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첨의참리 월성군(月城君) 문효공(文孝公) 이천 李蒨 | |
<colbgcolor=#fedc89><colcolor=#670000> 출생 | ? |
사망 | 1349년 7월 29일[1] |
본관 | 경주 이씨 |
자 | 군실(君實) |
호 | 국당(菊堂) |
봉호 | 월성군(月城君) |
공신호 | 추성보리공신(推誠輔理功臣) |
시호 | 문효(文孝) |
[clearfix]
1. 개요
첨의참리, 정당문학 등을 역임한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경주 이씨 국당공파(菊堂公派)[2]의 파조이다.2. 생애
1299년(충렬왕 25) 국자감시(國子監試)에 장원 급제한 뒤 우사보(右司輔) 등을 지냈다. 1343년(충혜왕 복위 4) 첨의평리상의(僉議評理商議)가 되었고, 1344년(충혜왕 복위 5)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었다. 1344년(충목왕 즉위년)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원 황제가가 교(郊) 제사[3]를 지내고 사면령을 내린 것을 하례하였다. 같은 해 6월 서연(書筵)이 설치되고 우정승(右政丞)[4] 채하중(蔡河中) 등 48명이 서연관으로 임명될 때,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5]였던 이천과 그 아들인 전리정랑(典理正郞) 이달충(李達衷)도 이에 속하게 되었고[6], 같은 해 10월에는 정당문학(政堂文學)[7]이 되었다. 1345년(충목왕 1) 첨의참리(僉議參理)[8]에 임명되었다. 이후 추성보리공신(推誠輔理功臣)에 책록되고 월성군(月城君)[9]에 봉해졌다. 1349년(충정왕 원년) 졸했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3. 가계
- 조부 : 이핵(李翮) - 문하평리(門下平理) 증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 백부 : 이인정(李仁挺) - 평리성암공파(評理誠菴公派)의 파조
- 중부 : 이진(李瑱) - 임해군(臨海君), 검교첨의정승(檢校僉議政丞)
- 부 : 이세기(李世基) -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검교정승(檢校政丞)
- 모 : 이천 서씨(利川 徐氏), 서찬(徐瓚)[10]의 딸
- 초배 : 담양 설씨(潭陽 薛氏)
- 장남 : 이경중(李敬中) -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 중서문하판병부사(中書門下判兵部事)[11]
- 자부 : 부안 김씨(扶安 金氏), 김성승(金成承)[12]의 딸
- 차남 : 이배중(李培中) - 전리판서(典理判書)[13]
- 자부 : ?
- 계배 : 죽산 박씨(竹山 朴氏)
- 3남 : 이달충(李達衷, 1309~1385) - 계림군(鷄林君)
- 자부 : 정화택주 횡성 조씨(静和宅主 橫城趙氏), 조문근(趙文瑾)[14]의 딸
- 자부 : 충주 안씨(忠州 安氏), 안우(安祐)[15]의 딸.
- 자부 : 평양 조씨(平壤 趙氏), 조천우(趙千祐)[16]의 딸
- 삼배 : 순창 박씨(淳昌 朴氏)
- 4남 : 이성중(李誠中, 1332~1411) - 조선(朝鮮)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17], 검교좌정승(檢校左政丞)
- 자부 : 창원 황씨(昌原 黃氏), 황하연(黃河衍)의 딸
- 자부 : 진주 류씨(晋州 柳氏), 류지정(柳之淀)[18]의 딸
- 제 : 이매(李邁) - 부정공파(副正公派)의 파조
- 제 : 이과(李薖) - 상서공파(尙書公派)의 파조
- 매 : 경주 이씨(慶州 李氏)[19]
- 매제 : 윤군정(尹君正) - 해평 윤씨(海平 尹氏) 시조, 수사공 상서좌복야 판공부사(守司空 尙書左僕射 判工部事)
- 제 : 이조(李蓨) - 사인공파(舍人公派)의 파조
[1] 계묘(癸卯)일. 양력.[2]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이명박이 국당공파에 속한다.[3] 하늘에 제사지내는 일.[4] 고려 후기 최고 관직이었다. 당시에는 영의정과 같은 관직을 두지 않고 우정승과 좌정승을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상위였지만, 고려시대에는 우정승이 좌정승보다 상위였다.[5] 밀직사의 판사. 밀직사의 최고 관직으로 종2품.[6] 이때 사촌인 판삼사사(判三司事; 삼사의 수장으로 종1품 관직) 이제현도 함께 임명되었으니 경주 이씨 일문에서 3명이나 임명된 것이다.[7] 고려시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종2품 재상직이다.[8] 고려 후기 첨의부의 종2품 재상직이다.[9] 족보에는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으로 되어 있다.[10] 예빈윤(禮賓尹; 예빈시의 윤). 이천 서씨 7세. 부인은 양천 허씨(陽川 許氏) 예부상서(禮部尙書) 허수(許遂)의 딸.[11]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재신(宰臣)이 겸직하는 판병부사(判兵部事). 판병부사는 판상서병부사(判尙書兵部事)의 준말로 상서병부의 최고 관직인 판사이다.[12] 대사성(大司成).[13] 전리사(典理司)의 으뜸벼슬 판서(判書). 전리사는 1275년(충렬왕 1) 원나라의 간섭으로 상서성(尙書省)의 이부(吏部)와 예부(禮部)를 병합하여 설치한 관서이다. 1298년(충선왕 1) 전조(銓曹)와 의조(儀曹)로 분리되었고, 공민왕과 공양왕 때 다시 전리사라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문관의 선임·공훈·예의·제향·조회·교빙·학교·과거에 관한 일을 관장하였다.[14] 정당문학(政堂文學).[15] 충렬공(忠烈公).[16] 상서(尙書).[17] 공안부(恭安府)의 으뜸벼슬 판사(判事). 공안부는 조선 초기 상왕이 된 정종을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18] 삼사좌사(三司左使). 부친은 좌정승(左政丞; 고려사에는 기록 없음) 류간(柳玕). 부인은 안동 김씨(安東 金氏) 중서평장사(中書平章事; 족보에는 우정승으로 기록) 김승택(金承澤)의 딸.[19] 이천 서씨(利川 徐氏) 족보에 서찬(徐瓚)의 사위 이세기(李世基)의 자녀들을 이천(李蒨), 이매(李邁), 이과(李薖), 사위 윤군정(尹君正) 순으로 기록한 것을 보면 이세기의 딸은 4남 이조(李蓨)의 누나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조는 기록하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