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00000><colcolor=#fff,#000> 제임스 로슨 James Lawso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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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제임스 모리스 로슨 주니어 James Morris Lawson Jr. |
출생 | 1928년 9월 22일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유니언타운 | |
사망 | 2024년 6월 9일 (향년 95세)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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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 아버지 제임스 모리스 로슨 시니어 (James Morris Lawson Sr., 1883년 12월 15일 ~ 1976년 12월 5일) |
어머니 필레인 메이 코버 (Philane May Cover, 1895년 5월 28일 ~ 1969년 4월 3일) | |
형제자매 | 3남 5녀 중 5남 |
배우자 | 도로시 우드 로슨 (1959년 결혼) |
자녀 | 장남 모리스 로슨 차남 존 로슨 삼남 세스 로슨 (2016년 사망) |
학력 | 볼드윈 윌리스 대학교 (사회학 / 학사) 오벌린 칼리지 신학대학원 (신학 / 석사) 밴더빌트 대학교 신학대학원 (목회학 / 박사) 보스턴 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 |
종교 | 개신교 (감리회) |
직업 | 교수, 목사, 사회운동가 |
1. 개요
미국의 목사, 사회운동가. 1950~60년대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을 이끈 지도자 중 한 명이다.2. 생애
1928년 9월 22일, 펜실베이니아 주 유니언타운에서 성직자 가문의 아들로 출생했다.8세 때 자신에게 인종차별적 모욕을 한 친구를 때린 후 어머니에게 "그래서 무엇이 좋아졌느냐"는 말을 들었고, 그 후 평생 동안 비폭력주의에 대한 신념을 고수했다.
대학 재학 중 6.25 전쟁에 징집되는 것을 거부해 13개월간 수감되었다. 출소 후 인도로 가서 3년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 전술을 연구했고 1957년 미국으로 돌아온 후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만나 의기투합했다.[1]
이후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테네시 주 내슈빌에서 흑인 민권운동가들에게 비폭력주의를 설파했다. 그는 젊은 활동가들에게 상대로부터 모욕을 받더라도 반응하지 않고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 등 비폭력 저항 전술을 가르쳤다.[2] 그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1960년 내슈빌의 공공장소에서는 '유색인종 출입금지' 표지판이 사라졌다.
그 후에도 흑인 민권운동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SNCC)의 창립 멤버로 활동했고, 마틴 루터 킹이 창설한 흑인 민권운동 단체 남부기독교지도자회의(SCLC)에서 비폭력 교육 책임자를 맡는 등 민권운동에 헌신했다.
1968년 멤피스에서 목회 활동을 하던 로슨은 흑인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을 조직한다. 그는 킹 목사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이에 응해 멤피스를 방문했던 킹 목사는 숙소에서 암살당하고 만다.
그러나 로슨은 킹 목사를 암살한 인종차별주의자 제임스 얼 레이마저도 포용했다. 교도소에 있던 레이를 찾아가 보살폈으며 그의 옥중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기도 했다. 그는 킹 목사 죽음의 책임이 레이 혼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또한 레이와의 관계에 대해 "신이나 예수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고 말한 바 있다.
2024년 6월 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 이때 마틴 루터 킹은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의 성공을 이끈 직후였기에 이미 흑인 민권운동의 중심 인물이었다.[2] 이후 하원의원을 지낸 존 루이스도 당시 그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