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23 08:02:23

인종(서하)


서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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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 인종(仁宗)
시호 성덕황제(聖德皇帝)
연호 대경(大慶, 1140년 ~ 1143년)
인경(人慶, 1144년 ~ 1148년)
천성(天盛, 1149년 ~ 1169년)
건우(乾祐, 1170년 ~ 1193년)
이(李)
인효(仁孝)
생몰기간 1124년 ~ 1193년 10월 16일 (69세)
재위기간 1139년 7월 ~ 1193년 10월 16일 (54년)

1. 개요2. 생애
2.1. 내정에서의 업적2.2. 외정
3. 대중매체에서

1. 개요

서하의 제5대 황제. 묘호는 인종(仁宗), 시호는 성덕황제(聖德皇帝). 휘는 이인효(李仁孝). 부황은 제4대 황제인 숭종 이건순이었다. 형제로는 양종의 부친인 이인우(李仁友)가 동생이었으며, 아들이 제6대 황제 환종 이순우였다.

2. 생애

2.1. 내정에서의 업적

1139년 7월, 그의 나이 16세에 즉위했다. 이웃 나라와는 전쟁이 아닌 화친을 맺어서 평화를 유지하는데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한다. 금나라와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인재를 양성할 때도 민족을 가리지 않고 등용했는데 특히 한족들을 중용하였다. 인재들을 위해 학당을 정비하고 교육하는데도 관심을 쏟았다. 그의 치세에는 과거를 시행해 필요한 인재를 요직에 앉혀 서하의 정치 안정에 심혈을 기울이는 등 내정에 있어서는 명군의 면모를 보였다. 종교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유교를 존중하여 공자의 묘소를 정비했으며, 불교쪽으로는 티베트의 승려들을 서하로 초청하여 많은 불전(책자)들을 출판시켰다. 그 밖에 한림학사원을 설치하여 실록을 기록하게 했고, 《신률》이나 《하늘 성년 개신 정률령》등 율령의 정비에도 공을 들였다. 이렇게 정치로만 놓고 보면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2.2. 외정

앞에 서술된 그의 업적들만 보더라도 꽤 훌륭한 치세였다고 할 만 하다. 그러나 시대를 잘못 만나 북방의 몽골 고원에서 칭기즈 칸, 자무카 그리고 나이만, 케레이트 등의 몽골•튀르크계 부족들이 서로 격렬한 내전을 벌이고 있는데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 국방에는 소홀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전술한 부분만을 가지고 완전한 인종의 실책이라고 보기는 또 어렵다. 몽골에 대한 확실한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을 실책이라 보는 관점도 있지만 당시 칭기즈 칸 영도하의 몽골 통일은 매우 신속히 이뤄졌다. 통일 속도가 어찌나 빨랐던지 북방 이민족의 분열을 틈틈이 조장하던 금나라조차 제대로 신경쓰지 못했을 정도였다. 결국 칭기즈 칸이 너무 뛰어난 먼치킨이었다는 것이 서하에게 있어서 불행이었을 뿐 인종에게 외정에 소홀했다는 평은 가혹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인종이 죽은 뒤, 칭기즈 칸의 몽골 고원 통일 이후 성립된 몽골 제국이 서하 정복을 위해 무려 6차례에 걸쳐 끊임없이 공략해왔고, 이에 속절없이 휘말리면서 점차 제국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1]

그래도 인종의 치세에는 몽골의 여러 부족들이 서로 주도권을 다투던 시기라 별 탈은 없었고, 본인도 내정에 있어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기에 부황 숭종과 더불어 서하의 유이한 명군으로 평가받는다. 숭종 때부터 시작된 서하의 전성기 역시 이 때까진 유지되고 있었다.

3. 대중매체에서

징기스칸 4에 군주로 등장한다. 참고로 왕비가 차카인데 차카는 이안전의 딸이자 인종의 조카손녀이다.[2] 그러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오래 쓰지도 못한다. 이미 게임 시작 시점부터 나이가 65세인데 대략 1195년 전후로 해서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흥경에는 그 말고도 동생 이인우와 신종이 즉위한 때에 재상으로 활약한 야사 감푸도 있는데[3] 이인우는 인게임에서 시작한지 한 3년 만에 죽어버린다. 서하로 플레이 할 시에는 인종이 죽으면 후계자로 조카 이안전을 택할 것을 권장한다. 아들인 이순우의 연령 고증이 잘못되어 55세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순우 또한 서비스 타임이 아버지, 삼촌처럼 짧다.


[1] '흑장군'이라는 별명을 가진 서하 장군과의 카라호토 공성전에서 몽골군이 크게 혼쭐이 난 적도 있었다. 거기다가 기동력을 이용한 몽골군에게 성곽이 있는 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촌락이 유린됐지만 서하의 대도시들은 함락되지 않았다. 금나라 공격을 위해서는 반드시 망해야할 서하를, 침공 때마다 화친을 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고 몽골군이 돌아간 것도 서하의 성곽도시들이 건재했기 때문이었다. 서하의 수도 중흥부가 칭기즈 칸 사후에 간신히 함락된 것도 서하군이 얼마나 치열하게 저항했는지에 대한 일례다.[2] 해당 작품은 금나라 장제의 황후로 등장하는 기국공주는 위소왕의 딸이자 칭기즈 칸의 첩인데 아마 플레이어가 주인공 진영이자 사기 진영인 몽골로 정상적으로 플레이를 한다면, 실제 역사보다 훨씬 빠르게 인종대의 서하와 장종대의 금을 멸망시킬 확률이 높으므로 칭기즈 칸의 첩인 챠카와 기국공주를 칭기즈 칸의 후궁으로 넣어주기 위하여 포로로 사로잡힌 장수는 왕비를 몰수당하는 게임 시스템을 이용한 인물 배정인 듯하다.[3] 야사 감푸는 인게임에서 ‘아자 감보’라는 이름으로 되어있고, 중국문화권이 아닌 이슬람문화권(투르키스탄 지역)의 타향 장수로 설정되어있다. 능력치는 좋은 편이다. 정치 64, 전투 61, 지모 57. 내정특기로는 농업, 등용이 있으며, 전투특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