리는 눈에
길은 없구나
장서언, 눈오는 청단역 (1947년)

배천선의 철도역. 황해남도 청단군 청단읍 남쪽 소재.

2. 상세

토해선의 철도역으로 1932년 개설되었다. 6.25 전쟁 이전 이 지방이 대한민국의 영역이던 시절, 황해도 지역에 남한이 가지고 있던 토해선이 운행하던 마지막 역이 청단역이었다.[1]

화산역 방면으로 덕달로 가는 지선이 분기한다. 역 규모는 1면 4선이다. 북한에 따르면 덕달산에는 엄청난 희토류가 묻혀있다고 한다.

2.1. 청단이라는 지명

청단군은 북한에서 만든 군이다. 1938년 해주시가 승격, 교외가 벽성군이 되었다. 1945년 그어진 38선은 벽성군의 동쪽과 서쪽만 38선 이남으로 만들었고 동쪽은 연백군에 병합, 서쪽은 옹진군에 병합시키게 된다.

그러던 1951년 중반 6.25 전쟁이 어느정도 진행되고 전선이 안정화된 이후부터 연백군 본토는 전부 북한에 넘어가고, 유엔군 해군이 주둔한 용매도만 남한령 연백군으로 남아있게 된다.

북한은 자기측 연백군에 또 인접지역을 편입시켜놓아 새로 군을 만들었기 때문에 남한의 연백군을 남연백군으로 개칭하여 설치하였다가,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구 벽성지역과 38선 이북 벽성군 동부에 청단군을 만들었다. 그리고 휴전 협정으로 유엔군이 용매도에서 철수하면서 용매도마저 청단군으로 편입시킨다. 청단읍은 1952년 북한의 이른바 군면리 대폐합 때 청단 지역의 중심지였던 추화면의 중심지에 만든 읍이다.

청단(靑丹)이라는 지명은 공식적인 면 단위나 리 단위 이름으로 쓰인 적이 없었으나, 조선시대 교통의 요지인 이곳에 지은 역참의 이름에서 유래하여 통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조선시대의 청단역에는 청단도 찰방(靑丹道 察訪)[2]이 주재했다. 정약용은 1798년 8월 청단 역참을 떠나며 '새벽에 청단역을 떠나며(曉發靑丹驛)'이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대한민국이 이 곳을 관할하던 시기의 경찰서 이름도 청단경찰서였다.


[1] 실제 38선 이남 끝역은 2정거장 떨어진 천결역이었으나, 운행은 하지 않았다.[2] 찰방은 현대 철도의 역장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으나, 1개 역만이 아니라 여러 소속 역인 속역(屬驛), 심지어 역이 지나는 도로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대한 일부 행정권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