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29:50

정주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비교

1. 개요2. 비교
2.1. 군사
2.1.1. 전투병력의 비중2.1.2. 말이 갖는 의미: 기병대, 기갑부대
2.2. 문화
2.2.1. 유목민족의 침입후, 문화적 융합
2.3. 경제·사회
3. 관련 문서

1. 개요

유목민정주·농경민족에 대해 비교하는 문서이다.

2. 비교

2.1. 군사

2.1.1. 전투병력의 비중

유목민족들은 승마에 익숙한 만큼 정주, 농경민족보다 전투병력의 비중이 극도로 높다. 정주민족 및 농경민족 관점에서 보자면, 말은 사육하는 데 시간도 많이 들고 기수를 훈련시키는 데도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유목민족의 입장에서는 말이 정주농경민족보다는 상대적으로 값싸고 사람들 대부분은 말을 탈 줄 안다. 즉, 과거 전차나 장갑차와 같았던 기병 병종을 훨씬 쉽게 모집할 수 있었던 것이다.

2.1.2. 말이 갖는 의미: 기병대, 기갑부대

지금으로 보면 유목민족은 성인 남성 대부분이 짧은 시간 안에 기병으로 전장 투입이 가능한, 고대의 기갑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말은 생물이다 보니 현대의 기갑 부대에 비하면 어처구니 없는 참패도 당하는 편이라 기병을 쉽게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기병들이 올린 전설적인 전공들을 보면 보병은 현실적으로 다 죽일 힘이 부족해 불가능한 종류의 것들도 많다.

십자군 전쟁이나 윙드 후사르 등등에서는 진짜 놀라운 교환비를 세운 적도 있다. 거기다 유목민들 같은 경우 수렵까지 병행하는 경우도 많아 각종 무기에 대해서도 농부들보다 익숙하다. 즉 기병이라는 점만으로도 무서운 것인데 숙련도도 만만치 않았다.[1]

심지어 알렉산더 대왕이나 키루스 대왕 같은 군주들에게도 유목민들이 시비를 걸기도 했다. 때문에 제대로 된 지도자가 나타나면 무시무시할 만큼 극도로 성장하며 이것은 게르만조차도 밀어버려서 서로마의 멸망까지 나비 효과를 일으킨 훈족의 성장이나 거란, 몽골등 유목민족의 중국 및 한반도 침략으로 이어졌다. 특히 몽골의 경우 칸국들까지 합치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나라를 이루었으며 헝가리까지도 몽골의 피가 섞여 있는 걸 생각하면 고대에 그들의 잠재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파르티아는 소수 유목민들이 중동의 정주민족 인구 400만을 정복한 다음에 인구 5,000만의 로마를 위협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다만 유목민족의 기병대는 기갑부대라고 하기는 어렵고 대부분 경장차림의 경기병이었다. 무기도 짧은 활과 칼을 주무기로 사용했으며 기동성 위주의 군대였다. 기갑부대라고 칭할 만한 중기병은 오히려 부유한 정주민족이 더 애용했다.[2]

흔히 생각하는 사막의 민족들은 대부분 유목민족이다. 파르티아아르메니아, 베르베르, 아바르족 등등.

2.2. 문화

2.2.1. 유목민족의 침입후, 문화적 융합

다만 농경민족을 정복한 후 오히려 그들의 문화에 역으로 점령돼 버리는 일이 흔하다. 원래부터 인구도 적은 데다, 편하고 안락한 생활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은 어쩔 수 없어서 농경민족의 풍족하고 편안한 생활을 접하고 급속도로 동화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민족성을 유지하겠다고 온갖 정책으로 막으려 들어봤자 수백만에 달하는 인구 전체를 통제할 수도 없고 군주제의 한계 때문에 군주가 바뀌면 정책도 바뀌거나 하여 결과적으로 패권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도리어 먹혀버리기 일쑤.

특히 중국.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 한국의 역사는 농업이 정착된 후 이들 유목민족을 막거나 먹히는 역사로 점철돼 있다. 요나라, 서하, 원나라가 모두 이들의 역사이며 이들 민족의 기마 부대는 언제나 공포로 군림해 왔다.[3]

또 유목민족은 빠른 성장만큼이나 쇠퇴도 빨라서 거란의 경우 북송과 금에 의해 멸망했고, 원도 그 엄청난 영토를 생각하면 너무 쉽게 무너져 버렸고 심지어 대제국을 이룬 청도 불과 100년 만에 자기들의 언어와 정체성을 거의 잃어버리고 중국에서 소수민족 대우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튀르크족 역시 한때 이슬람의 주도권을 쥐었으나 결국 문화적 헤게모니는 아랍인과 페르시아인들에게 내어줬을뿐더러, 유목민들 중 거의 유일하게 기독교 문화권에 편입된 마자르족헝가리 역시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유목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은 거의 상실하게 되고 기독교를 받아들인 다른 민족들과 별 차이가 없어지게 되었다. 북아메리카의 유목민족인 수우족 역시도 리틀 빅혼 전투 이후로는 상당수가 미국 사회에 동화되어 살았다.

2.3. 경제·사회

그래도 주로 정착하여 살았던 농업에 비해 떠돌아다니며 생활했던 유목이 많이 힘들었다.

농업의 경우 계절에 민감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유목도 마찬가지로 비슷했다.[4] 유목민들이 풀 많은 목초지를 찾으려고 이동한 것도 따지고 보면 풀이 많은 따뜻한 곳을 찾기 위한 것도 있었다.

3. 관련 문서


[1] 더구나 강력한 무력을 생산하기 쉬움+생산력의 상대적 저하라는 두 가지 요소가 겹쳐서 대부분은 약탈민족 성격도 커서 공포의 대상이었다.[2] 돌진력을 앞세운 중기병은 소수정예로도 유목민족의 주요 병력인 경기병의 천적이었고 이들을 육성하는데는 돈이 많이 들어갔다. 물론 유목민족도 세력이 커지면 중기병을 운용했다.[3] 수렵채집민을 상대로는 유목민과 정주농경민 둘 다 이들을 이긴 경우도 있으나 금나라동하를 세운 여진족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농경과 목축, 그리고 어로를 겸업하였고 심지어 여진족은 약탈 뿐 아니라 바다에서 해적질로도 악명을 떨쳤다. 이들의 거주지가 초원이 아닌 삼림지대였기에 순수한 의미로서의 유목민족과는 꽤나 다르다(이러한 민족들을 수렵채집민족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중국 한족들도 이런 반농반수렵 민족의 저력을 알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예로부터 굉장히 경계해서 만주지역에 대한 견제를 끊임없이 가했다. 결국 만주족에게 정복당하긴 했지만 만주족 역시 훗날 한족화되어 온건한 정체성을 잃어버렸다.[4] 대표적으로 몽골북아시아 남부의 혹한인 조드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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