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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타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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井上貴子
(이노우에 타카코)
국적 일본
출생일 1969년 11월 7일 ([age(1969-11-07)]세)
출생지 일본 이바라키현 도리데시
신장 163cm
체중 58kg[1]
데뷔 1988년 10월 10일, 일본 도쿄 고라쿠엔홀
소속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1988~1999)
WWE (2004)
LLPW (2005 ~ )
피니쉬 무브 타카코 패닉
개인 SNS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일본프로레슬러.
1990년대, 빼어난 미모의 아이돌 프로레슬러로 유명했으며, 현재까지 링을 지키고 있는 베테랑 레슬러이다.

1. 생애2. 주요 경력

1. 생애

1969년 11월 7일, 도쿄 동쪽의 이바라키현에서 태어난 이노우에 타카코는 어린 시절부터 육상, 체조 선수로 활약하며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했다. 고등학생 무렵, 레슬링의 매력에 빠진 그녀는 아마추어 레슬링으로 종목을 변경하였으며, 당시 일본 최대의 여성 프로레슬링 단체인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이하 ‘전녀’로 표기)에 입단하고자 오디션에 응시했으나, 두 차례 낙방한 끝에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 마침내 합격하여, 1988년 10월 10일, 도쿄의 고라쿠엔홀에서 동기생인 이노우에 쿄코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루며 본격적인 프로레슬러 경력을 시작했다.

데뷔 초기, 깡마른 몸매에 평범한 운동 신경, 지극히 단순한 레슬링 기술 때문에 이 경기 저 경기 쳐맞으며자버에 불과했으나, 빼어난 미모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여 큐티 스즈키와 함께 아이돌 프로레슬러의 대표주자로 불리기 시작했다. 레슬러 활동 외에 사진집[2]과 음반을 발표하며 연예 활동을 병행하며 인기 몰이를 했지만, 오히려 그녀의 미모와 유명세는 선배들의 질투와 시기를 불러 일으켜 결국 선배들로부터 심한 개갈굼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전해진다. 관자놀이가 골절당할 정도로 구타를 당하고, 절도를 당하기도 했으며, 누명을 쓰기도 하며 이지매괴롭힘을 받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노우에 타카코는 당한 놈이 더 한다고훗날 이쁘장한 후배 프로레슬러에게 가혹행위대물림시전했는데, 대표적인 피해자는 노우미 카요, 시라토리 치카코, 후카와 유미. 노우미 카요는 괴롭힘에 못이겨 수차례 숙소를 이탈했으며, 시라토리 치카코는 아예 단체를 떠났다. 후카와 유미는 이노우에 타카코의 폭력에 중상을 입기도. 가해자가 된 피해자의 전형적인 케이스.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 이노우에 타카코는 근육량을 증가시켜, 60kg 초반대의 탄탄한 체형과 함께 파워를 향상시켰으며, 선배들의 개갈굼 덕택에정신력과 맵집도 발전시켜, 그저 쳐맞고 다니는자버에서 벗어나 단체의 미드카더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저 이쁘장하기만 했던 모습보다는 격렬하고 처절한 경기를 자주 선보였고, 특히 이무렵 활성화되었던 단체 대항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LLPW의 주축인 칸도리 시노부에 도전하여 좋은 경기를 선보여 타 단체 메인 이벤터전녀미드카더는 동급이라는 인식을 끌어내기도 하며 단체의 위상을 제고하는데 기여했다. JWP의 큐티 스즈키와의 살벌한 아이돌 프로레슬러 대결도 이무렵 그녀의 대표적인 명경기.

물론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하나, 그녀는 테크닉, 경기 운영, 운동 능력 면에서는 당대 최고의 여성 프로레슬러였던 토요타 마나미호쿠토 아키라에는 역부족이었으며, 아쟈 콩, 불 나카노와 같이 압도적인 피지컬과 파워를 가진 것도 아니었던 지라 단체의 최고 레벨 선수로 나아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대신 하이 미드카더로 견실한 활약을 보여주며 전녀의 선수층을 두텁게 만들어주었다. 챔피언 타이틀도 WWWA 올 퍼시픽 챔피언 타이틀을 3회[3], WWWA 세계 태그팀 챔피언 타이틀을 6회 차지하며 나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태그팀의 경우, 데뷔 동기인 이노우에 쿄코[4]와 결성히여 활동했던 ‘더블 이노우에’가 유명했다.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이노우에 타카코는 공수도킥복싱을 접목하여 킥력을 증대시켰고, 피니쉬 무브인 우라켄을 더욱 섬세하고 정교하게 가다듬어 파괴력을 향상시켰다. 또한 체중을 소폭 감량[5]하여 순발력을 증가시키며 전체적인 경기력을 향상시켰다. 이윽코 단체의 주력 선수로 나아갔으나[6], 전녀의 막장 운영[7]에 실망한 그녀도 1999년 마침내 정든 전녀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 LLPW, 알시온 등 단체에서 프리랜서로 활약하는데, 2000년 9월에는 LLPW에서 카자마 루미, 이글 사와이와 ‘Black Jocker’라는 악역 스테이블을 결성하여 턴힐하며 이미지의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WWE로부터 입단 테스트를 받기도 했는데, 트라이아웃에서 당시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재즈를 상대로 승리하는 등 주목을 받았으나, 끝내 계약까지는 가지 못했다. 이에 대해 그녀가 WWE 경영층에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는 설도 있고, 한편으로는 당시 ‘브라&팬티 매치’[8]같은 선정적인 경기에 그녀가 부담을 느껴서 거절했다는 설도 있다. 2004년에는 한 차례 내한하여 경기를 선보인 적이 있다.

2005년 2월, 이노우에 타카코는 LLPW와 계약하여 긴 프리랜서 경력을 종료했다. 2011년에는 본인같은 아이돌 프로레슬러를 발굴하는 프로젝트인 ‘Volume II’에 참여하기도 했다. 2018년 10월 2일에는 도쿄돔씨티홀에서는 이노우에 타카코의 데뷔 30주년 기념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격한 종목임에도 30년간 선수 활동을 이어가는 그녀의 남다른 자기 관리와 프로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본인의 의류 브랜드인 CacatoCacat을 론칭하여 운영하고 있다. 신주쿠에 매장이 있다고 한다. 요즘은 요가 강사도 부업삼아 한다고.

트위터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며, 팬들에게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취미로 골프를 치는 모습이 종종 보이며, 동료 프로레슬러들의 사진이 종종 눈에 띈다. 토요타 마나미와 동기이자 태그팀 파트너였던 이노우에 쿄코와는 여전히 친분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어째 20대 때보다 어려보이는40대 후반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미모를 과시하는 사진을 볼 수 있다.

그녀의 경기 스타일은 엄청난 파워를 수반한 리프트 계열의 기술이나 화려한 공중 살법을 보여주지는 못했으나, 정확하고 효율적인 타격으로 경기를 운영하는 데 주력하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 화려함과는 분명 거리는 있으나, 담백하고 실전적인 기술들로 지금까지 많은 프로레슬링 팬들을 확보했다. 나이가 들어도 기술을 계속 연마하고 응용하는 노력형 프로레슬러. 화려한 테크닉과 엄청난 운동 능력을 보유했던 타고난 프로레슬러토요타 마나미의 반대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2. 주요 경력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WWWA 세계 태그팀 챔피언십 (통산 6회)
-WWWA 올 퍼시픽 챔피언십 (통산 3회)
-IWA 세계 여자 챔피언십 (통산 1회)
-UWA 세계 여자 태그 챔피언십 (통산 1회)
-전일본 싱글 챔피언십 (통산 1회)
-전일본 태그 챔피언십 (통산 3회)
-태그 리그 더 베스트 우승 (1994년)

DDT (Dramatic Dream Team)
-아이언맨 헤비메탈급 챔피언십 (통산 1회)

LLPW (Ladies Legend Pro-Wrestling)
-LLPW 인정 6인 태그 챔피언십 (통산 1회)
-LLPW 인정 태그 챔피언십 (통산 1회)

알시온
-트윈 스타 오브 알시온 챔피언십 (통산 1회)
[1] 시기에 따라 체중이 조금 변해왔다. 데뷔 당시에는 51kg의 슬랜더형 체형이었으나, 90년대 초중반에는 63kg까지 증량시켰다. 90년대 후반부터는 58kg을 유지 중이다.[2] 데뷔 무렵부터 주기적으로 누드집을 발표했다. 40대에도 계속 발표했다.[3] 전녀에서 ‘레드 벨트로’로 불리었던 WWWA 세계 싱글 챔피언 타이틀에 이은 서열 2위 타이틀로 ‘화이트 벨트’로 불리웠다.[4] 성만 같을 뿐, 친척은 아니다.[5] 대부분의 프로레슬러들이 커리어가 지남에 따라 체중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례적인 케이스. 당시 토요타 마나미가 비대해지기 시작했던 것과 정확히 반대. 본인에 맞는 체형과 레슬링 스타일을 터득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다.[6] 물론 이 당시 단체에 주력 선수들이 이탈하고, 알시온 등 신생 단체가 창궐하여 전녀이 유례없는 스타 기근에 빠졌던 시기였다.[7] 재무 상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으며, 후지TV의 중계 방송 계약도 끊어졌던 상황. 코믹스러운 기믹의 경기를 운영하기 시작하여 선수와 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8] 상대의 경기복을 벗기어 브래지어팬티만 남겨두면 승리하는 경기로 2000년대 초반 WWE여성 프로레슬링 정책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지금 WWE 세태에서는 보기 어려운 경기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