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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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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오스만 제국2.2. 근현대

1. 개요

히브리어: גִ'שׁ‎
아랍어: الجش
영어: Jish / Gush Halab

이스라엘 북동부의 도시. 기쉬, 구쉬 할랍으로도 불린다. 사페드에서 북서쪽으로 6km, 밀리야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메론 산 기슭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3천 3백명으로, 대부분 이스라엘 아랍인이다. 주민들은 (주로 마론파) 기독교도 63%, 무슬림 37%로 구성되어 있다. 고대와 중세에는 유대교, 16-18세기에는 이슬람드루즈교, 근대부터는 기독교가 주류 종교이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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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대의 유구

기원전 1천년경 가나안 시기부터 마을이 있었고, 히브리어로는 '우유 덩어리'란 뜻인 구쉬 할랍 혹은 기스칼라로 불렸다. 탈무드 등의 기록에 따르면 주민들은 양질의 올리브 기름과 비단을 생산했다. 1차 유대 반란 당시 구쉬 할랍은 유대 반군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고, 갈릴리에서 마지막까지 로마에 저항했으나 티투스에게 항복했다. 4세기 들어 주민 중 상당수가 기독교로 개종했고, 551년의 지진으로 파괴된 시나고그 (유대 회당)은 재건되지 않았다. 다만 이슬람 정복 후 '지쉬'로 지명이 바뀐 뒤에도 유대교도 주류 마을로 이어졌고, 11세기의 카이로 게니자 문서에서도 그렇게 기록되었다. 1172년 유대교도 지리가 투델라의 베냐민은 지쉬에 20여 유대교도가 거주한다고 기록했다. 이는 14-15세기 맘루크 왕조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16세기 오스만 제국기에는 주민 전부가 무슬림이 되어 있었다.

2.1. 오스만 제국

1596년 기준 사페드 산작 산하 지라 나히야에 속한 지쉬에는 90여 가구의 무슬림 주민이 거주했다. 주민들은 매년 30,750 악체의 세금을 냈다. 1648년 지쉬를 방문한 여행가 에블리야 첼레비는 현지 여성들의 미모를 극찬했다. 17세기 기준 지쉬에는 드루즈교 주민들도 거주했지만 1811년 아인 다라 전투 직후에 하우란으로 떠났다. 이후 (유대계) 마론파 기독교도들이 정착했다. 1837년 갈릴리 지진으로 지쉬는 특히 큰 타격을 입어 시내에 건재한 건물이 없었다. 성벽 역시 붕괴했고, 성당의 붕괴 시에 130여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총 희생자 수는 235명이었고, 땅이 갈라졌다. 1887년 기준 지쉬에는 기독교도 975명, 무슬림 960명 등 1900여 주민이 거주했다.

2.2. 근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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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령 팔레스타인 시기인 1931년 기준 지쉬에는 기독교도 358명, 무슬림 397명이 거주했다. 1차 중동전쟁 시기인 1948년 10월, 지쉬를 점령한 이스라엘 군은 10명의 포로를 포함한 1백여 주민들을 처형했다.[1] 이에 대해 이스라엘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이 조사를 지시했으나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후 많은 주민들이 레바논으로 망명했다. 다만 인근 카프르 비르임의 기독교도 주민들이 지쉬로 이주해오며 인구가 회복되었다. 1950년 10월 이스라엘 군은 7명의 주민들을 체포, 밀수 혐의로 옷을 벗긴 후 태형을 가했으나 증거가 없자 책임을 회피하며 떠났다. 21세기 들어 현지 기독교 학교들은 아람어를 가르치며 아람어 보존에 기여하고 있다.


[1] 그중엔 여성과 그의 아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