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1 11:23:09

조성길

1. 청송군 출신 독립운동가2. 북한의 외교관

1. 청송군 출신 독립운동가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함안 조씨[1]
출생 1860년 10월 1일
경상도 청송도호부 현동면 손달동
(현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 손달마을)[2]
사망 1917년 9월 18일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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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길(趙性吉)은 1860년 10월 1일 경상도 청송도호부 현동면 손달동(현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 손달마을)에서 태어났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되자 그의 고향 청송에서도 김상종(金象鍾)을 중심으로 청송 의진이 구성되었다. 이에 조성길은 청송 의진에 들어가 안동부 청송군·영덕군, 동래부 흥해군 등지에서 적과 접전하여 격전을 벌이며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고전하던 중 고종의 의병 해산 조칙을 받들어 1896년 10월 의병을 해산하고 은거하였다고 한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영천군 출신 의병장 정용기를 중심으로 산남의진(山南義陣)이 조직되고 조선 내 팔도에 모병활동을 전개하자 그는 산남의진에 들어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마침 상중(喪中)이었으므로 부득이 의병진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다만 청조문(請助文: 민중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각지에 발송하여 의병을 소집하는 등, 간접적으로 의병활동에 협조하였다.

그후 1907년 9월 청하군 죽남면 입암(立岩)[3]의 전투에서 적의 기습을 받아 의병장 정용기가 순국하고 11월 정용기에 이어 의병장이 된 정환직마저 적과 접전 중에 체포되어 순국하는 등의 불행을 겪는 동안 끝까지 의진과 함께 활약하였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다가 1917년 9월 18일 별세하였다.

198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으며, 이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2. 북한의 외교관

조성길
<colbgcolor=#808080><colcolor=#ffffff> 출생 1975년
국적
[[북한|]][[틀:국기|]][[틀:국기|]][4]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5]
가족 배우자[6], 딸[7]
학력 평양외국어대학 (프랑스어학 / 학사)
경력 이탈리아 북한 대사관 대사대리
2019년 초까지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 대리였다. 북한의 핵개발로 이탈리아가 북한대사를 추방하면서, 1등 서기관임에도 이탈리아 북한대사관의 대사대리 역할을 지냈다. 이는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 편재가 달랑 다섯명 인데다가 대사가 쫓겨났고, 다른 외교관들은 이탈리아 대사직 따위보단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유엔식량농업기구(FAO), 국제농업개발기금(IFAD) 식량관련 3대 기구 업무와 김정은의 외화벌이와 사치품 구입으로 바쁘기 때문이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에 따르면, 이탈리아 대사관은 북한 외교에서 매우 중요한데 북한은 매해 식량 필요량의 3분의 1정도가 부족한데 앞서 식량관련 유엔산하 3종세트에서의 구걸 외교가 매우 중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김일성대 출신 탈북자 주성하 기자에 의하면 북한 외교관의 실질적으로 제일 중요한 임무인 김정은의 외화벌이가 특히 중동에서 무기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이탈리아에서 돈세탁 과정을 많이 거치기 때문이라고.

조성길은 외무성 입부 전 평양외국어대학 프랑스어학과를 졸업했다.# 2019년 1월 부인과 함께 로마에서 남쪽으로 11km 떨어진 북한대사관을 탈출하였으며 이탈리아 정보 당국의 보호를 받았다. 고등학생인 딸은 북한에 압송되었다고 한다.# 주성하 기자에 따르면 애초에 외교관들 자식 전부를 데리고 나가는게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었고 딸은 아마도 외조부모와 함께 있었을것으로 추정했지만 정확한건 아니다.

그의 탈북 과정에 자유조선의 리더 에이드리언 홍 창이 개입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는 탈북자 출신 주성하 기자가 반박했다. 마치 ISIS가 테러만 일어났다 하면 다 자기가 했다 하는 것 처럼 이 사건 또한 현실적으로 경위를 밝히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블러핑 했다는 것.

2020년 10월 6일자 뉴스에서 그가 원래 제3국에 망명을 시도하려 했으나 모종의 사유로 2019년 7월에 대한민국으로 귀순한 사실이 밝혀졌다.# 김정은 시대의 최초 대사급 외교관 망명이라는 오보가 났지만 어디까지나 1등 서기관 신분으로 대사 직무를 대행한 것으로 공사였던 태영호보다 오히려 직급은 낮다.

원래는 서방국가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고려하다가 북한대사관이 없는 어떤 동유럽 국가에서 한국행을 선택하였다고 한다. 위를 제보한 사람이 조씨 아내였으며, 원래는 아내와 딸이 북한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일이 꼬이면서 한국에 그냥 들어왔다고 한다.# 참고로 북한에서 유명인이 탈북한 경우 가족은 의외로 더 안전하다고 한다. 국제사회에서 신변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인증용으로 남겨야 하기 때문.

아버지는 조선로동당 검열위원장인 조연준이라고 알려졌으나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 사실 2019년 1월 3일 태영호의 인터뷰에서 조성길의 아버지와 장인어른이 외무성 출신으로 대사를 지냈다고 밝혔다. 해당 부분[8]


[1] 26세 성(性) 항렬.[2] 인근의 창양리와 함께 함안 조씨 집성촌이다.[3] 지금의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4] 외교관으로서 북한 여권을 사용했다.[5] 한국의 법에서는 헌법 제3조의 영토 조항을 바탕으로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사실상 한국 국적을 보유한다고 간주한다. #[6] 같이 한국으로 망명했다.[7] 북한에 있다.[8] 태영호 입장에서는 같은 유럽 파견 외교관 사이였기 때문에 당시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관의 인사이동을 줄줄이 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