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이함(서진) 문서 참고하십시오.
함정에서의 탈출에 대한 내용은 퇴함 문서 참고하십시오.
漢 후한의 태위 | |||||
{{{#!wiki style="border-right: 2px solid transparent; border-left: 2px solid transparent; 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 1대 조희 | 2대 우연 | 3대 조희 | 4대 모융 | 5대 포욱 |
6대 등표 | 7대 정홍 | 8대 송유 | 9대 윤목 | 10대 장포 | |
11대 장우 | 12대 서방 | 13대 장우 | 14대 이수 | 15대 사마포 | |
16대 마영 | 17대 유개 | 18대 양진 | 19대 풍석 | 20대 유희 | |
21대 주총 | 22대 유광 | 23대 방참 | 24대 시연 | 25대 방참 | |
26대 왕공 | 27대 환언 | 28대 조준 | 29대 이고 | 30대 호광 | |
31대 두교 | 32대 조계 | 33대 원탕 | 34대 호광 | 35대 황경 | |
36대 호광 | 37대 황경 | 38대 유구 | 39대 양병 | 40대 진번 | |
41대 주경 | 42대 유구 | 43대 문인습 | 44대 유총 | 45대 곽희 | |
46대 문인습 | 47대 이함 | 48대 단경 | 49대 진탐 | 50대 허훈 | |
51대 유관 | 52대 맹욱 | 53대 장호 | 54대 진구 | 55대 교현 | |
56대 단경 | 57대 유관 | 58대 허욱 | 59대 양사 | 60대 등성 | |
61대 장연 | 62대 장온 | 63대 최열 | 64대 조숭 | 65대 번릉 | |
66대 마일제 | 67대 유우 | 68대 동탁 | 69대 황완 | 70대 조겸 | |
71대 마일제 | 72대 황보숭 | 73대 주충 | 74대 주준 | 75대 양표 | |
76대 가후 | |||||
※ 둘러보기: 한의 대장군 (大將軍) · 후한의 대사공 (大司空) · 후한의 대사농 (大司農) · 조위의 태위 (太尉) · 조위의 사도 (司徒) · 조위의 사공 (司空) · 손오의 승상 (丞相) · 촉한의 재상 (宰相) | }}}}}}}}}}}}}}} |
1. 개요
李咸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로 자는 원탁(元卓)[1] 또는 부탁(符卓).[2]
2. 생애
예주 여남군 서평현 사람으로 주, 군의 장관을 지냈고 일하는 것이 청렴하고 유능했으며, 권세를 지낸 신하들은 이함을 꺼렸다. 태복을 지내다가 171년에 태위가 되었으며, 두태후의 어머니가 비경에서 붕어하자 이를 근심하고 생각하다가 병이 들은 두태후가 붕어하자 환관들이 두씨에게 원한을 가진 터라 그 시신을 성 남쪽 시장에 있는 관사에 뒀다가 황후가 아닌 귀인의 예로써 장사지내려고 했다.영제는 자신을 세워준 것으로 인해 귀인의 예로써 장사지내려 하지 않았으며, 조절 등이 두태후를 풍귀인을 선제(환제)의 능에 배향하려 했다. 이함은 이 때 병 중이라 수레에 의지해 산초나무[3]를 찧어서 몸에 지낸 채로 처에게 황태후가 환제와 나란히 배향되지 못한다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했다.
진구가 두태후의 위패를 환제의 능에 배향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자 이함은 자신이 마땅히 이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그 뜻과 합치된다고 찬성했다. 결국 공경 이하 모든 사람들이 진구의 의견을 따라 두태후는 환제와 함께 묻힐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