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6 13:16:57

이정문(축구선수)

파일:I’m so honored to be in the Chiang Rai team. I‘ll do my best to go higher.jpg
치앙라이 유나이티드 FC No.
이정문
李政文 | Lee Jung-Moon
<colbgcolor=#ff7008><colcolor=#000> 생년월일 1998년 3월 18일 ([age(1998-03-18)]세)
출신지 서울특별시 마포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경주 이씨
신체 195cm, 85kg
주발 양발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스트라이커
학력 및
유스팀
서울서강초등학교
→신북초등학교
서울신정초등학교 (졸업)
현대중학교 (울산현대 U-15 )
유성중학교 (대전시티즌 U-15 ) (졸업)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대전시티즌 U-18) (졸업)
연세대학교 (2017)
소속팀 대전 시티즌/대전 하나 시티즌 (2019~2020)
제주 유나이티드 (2021~2022)
서울 이랜드 FC (2022~2023)
진주시민축구단 (2024)
치앙라이 유나이티드 FC (2024~ )
국가대표 9경기 (대한민국 U-20 / 2016~2017)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여담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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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센터백이다.

2. 클럽 경력

2.1. 유스시절

서울에서 태어난 이정문은 초등학교 시절 전학만 무려 2번했으며, 중학교는 울산의 현대중학교로 진학했다가 중간에 대전 시티즌의 유소년 산하 학교인 유성중학교로 또다시 전학을 갔으며, 대전의 유소년 산하 학교인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였으며,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에서는 2학년 후반기부터 주장을 맡았고, 그 해 K리그 주니어 후기리그 10경기에 출전해 팀 내 최다 득점인 5골을 성공시켰다.[1]
“이정문은 신체 조건이 아주 뛰어난 선수다. 신장이 크면 상대적으로 순간적인 반응이 느린데 이정문은 그 부분에서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주장으로서 갖춰야 할 리더십, 동료들을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갖추고 있다. 향후 대전 시티즌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될 것으로 믿는다.”

{{{#!wiki style="text-align:right"
- 2015년 9월, 대전 U18팀 정갑석 감독 인터뷰 中-}}}

2.2. U리그/연세대

고등학교 졸업 후 대전 시티즌의 우선 지명을 받고 연세대학교로 입학했으나, 대학 첫 해 연세대의 U리그 불참으로 인해 경기 감각 유지에 지장을 받게 되었다.

2017년 7월 18일, 김해대학교전에서 추계연맹전 데뷔전을 치렀고, 데뷔골도 기록하였으며, 전국 추계 대학축구 연맹전에서 8경기 2골을 기록하였으며, 이정문의 활약을 앞세워 소속팀 연세대는 4강을 기록하였다.[2]

연세대는 이정문의 공격적인 장점이 많은 것을 보고 미드필더를 보게 하였다. 이정문 시프트는 꽤나 잘 먹혀들었고 연세대 시절에는 수비수보다 미드필더로 활약한다.
"연세대에서 훈련을 시켜보니 신장이 큰 선수치고 공격적인 장점이 많았다. 기술적인 부분도 갖췄다. 20세 대표팀 때 보니까 돌아 뛰는 수비, 즉 최종 라인에 있을 때 부담감이 커보였다. 장점이 수비적인 부분보다 공격적인 게 더 많은 선수다."
{{{#!wiki style="text-align:right"
- 2018년 5월, 연세대 신정흠 감독 인터뷰 中}}}
이정문은 당시 인터뷰에서 “신북초등학교에서는 특히 드리블을 많이 가르치는데, 거기에 있다 보니 몸에 많이 배어있어 지금까지 그런 부분이 남아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멀티플레이어로 여러 포지션을 볼 수 있는 선수였으면 좋겠다. 최전방에 대한 생각도 하고 있다. 슈팅 연습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기른 이정문의 멀티포지션 능력은 나중에 프로에서 요긴하게 쓰인다.

연세대 2017학번 동기로는 FC 안양 하승운부산 아이파크 김승우(축구선수)가 있다.

2.3. 대전 시티즌/대전 하나 시티즌

2019시즌을 앞두고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입문하였으며, 등번호는 42번을 배정받았다.[3]

2.3.1. 2019시즌

3월 3일 안산 그리너스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며 프로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후 단국대학교와의 FA컵 3라운드에서도 후반 교체 투입되었다.

이후 간간히 조커로 기용되었으며, 4월 9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R리그 경기에서는 골을 기록하였으며, 5월 1일 아산 무궁화전에서 미드필더로 시즌 첫 리그 선발 출장하였다.

5월 5일 부산 아이파크전에서는 안상현을 대신해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했지만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해 전반전에 교체 아웃되었으며 이 날 경기는 0:5로 참패했고, 이날 경기 종료 후 고종수 감독은 이정문이 이날 조금은 넋이 나간 상태에서 플레이했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이후 주로 조커로서 미드필더나 센터백으로 간산히 기용되었으며, 7월 14일 전남 드래곤즈전에서는 새로 부임한 이흥실 감독에 의해 최전방에 위치하기도 했다.

이후 이흥실 감독이 쓰리백을 배치함에 따라 이민규, 윤신영, 이지솔 등과 주전 경쟁을 펼치면서 간간히 센터백으로 기용되었는데, 특히 8월 31일 안양전에서는 이후 고종수 감독이 경질되고 이흥실 감독이 새로 부임해 쓰리백을 배치하면서 쓰리백의 주축으로 활약하였고, 특히 8월 31일 안양전에서는 5백의 극단적인 끈끈한 수비 축구의 주축으로서 안양 에이스 조규성을 강한 압박과 거친 수비로 저지했으며, 빠른 수비 전환으로 안양의 역습 축구와 압박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대전의 두경기 연속 클린시트를 공헌하였다.

9월 14일 서울 이랜드전에서는 박인혁과 투톱으로 스트라이커로 기용되었으며, 안지호의 퇴장을 이끌어내면서 대전의 1:0 승리에 공헌하였으며, 연이은 부산전에서도 스트라이커로 기용되었다.

확실히 수비는 좋아졌지만, 공격의 핵 키쭈의 부상과 박인혁의 부진 등으로 공격이 많이 무뎌졌기에 이흥실 감독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정문의 높이와 기술을 공격에 활용한 것이었다.#

9월 21일 수원 FC전에서도 스트라이커로 출장해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프로 데뷔골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이정문 원톱 기용이 금세 상대에게 읽히면서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면서 10월 2일 부천 FC전부터는 다시 센터백으로 기용되었다.

2.3.2. 2020시즌

파일:5ef73c10dee07.jpg

2020 시즌을 앞두고 대전 시티즌이 기업구단으로 재창단되었지만 여전히 팀에 잔류하며 대전 하나 시티즌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충남 아산과의 리그 개막전에서 후반 교체 출전, 전방에 배치되어 공격에 가담하였다. 안산 그리너스와의 4라운드에서 미드필더로 시즌 첫 선발 출장하였으나 후반 부상으로 교체 아웃되었다.

안양과의 리그 8라운드에서는 팀이 3:2로 역전당하자 교체 투입되어 스트라이커로 기용되었는데, 경기 막판 극장골을 성공시키며 가까스로 팀을 패배로부터 구해냈다.

부천과의 9라운드에서도 센터백으로 선발 출장했는데 팀이 뒤지자 미드필더를 거쳐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올라가며 중앙과 공격 전 포지션을 소화, 맹활약하기도 하였다.

전남과의 17라운드에서 안정적인 수비를 보이며 17라운드 리그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연이은 9월 6일 부천전에서 후반 막판 바이오의 극장골을 어시스트하며 대전의 4경기 무승 행진을 끊어냈고, 18라운드 리그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조민국 체제로 치러진 첫 경기인 9월 19일 서울 이랜드전에서 후반 막판 헤더로 만회골을 터뜨렸다. 2020년 9월 팬 선정 구단 9월 월간 MVP에 선정되었다.#

2020시즌에 21경기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2021년 1월 김천 상무 1차 서류 지원에 합격하면서 군입대를 준비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최종 합격에는 실패했다.

2.4. 제주 유나이티드

파일:FB_IMG_1612254155687.jpg

2021년 임덕근과의 트레이드로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2.4.1. 2021 시즌

하지만 제주 이적 이후 이정문은 호흡 문제로 인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많은 고생을 하며 약 5개월 가량을 쉬었다. 부상을 당한 것이 아니라 정말 몸이 아픈 것이었는데, 당시 그의 병명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천식을 의심하는 상황이었는데 병원에서는 또 천식은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천식 증세와 좀 비슷했는대, 호흡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훈련을 쉽게 할 수 없었고, 경귝 병원을 계속 다닐 수 밖에 없었으며, 좀처럼 몸이 나아지지 않으니 그것 때문에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남기일 감독으로부터 공격수로 낙점받은 이정문은 이후 정조국 공격 코치에게 집중 레슨을 받았다.

8월 21일 K리그1 25라운드 수원 FC 원정경기에서 79분에 이동수와 교체투입 돼서 K리그1 데뷔전을 가졌고, 공격수로 투입되어 최전방에서 분투했으나 상대의 수비에 막혀 팀은 1:0으로 패배하였다.

9월 25일 리그 32라운드 포항 스틸러스 원정경기에서 제주 소속으로 처음 선발로 나서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하며 전반 37분 팀의 세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54분에 교체되기 전까지 포항 수비수들을 위협하는 공중 패스를 여러 개 성공하였고 주민규와 교체 아웃 되었다. 팀은 2:4로 승리.

10월 10일 리그 27라운드 순연경기 강원 FC 전에서는 부상 당한 주장 주민규 대신 선발 출전해 68분에 이창민이 올려준 프리킥이 이범수의 선방에 튕겨나온 세컨볼을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동점골을 성공시키면서 팀을 패배에서 구했다. 2021시즌 제주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포함해 도합 10경기 출전 1골.

2.4.2. 2022 시즌

2022년 제주 구단 홈페이지에는 아예 공격수로 등록되어 있고, 등번호도 9번을 배정 받은 것을 봐서는 본격적으로 공격수로 적극 기용될 것으로 전망 되었다.

하지만 전반기 리그 1경기 출장에 그쳤고, 경기 출전 시간 확보를 위해 결국 6월 30일 K리그2 서울 이랜드 FC로 이적한다는 단독보도가나왔다. #

2.5. 서울 이랜드 FC

2022년 7월 1일, 서울 이랜드는 이정문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으며, 서울에서도 공격수로 기용되면서 하반기동안 리그 5경기 출장을 기록하였다.

23시즌에도 서울에 잔류했으나 리그 7경기 출장에만 그쳤고, 결국 2024년 2월 4일, 서울 이랜드 구단과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했다.

2.6. 진주시민축구단

2024년을 앞두고 K4리그 진주시민축구단으로 이적했다.

서울 노원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5라운드 경기에서 선취골을 성공시키며 진주 데뷔골을 성공시켰고,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11라운드 평택 시티즌 FC전에 결승골을 시키며 시즌 2호골을 성공시켰고, 14라운드 남양주시민축구단전에서는 시즌 3호골을 기록했다.

전반기동안 K4리그에서 리그 9경기 3골을 기록했으며, 시즌 중반 팀을 떠났다.

2.7. 치앙라이 유나이티드

2024년 7월 태국 타이리그 치앙라이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면서 처음으로 해외 무대에 진출하게 되었다.

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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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3일, 잉글랜드 U-18 대표팀과의 친선전에 출전하여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후 2016 카타르 4개국 친선대회와 수원 컨티넨탈컵 대표팀에 연달아 승선하였으며, 활약을 인정받아 2017 FIFA U-20 월드컵 최종 명단 21인에 포함되었으며, 아르헨티나 같은 강팀을 상대할 경우 수비 위주의 쓰리백을 배치할 것으로 전망되기에 이정문이 충분히 이번 대회에 기용이 될것이라고 전망되었다.

대회 전 펼쳐진 우루과이 U-20 대표팀과의 세네갈 U-20 대표팀과의 친선전에 출전하였으며, 2017 FIFA U-20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는 2경기 출전했지만, 느린 발로 인해 좋은 활약은 보이지 못하였고 경쟁자인 정태욱의 선전으로 인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21년 1월 이지솔이 부상으로 올림픽 대표팀 소집 훈련에 빠지면서 대채 발탁, 처음으로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195cm에 85kg라는 좋은 피지컬을 가지고 있으며, 연령별 대표팀 경쟁자 정태욱이 인정할 정도로 제공권, 빌드업도 준수한 양발잡이 센터백이다.
또한, 큰 신장에도 불구하고 발밑이 준수한데다 드리블 능력도 어느정도 갖추고 있어, 공격 진영에서 피지컬로 공을 지킨 뒤 연계 플레이에도 능하다.

이때문에 공격수로도 자주 투입되는데, 전체적으로 센터백으로 섰을 때보다 미드필더 혹은 최전방 공격수로 올라갔을 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프로레벨에서는 발이 느려 뒷공간이 불안하다고 자주 지적받는다.

5. 여담

  • 약간 배우 이정재를 닮기도 하였다.
  • 프로필 모교란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히 전학이 잦았던 학생이었다.
  • 2021년에 금발로 잠시 염색했었는데, 그라운드 어디에 있든 눈에 띄어서 동료들에게 최대한 많은 패스를 받아 골을 넣고 싶은 마음에 한것이라고 밝혔었다. #

6.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28245f><tablebgcolor=#28245f> 파일:진주시민축구단 엠블럼(2).svg진주시민축구단
2023 시즌 스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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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45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181818,#e5e5e5
등번호 포지션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생년월일 국적 비고
4 MF 한준규 Han Jun-kyu 1996년 2월 10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5 MF 김형원 Kim Hyeong-won 1999년 2월 22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 MF 이현성 Lee Hyunsung 1993년 5월 20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 MF 방동은 Bang Dong-Eun 1999년 11월 27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 FW 김민우 Kim Minwoo 1997년 6월 3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1 DF 이상준 Lee Sang-jun 1999년 10월 14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2 GK 김도담 Kim Do-Dam 1998년 12월 29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4 MF 최익진 Choi Ik-Jin 1997년 5월 3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5 DF 심성협 Sim Seonghyeop 2000년 8월 17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6 DF 황준석 Hwang Jun-Seok 1996년 3월 19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7 FW 김도훈 Kim Dohun 2001년 10월 15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8 FW 이현일 Lee Hyunil 1994년 9월 13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 FW 김근율 Kim Geunyul 2003년 4월 29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 FW 황재정 Hwang Jae-jung 1998년 7월 6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1 DF 박경현 Park Gyeonghyeon 2004년 2월 24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2 DF 박재우 Park Jae-woo 1995년 10월 11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3 DF 전상훈 Jeon Sang-hun 1989년 9월 10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4 DF 김재석 Kim Jae-Seok 2001년 2월 1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6 MF 이주헌 Lee Juheon 2004년 3월 11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7 GK 배준호 Bae Junho 2003년 8월 8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9 FW 박성범 Bak Seongbeom 2000년 8월 28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30 DF 변준범 Byeon Jun-Byum 1991년 2월 5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32 FW 구현우 Koo Hyun-Woo 1997년 6월 26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33 DF 손한을 Son Han-Eul 2000년 2월 16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44 MF 조광현 Jo Gwanghyeon 2000년 4월 2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55 FW 안경찬 An Kyoung-Chan 1998년 6월 22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66 DF 백인혁 Baek Inhyeok 2004년 4월 2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1 GK 노지훈 Noh Ji-hun 1999년 4월 1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9 MF 신학영 Shin Hak-Young 1994년 3월 4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구단주: 조규일 | 감독: 이창엽 | 홈구장: 진주종합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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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골 모두 큰 신장을 이용한 헤더 골이었으며 수비수임에도 B조 득점 랭킹 5위에 오르는 저력을 보였다.[2] 우승은 단국대가, 준우승은 울산대가 차지하였고, 4강의 나머지 한 팀은 숭실대였다.[3] 연세대 시절부터 이정문은 6번을 선호했는데, 당시 대전은 황인범이 6번을 배정받은 관계로 4+2=6을 응용해 42번을 배정받은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