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4ecd5><colcolor=#015566> 이태현 李泰鉉 | Lee Tae Hyun | |
출생 | 1940년 12월 29일 ([age(1940-12-29)]세) |
일제 강점기경상북도 예천읍 왕신동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미술가 |
학력 | 안동사범(본과)학교 홍익대학교 회화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
가족 | 아버지 이규목(李圭木,1920~1992), 어머니 김월순(金月順,1918~2008)사이 4남5녀 중 장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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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태현(李泰鉉, Lee Tae Hyun, 1940년 12월29일~)미술가는 평면공간에서 선조(線條), 단색조를 통해 우주 삼라만상의 운동성과 형상성을 일생동안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대한민국 화가이다.2. 생애
(맨 위 왼쪽부터)=한묵(韓默,1914~2016)화백, 이근신(1940~), 이태현, 맨 오른쪽이 한묵 선생의 부인 이충석(1932~)여사, 경기도 소재 이근신 화백 작업실에서. 1962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4학년 재학생으로 위층 왼쪽에서부터 다섯 번째 안경 쓴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 1913∼1974)교수, 아래층 오른쪽에서부터 두 번째가 이태현 작가다. 왼쪽부터 동대문중·상고에 같이 근무했던 동료이자 홍익대 서양화과 동문인 최창홍, 이태현, 이승조. (중간 줄 왼쪽부터)=덕수궁 서울비엔날레 출품작가들. 맨 뒤줄 세 번째 바로 아래가 이태현. 1980년 문예진흥원미술회관 이태현 첫 개인전에서 이일 미술평론가. 1995년 종로갤러리 이태현 개인전에서 박서보 선생과 함께. (맨 아래 줄 왼쪽부터)=자화상, 33×26㎝ Oil on canvas, 1961. 착의인물, 75.5×48.5㎝ Oil on canvas, 1961~1962. 추상, 116×80㎝ Oil on canvas, 1962C, 1962. |
이태현(李泰鉉, Lee Tae Hyun, 1940년 12월29일~)은 1940년 12월29일 경상북도 예천읍 왕신동에서 아버지 이규목(李圭木,1920~1992), 어머니 김월순(金月順,1918~2008)사이에 4남5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경주이씨 평리공파 37세손(慶州李氏 評理公派 37世孫)이다. 1953년 예천서부초등학교(예천초등학교), 56년 예천중학교, 59년 안동사범(본과)학교, 63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회화과, 82년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했다. 이태현 작가는 1959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 대학2학년 때 4·19혁명, 3학년 때인 1961년 5·16군사정변을 맞았다. 대학재학 시 이종우(李鍾禹,1899~1979), 김환기(金煥基,1913~1974), 이봉상(李鳳商,1916~1970), 손응성(孫應星,1916~1979), 이종무(李種武,1916~2003), 김숙진(金叔鎭,1931~)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이태현은 1970년 12월에 평생의 반려자 우영희(禹嬰姬,1948~)와 결혼했고 슬하에 3녀를 두었다.
주요연혁은 다음과 같다. 1985~2006 청주 서원대학교 예술학부 미술학과 교수, 예술대학장, 예술문화연구소장 역임. 1978 제14회 한국미협전 대상 수상. 1980 제29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특선. 1981 제30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특선. 2003 교토세이카대학(京都精華大学)객원연구교수역임(일본). 2006 녹조근정훈장 수훈. 2010~2012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초대동문회장 역임. 2012 문화예술진흥표창(경기도). 2019 대한민국미술인상 대상수상(한국미술협회).
3. 미술운동
(위 왼쪽부터)=命Ⅱ, 170×120㎝, 합판, 공업용장갑, 1967~2001. 1967년 한국청년작가연립전(展) 카탈로그 중 이태현 페이지, 1967. 命Ⅰ, 140×70㎝, 합판, 군용배낭, 군용방독면, 1967~2001. (아래 왼쪽부터)=1962년 ‘무(無)’동인 창립전 및 1967년 한국청년작가연립전 표지. 한국청년작가연립전에서 한국 최초의 해프닝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 장면, 왼쪽에서 세 번째가 이태현, 우산을 든 김영자, 중앙공보관 무동인회 전시실. |
서양화가 이태현은 홍익대학교 재학시절인 1962년 4학년 때 현대실험미술을 지향하는 동기인 김영남,김영자,김상령,문복철,석란희,최붕현,황일지,설영조 등과 함께 6월2~8일까지 ‘국립도서관화랑’에서 열린 ‘무(無)동인 ’창립전(展)을 발족시켰다. 사실상 이 전시가 이태현 화단 활동의 시작점이다. 이후 1967년 ‘무’동인 2회전시회를 국립중앙공보관에서 가졌는데 이때 한국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입체설치작품’을 발표했는데 ‘命Ⅰ’, ‘命Ⅱ’작품이다. “한국현대회화가 평면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오브제를 직접 도입한 초기 시도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한 작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화력을 시작하던 초창기에 앵포르멜과 네오다다를 거치면서 한국현대미술의 전위적인 운동의 한 가운데 있었다.<고충환 미술평론가-자기 내면에 질서의식의 성소를 짓다, 2021>
같은 해 12월 ‘한국청년작가연립전’이 국립중앙공보관에서 개최된다. 이때 ‘무’동인 전시장에서 한국최초의 행위예술이라 할 수 있는 해프닝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오광수 극본)’이 열리는데 한국현대미술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회자, 기록되고 있다. 이태현 작가는 이 멤버로 활동했다. “한국현대미술사에 ‘청년작가연립전’세대는 일제강점기 일본어 교육을 받았던 선배세대와는 달리 민족적정체성의 혼란을 비교적 덜 겪은 세대이다. 자신들보다 10년 정도 연상인 앵포르멜 세대가 일본의 미술잡지를 통해 서구의 미술동향을 간접적으로 접했던 것과는 달리, 이들은 구미의 미술 잡지나 혹은 프랑스 등지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비평가들의 육성을 통해 해외의 미술사조에 대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다.<윤진섭 미술평론가, 일루전과 실재에 대한 관계 증명, 2000>”
이태현 활동은 1969년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 출범창립멤버였으나 이후 탈퇴했고 72년 제1회 앙데팡당전(국립현대미술관), 74년 ‘무’, ‘신전’동인 일부가 포함 된 ‘무한대’협회창립전으로 이어진다. 또 제1회 서울비엔날레(국립현대미술관,74), 대구현대미술제(74), 서울현대미술제(75)에 출품했다. “이태현의 첫 개인전이 80년대에 들어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주변의 작가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늦은감이 없지 않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자기 확인에 대한 조심성이 그만큼 오래 지속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오광수 미술평론가-생성과 질서, 이태현의 조형과 그 편력, 2006>
4. 년대별작품영상
5. 작품세계 발자취
(위 왼쪽부터)=Space2, 40×40㎝ Silk screen on paper, 1973. Space73-1, 116,8×91㎝ Oil on Canvas, 1973. Space8008, 146×112㎝ Oil on Canvas, 1980 <제29회 국전특선작품> (아래 왼쪽부터)=Space891005, 162×130,3㎝ Oil on Canvas, 1989. Space911001, 162×130,3㎝ Oil on Canvas, 1991. Space93911, 162×130,3㎝ Oil on Canvas, 1993. |
◇어둠과 열림 무의식의 표출(1970~1985)
이태현 작가는 1970년대 초 패턴과 반복에 기초한 ‘미로’시리즈를 통해 모더니즘경향과 70년대 중반에 일루전(illusion)효과를 표출하게 된다. “서사적이고 재현적인 경우와는 비교되는 형식논리에 천착한 추상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현실 혹은 삶의 현장을 반영한다는 작가의 무의식적 의지가 표출된 경우로 봐도 좋을 것이다.<고충환 미술비평, 이태현의 회화-자기 내면에 질서의식의 성소를 짓다, 2021>” 80년대엔 단조롭지만 예리한 선조(線條)의 기하학적 공간구조에 천착한다. “80년대 초의 작품에 있어서는 ‘어둠’을 암시하는 차폐된 공간 속에서의 ‘열림’을 통하여 일층 선명해진 빛과 어둠과의 극명한 긴장관계, 흑백의 첨예한 대비 관계를 시사하는듯하다.<김인환 미술평론가-‘어둠’에서 ‘열림’으로의 그라데이션, 1989>”
◇통섭의 동심원 인식의 전환(1986~1994)
1980년대 중반 강한 운동성의 동심원(同心圓)이 등장한다. “작가가 ‘삶의 권역(圈城)’이라고 해석하는 그 동심원은 삶을 포함한 모든 것의 통합적 의미를 띄고 있다는 상징적 근거의 형태의미망(形態意味網)을 떠나서라도 시각적으로 닿아오는 운동의 상태로서 화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김인환 미술평론가-‘어둠’에서 ‘열림’으로의 그라데이션, 1989> “화면은 다양하고도 불규칙한 자유스런 형태 등 여러 가지 양상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종래 그가 가졌던 세계(자연)에 대한 인식의 방법을 크게 수정하고 있음은 물론 하나의 새로운 접근의 모색이 또한 잔잔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김복영 미술평론가, 해체창조로서의 공간, 1991>
(위 왼쪽부터)=Space 971008, 162×130,3㎝ Oil on Canvas, 1997. Space 99802, 145.5×112.1㎝ Oil on Canvas, 1999. Space 982201, 72.7×60,6㎝ Oil on Canvas, 2002. (아래 왼쪽부터)=Space230014, 162×130㎝ Oil on canvas, 2009. Space2010608, 41×32㎝ Oil on canvas, 2010. Space130² III corona, 130×130㎝ Oil on canvas, 2020. |
◇우연과 필연 자연과 인공(1995~2002)
서양화가 이태현 화면은 마블링이 만들어 내는 비정형적, 비결정적 이미지의 우연성과 그 위 색막대가 올려지는 조형성을 드러낸다. “마블링이 만든 화면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흑암의 공간, 혼돈의 공간, 태초의 공간, 카오스의 공간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위에 중첩되는 기하학은 원래 수학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이성과 질서, 논리와 개념을 의미한다.<고충환 미술비평, 이태현의 회화-자기 내면에 질서의식의 성소를 짓다, 2012>” “그의 화면에는 긴장만이 묵묵히 흐를 뿐이다. 속성을 달리하는 두 가지(자연과 인공)가 팽팽하게 맞물려 있을 뿐만 아니라 양자 사이에 어떤 타협의 여지도 남겨놓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 같은 모순의 직시가 우리를 잠시 당혹케 할 수 있어도 현실계를 조화로 왜곡시키는 것과 같은 과오를 다시금 되풀이하는 법은 없다.<서성록 미술평론가-자연과 인공의 콘트라스트, 1995> “화면의 이원적 구조의 지향은 평면에 대한 그 나름의 해석과 검증을 꾸준히 지속시키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성과 질서-이태현의 조형과 그 편력, 오광수 미술평론가, 2006>”
◇주역 8괘와 동양적우주관(2003~현재)
이태현 화백 2003년경 작품들에서 우주와 자연의 질서화 된 기호들이 등장한다. “토막의 검은 선조는 다름 아닌 8괘를 원용한 것이다. 역을 구성하는 64괘의 기본이 되는 것이 8개의 도형이다. 이를 임의로 연결 지어 독특한 검은 띠의 구조화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기호의 원용이란 차원을 넘어서 동양인의 사유의 체계를 평면이란 공간 속으로 유도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오광수 미술평론가, 생성과 질서-이태현의 조형과 그 편력, 2006> “이태현의 작업은 그런 관점에서 매우 지적이며,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작업에 임하는 그의 이러한 태도는 향후 그의 작품세계를 더욱 확고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윤진섭 미술평론가-일루전과 실재에 대한 관계 증명, 2000>”
6. 개인전·아트페어·미술관소장
이태현 작가 개인전 카탈로그표지모음(1980~2022) |
△개인전=통인화랑(서울,2022), 영은미술관(경기광주,2021), 조선일보미술관(서울,2019), 갤러리 그리다(서울,2014), 한가람미술관MANIF(서울,2011), 한원미술관(서울,2010), 신미술관(청주,2006), 인사아트센터(서울,2006), 중화갤러리(中和ギャラリー,도쿄,2003), 청주예술의전당(청주,2001), 조선화랑(서울,2000), 종로갤러리(서울,1998), 종로갤러리(서울,1995), 금호미술관(서울,1991), 백송화랑(서울,1989), 관훈갤러리(서울,1984), 문예진흥원미술회관(서울,1980).
△주요단체전=무(無)동인회 창립전(국립도서관화랑,서울,1962), 현대미술의 실험전 및 한국청년작가연립전(중앙공보관화랑,서울,1967), 제1회 앙데팡당전(국립현대미술관,서울,1972), 제1회 대구현대미술제(계명대학교미술관,1974). 서울비엔날레(한국아방가르드협회주최,국립현대미술관,1974), 제1회 서울현대미술제(국립현대미술관,1974), 제2회 무한대 협회전(문예진흥원미술회관,서울,1976), 제12회 아시아현대미술전(동경도미술관,1976), 에콜 드 서울전(국립현대미술관,1979), 제7회 한국미술대상전(한국일보,국립현대미술관,1980), 한국현대미술위상전(교토시미술관,1982), 현대미술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1983~1992), 제1회 충북추천작가초대전(국립청주박물관,1990), 선화랑 개관20주년기념 200인전(서울,1997), 한국추상회화1958-2008전(서울시립미술관,2008), 국립현대미술관 개관50주년기념전, 광장:미술과 사회 1900~2019. 2부 1950~2019출품(국립현대미술관,2020).
△미술관 소장=리움미술관(서울), 홍익현대미술관(서울), 서귀포시립 기당미술관(제주), 서울시립미술관(서울), 국립현대미술관(서울), 박수근미술관(양구), 환기미술관(서울), 한원미술관(서울).
7. 이태현 화론(畵論)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이태현 화백. 사진=권동철(왼쪽 2023.3, 2022.12) |
1967년 여름, 현대미술실험전(중앙공보관)에 출품 한 작품이 ‘명(命)’이다. 그해 12월, 한국청년작가연립전(중앙공보관)이 열리는데 그때 베니아판 위 대형입체작품을 출품했었고 그 명제가 ‘甲1’, ‘甲2’ 작품이다. 그러니까 ‘命’, ‘甲’시리즈를 연속 발표한 것이다. 작품 ‘甲(갑)은 아주 견고하고 흐트러지지 않는 것을 의미했는데 최고를 지향하는 작의(作意)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다른 작가의 출품작품명제와 상당히 다른 느낌을 받았고 그렇게 계속 입체작품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졌다. 1967년 12월을 지나 3년여 동안 이 문제의식의 지속되었는데 핵심은 ‘회화는 평면’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그 지론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몰두해 있었다. 마침 그때 만난 것이 주역(周易)의 팔괘(八卦)였다. 우주 삼라만상이 모두 팔괘의 막대기 속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970년 12월 경, 당시 재직하고 있던 동대문상고미술실에서 고심하던 작업을 시도했다. 두 점을 그렸는데 마침 1971년 봄, 한국미술대상전 공모가 있어서 그 두 작품을 출품했다. 모두 입선했는데 그때 명제가 ‘Space70-1’, ‘Space70-2’이다. 나의 ‘Space(공간)’명제의 시작이었다. 그러면 왜 ‘Space’인가. 나는 ‘회화는 평면이다.’라는 것에 동의했는데 ‘회화 공간’이라는 말을 붙여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삼라만상 모든 것이 공간(Space)안에 포함되는 것이니 나로서는 아주 합당한 명제로 받아 들여졌다. 시간과 공간의 문제로 확장하면 내가 태어나 한국, 고향인 경북예천 그리고 서울이라는 공간도 내포하고 있었다. 또 회화외적공간이기는 하지만 생의 의미에서 유교전통이 강한 안동, 예천, 의성지역 유가의 사유가 내 의식 속에 자리한 것도 부정 할 수 없다.
◇제대로 된 인생 제대로 된 예술
나는 화가의 길을 걸어오면서 만난 분 중, 특히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1913∼1974), 박서보(1931~)선생에게서 ‘화가의 자세’에 대해 영향 받았다. 내가 보기에 두 분은 정도(正道)를 걷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내가 사범학교 출신이라서 그런지 ‘제대로 인생을 걸으면 제대로 된 예술을 한다.’라고 굳게 믿었다. 요령과 편법은 없다. 일시적인 명성은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가면 제대로 된 것으로 가야 제대로 평가받는다는 것이 화가의 길에 대한 나의 지론이었다. 어느덧 내 나이 팔순을 넘겼다. 뒤돌아보면 김환기, 박서보 선생이 예술가로서 성공하는 것을 보고 나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더욱 더 믿게 된다. 마지막으로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자기세계를 개척하라. 끝까지 고수해서 개척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이태현 화백 작업실에서. 대담정리=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 2023.3]
8. 외부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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