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이응준 李應浚 | |
한국사 최초의 태극기인 이응준 태극기. | |
출생 | 1832년 |
조선 (출생지 미상) | |
사망 | 1889년 이후 (향년 67세 이후) |
조선 또는 일제강점기 (사망지 미상) | |
국적 | 조선(1832~1897) [[대한제국| ]][[틀:국기| ]][[틀:국기| ]](18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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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후기 및 대한제국 시기의 역관(譯官; 통번역 외무공무원)이다. 본관은 금산(金山)이다.2. 생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850년(철종 1년) 증광시(增廣試) 역과(譯科)에 2위로 합격하여 역관으로 등용되었다. 1882년 5월 14일,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을 앞두고 '근대국가의 조약 체결에는 국기가 필요하다'는 미국 공사 로버트 슈펠트의 요구가 있었다. 이에 고종과 김홍집의 명에 의하여 태극기를 제작하였으며, 이것이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태극기이다.《고종실록》에 따르면 1889년 뇌물 문제에 연루되어[1] 의금부에 감처되었는데, 이 이응준이 해당 인물과 동일인물인지는 아직까지 확실하지 않다. 동일인이었다면 이응준의 태극기 제작에 앙심을 품고 있던 청나라 측이 보복성 공작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로 이응준의 행적은 알수 없게 된다.
3. 태극기의 제작
자세한 내용은 태극기 문서 참고하십시오.[1] 청나라 대신들에게 뇌물을 건네주라는 비밀 공작에 연루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