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12-18 10:45:45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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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日本女子プロレ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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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흥업 주식회사 (全日本女子プロレス興業株式会社)
약칭 전녀 (全女) / AJW / AJWPW
설립일 1968년 6월 4일
해산일 2005년 3월 31일
분류 주식회사
사업 내용 프로레슬링 흥행 관련 기획 운영
대표자 대표이사 회장 마츠나가 타카시 (松永高司)
대표이사 사장 마츠나가 쿠니마츠 (松永国松)

1. 개요2. 역사
2.1. 1960년대2.2. 1970년대 : 여명기2.3. 1980년대 : 전성기의 시작2.4. 1990년대 초반 : 단체 대항전의 시대2.5. 1990년대 중후반 : 시작된 몰락2.6. 2000년대
3. 챔피언십
3.1. WWWA3.2.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협회3.3. AGWA 3.4. UWA3.5. IWA
4. 리그
4.1. 재팬 그랑프리4.2. 태그 리그 더 베스트4.3. GRAND NORTH 6인 태그 리그
5. 명예의 전당
5.1. 역대 헌액자
6. 주요 소속 선수7. 여담8. 관련 문서

1. 개요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의 공식 테마곡.[1]

지금은 없어진 일본의 전설적인 여자 프로레슬링 단체. 줄여서 전녀(全女)라고도 부른다. 영어로는 AJW로 표기한다.

1968년 6월 4일에 도쿄 시나가와 공회당에서 정식으로 출범했다. 텔레비전 중계는 후지 TV와 FIGHTING TV 사무라이에서 맡았으며, 2005년 4월 17일 고라쿠엔 홀에서 마지막 흥행을 개최하고 해산했다.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협회'[2] 경영진과 마찰로 인해를 협회에서 퇴사한 마츠나가 타카시(松永高司)와 그를 따르던 선수들에 의해 설립되었고, 초대 회장으로는 대일본 잇세이회 소속의 이치마네 히가시이치(万年東一)가 취임했다. 출범 초기에는 폭력조직과 관련이 있다는 흑색선전 때문에 흥행을 위한 시설 차용에 어려움을 겪었고, 때문에 야외에 링을 설치하고 지방 순회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스포츠 신문사인 '데일리 스포츠'[3]는 전녀를 지원해주었고, 이는 곧 폭력조직과는 관계가 없다는 일종의 신원 보증이 되었다. 이후 1990년대까지 전녀의 주요 흥행에는 심지어 주관하는 방송사가 다르다고 할지라도데일리 스포츠의 기자가 해설자로 파견되었다.오오 은혜갚은 전녀 또한 전녀 출범 당시 데일리 스포츠의 편집 국장을 지냈던 우에다 신지(植田信治)는 훗날 전녀의 챔피언쉽 타이틀 운영 기관인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협회'의 커미셔너로 취임했다.

흥행은 대도시의 대회장, 지방의 현립 체육관이나 시민 회관, 대형 마트의 주차장(...) 등 다양한 장소에서 열렸으며, 최전성기에는 연간 300회가 넘는 흥행을 치르기도 했다. 이는 일본의 모든 프로레슬링 단체를 통틀어 최다 흥행 기록이었다.

2. 역사

2.1. 1960년대

1968년 6월 4일. 정식 출범일. 창단 멤버는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협회’에서 이탈한 11명의 선수들과 4명의 왜소증 레슬러들로 구성되었다.

2.2. 1970년대 : 여명기

1970년 10월 15일. 쿄 아이코(京愛子)가 Marie Vagnone을 꺾고 일본인 최초로 WWWA 월드 챔피언에 등극하였다. 이후 해당 타이틀은 전녀가 소유권을 차지하며 전녀를 상징하는 벨트로 거듭나게 된다. 1년 후엔 WWWA 월드 태그 팀 챔피언쉽도 전녀 선수들이 획득하며 소유권을 가져오게 된다.

1976년 재키 사토(ジャッキー佐藤)와 마키 우에다(マキ上田)가 뷰티 페어라는 태그 팀을 결성하고 WWWA 월드 태그 팀 챔피언에 등극한다. 같은 해에 둘은 ‘방황하는 청춘(かけめぐる青春)’이라는 곡으로 가수로 데뷔하였는데, 80만장이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하고 인기를 누렸다. 특히 여고생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붐을 일으켰으며, 이에 따라 어린 여성 관중들이 늘어나는 계기가 된다.

1979년 10월엔 미국의 여자 프로레슬러들과 리그 대항전을 개최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의 여자 프로레슬러들과 일본의 여자 프로레슬러들의 교류가 잦았다. WWE에서 활동했던 선수들 중 일본에서 경기를 치렀던 선수들로는 페뷸러스 물라, 웬디 릭터, 셰리 마텔, 메두사 머첼리, 레일라니 카이, 벨벳 매킨타이어, 몬스터 리퍼 등 꽤 많다. 반대로 전녀의 선수들이 WWE에서 뛰었던 케이스로는 대표적으로 점핑 밤 엔젤스와 불 나카노가 있으며, 90년대 초반WWE의 전녀 카피하기 시즌에 상당수의 전녀 선수들이 WWE에서 경기를 가졌었다.

2.3. 1980년대 : 전성기의 시작

나가요 치구사(長与千種)와 라이오네스 아스카(ライオネス飛鳥)가 태그 팀 크러쉬 갤즈(Crush Gals) 결성했다. 크러쉬 갤즈는 나가요 치구사의 미소년스러운 외모 덕분에 여학생들 사이에서 엄청난 붐을 일으켰다.[4] 앞서 70년대의 뷰티 페어와 비슷한 케이스로 보이지만, 뷰티 페어가 노래로 먼저 인기를 얻은 것과 달리 크래쉬 갤즈는 경기하는 모습으로 먼저 인기를 끈 뒤에 음반을 발표했다.[5]

1985년. ‘재팬 그랑프리’와 ‘태그 리그 더 베스트’가 개최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 참조.

1986년 4월 5일. 여성들은 경기를 치른 전례가 없던 ‘양국 국기관’에서 처음으로 경기를 가진 여성들이 되었다. 당일 메인이벤트는 데빌 마사미와 라이오네스 아스카의 WWWA 월드 챔피언쉽 매치. 같은 해에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단체인 재팬 여자 프로레슬링(JWP)이 출범했다.[6]

1987년 10월. ‘일본 레슬링 협회’와 함께 ‘제1회 전일본 레슬링 선수권 대회’ 합동 개최했다. 본 대회는 아마추어 레슬링 대회였으나 전녀의 훈련생들을 대회에 내보내기도 했다.

1989년. 크래쉬 갤즈가 해체하고 불 나카노, 아쟈 콩 등 악역 레슬러들이 활약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악역 선수들은 그야말로 악역답게 마냥 미움받는 존재였는데, 불 나카노가 단체의 중심으로 올라선 후 악역이라도 경기를 잘 하면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남자 팬들이 늘어나게 된 시점이기도 하다.

2.4. 1990년대 초반 : 단체 대항전의 시대

90년대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계에서 일어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으로는 단체 대항전[7]이 있다.

1992년 7월. FMW 소속의 샤크 츠치야(シャーク土屋)와 크러셔 마에도마리(クラッシャー前泊)가 전녀 흥행에 나타나서 도전장을 내민다. 훗날 벌어질 단체 대항전의 서막.

같은 해 9월. 전녀의 불 나카노와 호쿠토 아키라가 FMW의 흥행에 참가하여 쿠도 메구미(工藤めぐみ)와 컴뱃 토요다(コンバット豊田) 팀으로부터 승리한다. 이를 계기로 전녀는 각 단체에 교류를 요청하게 된다.

1993년 4월 2일.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전녀, JWP, FMW, LLPW[8] 선수들이 출전한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창립 25주년 기념 꿈의 올스타전 Dreamslam I[9]이 개최되었다. 결과는 대성공. 경기들이 길어지는 바람에 메인 이벤트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시간이 자정을 넘어 막차가 끊기는 사태가 발생했다. 허나 경기에 빠진 관중들이 흥행을 끝까지 관람한 뒤 경기장 근처 전철역에서 첫 차를 기다리며 밤을 새기도 하는 등 전설적인 흥행 기록을 남겼다. 그로부터 바로 9일 후에 치러진 Dreamslam II 역시 성공적인 흥행이 되었다.

2.5. 1990년대 중후반 : 시작된 몰락

1994년 11월 30일. 여자 프로레슬링 단체로는 처음으로 도쿄돔에서 흥행을 개최했다. Big Egg Wrestling Universe이라는 이름의 이 흥행에선 불 나카노가 얼룬드라 블레이즈를 꺾고 WWE 위민스 챔피언십을 획득하기도. 허나 경기장 좌석의 절반 이상이 공석이었고, 작년과는 달리 막차 시간에 맞춰 경기장을 떠나는 관중들이 많았다. 이는 여자 프로레슬링의 붐이 한풀 꺾였음을 입증하는 사례였다.

1995년 8월 30일. JWP 소속의 다이너마이트 칸사이(ダイナマイト・関西)[10]가 아쟈 콩을 꺾고 WWWA 월드 챔피언쉽을 획득하는데 성공. WWWA 월드 챔피언쉽이 타단체에 유출된 최초의 사례로 남았다.

1996년 5월 18일. 제1회 주니어 올스타전이 개최되었다. 전녀, JWP, LLPW, GAEA, Jd', FMW, IWA 재팬의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GAEA 소속의 사토무라 메이코(里村明衣子)가 MVP가 되었다. 93년 단체 대항전 시절보다 더 많은 단체들이 참가했지만, 듣보잡 신인 선수들의 대회라는 점과 여자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식었다는 것이 이유가 되어 크게 이슈화되지 못했다.

1997년 8월. 전녀의 최고 스타인 아쟈 콩이 일본 무도관에서의 경기를 끝으로 프리랜서로 활동하겠다고 선언했다. 점점 망할 조짐이 보이는 전녀 이 무렵부터 이노우에 교코(井上京子)를 비롯하여 홍보 프로듀서, 프로레슬링 관계자들은 새로운 여자 프로레슬링 단체인 ‘Arsion’과 ‘NEO 여자 프로레슬링’의 출범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달 사이에 무려 14명의 선수들이 전녀를 퇴사했다. 퇴사한 선수들은 아쟈 콩을 따라 Arsion으로 가거나, 이노우에 교코를 따라 NEO 여자 프로레슬링으로 갔다.

그 해 10월. 어음 부도에 의한 은행거래 정지 처분을 받는다. 동시에 사옥 건물의 소유권은 채권자에게로 이동했지만 차용하고 계속 사용했으며, 후지 TV의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중계가 종영되고 후지 TV에서의 중계권도 일시 소멸되었다.

2.6. 2000년대

2002년 3월 30일에 이르러 지상파의 전녀 중계방송이 모두 종료되었다.

2005년 3월 29일. 요코하마 가나자와 산업진흥센터 체육관에서 전녀가 주최한 마지막 흥행이 열렸다.

2005년 4월 17일. ‘퍼스트 온 스테이지’의 주최로 열린 고라쿠엔 홀에서의 흥행을 끝으로 결국 해산하였다. 이 마지막 흥행은 2,100여명의 관중을 동원했으며, 부상으로 결장한 선수들을 제외한 모든 선수가 경기에 출전하고 은퇴한 선수들도 대거 방문해 자리를 빛냈다.

3. 챔피언십

전녀에는 참으로 다양한 타이틀이 존재했으나 메인급 타이틀은 WWWA 월드 챔피언쉽, WWWA 올 퍼시픽 챔피언쉽, 전일본 싱글 챔피언쉽 3개 정도다.

3.1. WWWA

WWWA[11]가 인증하고 전녀에서 관리하는 챔피언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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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WWA 월드 챔피언쉽 -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최강의 벨트. 통칭 ‘붉은 벨트’로 통한다. 미국에선 WW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이라고도 불린다. 1937년부터 내려오는 오랜 역사의 타이틀인데, 초대 챔피언이 미국 여자 프로레슬링의 전설인 밀드리드 버크[12]다(!!!)
  • WWWA 올 퍼시픽 챔피언쉽 - WWWA 월드 챔피언쉽 바로 다음 위치에 해당하는 벨트.콩라인 이쪽은 하얘서 ‘흰 벨트’로 불린다. 1979년 전녀의 첫 해외원정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벨트로, 처음엔 하와이 퍼시픽 챔피언쉽이라는 명칭이었다.
  • WWWA 월드 태그 팀 챔피언쉽 - 전녀에 존재하는 태그 팀 챔피언쉽 중엔 최고 권위의 타이틀.
  • WWWA 월드 슈퍼 라이트 웨이트 챔피언쉽 - 초대 챔피언인 챠파리타 ASARI가 이 타이틀을 장기집권한 바람에 타이틀 자체의 의미는 퇴색되고 챠파리타 ASARI의 상징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 WWWA 월드 마샬 아츠 챔피언쉽 - 격투기 챔피언쉽이라고는 하지만 챔피언쉽 경기의 룰은 사실상 킥복싱에 가까웠다. 때문에 프로레슬러가 아닌 복싱 선수들도 타이틀에 도전하곤 했다.
  • WWWA 월드 미지트 챔피언쉽 - 왜소증 남성들의 챔피언쉽.[13]
  • WWWA 월드 미지트 태그 팀 챔피언쉽 - 왜소증 남성들의 챔피언쉽.

3.2.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협회

전녀가 스스로 인증하는 챔피언쉽.
  • 전일본 싱글 챔피언쉽 - 붉은 벨트와 흰 벨트에 이어 서열 3위에 해당하는 챔피언쉽. 신인 선수들이 정상으로 오르기 위해 거치는 타이틀로 통한다.
  • 전일본 태그 팀 챔피언쉽
  • 전일본 주니어 챔피언쉽 - 당초 20세 이하의 신인 선수들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이후 20세를 넘긴 신인 선수들이 많아짐에 따라 데뷔 2년 이하의 선수들을 대상으로 하게 되었다.
  • 신인왕 결정 토너먼트 - 기본은 토너먼트 형식으로 그 해에 데뷔한 신인 선수들을 대상으로 열린다. 신인 선수가 적은 해에는 데뷔 2년차 선수들이 참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신인왕이 된 선수에게는 벨트 대신 메달과 트로피가 수여된다.

3.3. AGWA

미국 여자 레슬링 협회(American Girls Wrestling Association) 인증. 전녀의 여명기에 등장했던 챔피언쉽.
  • AGWA 월드 걸스 챔피언쉽
  • AGWA 월드 걸스 태그 팀 챔피언쉽
  • AGWA US 걸스 챔피언쉽

3.4. UWA

멕시코의 UWA(Universal Wrestling Association)가 인증하는 챔피언쉽. UWA에 여자 선수가 부족했던 관계로 챔피언쉽은 주로 전녀에서 열렸다.
  • UWA 월드 위민스 챔피언쉽
  • UWA 월드 위민스 태그 팀 챔피언쉽

3.5. IWA

  • IWA 월드 위민스 챔피언쉽 - 원래는 캐나다에 있는 단체의 타이틀이지만, 나가요 치구 가 해외 원정에 갔을 때 획득하여 일본으로 가지고 왔다. 해당 단체는 소멸했지만 이 타이틀은 살아남아 일본에 정착했다.

4. 리그

4.1. 재팬 그랑프리

Japan Grand Prix. 1985년부터 2004년까지 해마다 치러진 싱글 매치 리그. 우승자에겐 WWWA 월드 챔피언쉽 넘버 원 컨텐더 자격이 주어졌다. 수많은 명경기들이 바로 이 재팬 그랑프리에서 탄생했다. 토요타 마나미가 최다 우승자(총 4회)이며, 2003년엔 WWE의 ‘카르마’로 널리 알려진 어메이징 콩이 참가해 우승한 적이 있다.

4.2. 태그 리그 더 베스트

Tag League The Best. 재팬 그랑프리와 달리 이쪽은 태그 팀 매치 리그. 1985년부터 2003년까지 해마다 치러졌다. 전녀의 해산과 함께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가 2011년에 JWP가 동명의 대회를 개최하며 부활시켰다.

4.3. GRAND NORTH 6인 태그 리그

1995년부터 딱 세 차례 열리고 끝난 6인 태그 팀 리그.

5. 명예의 전당

1998년 11월 29일.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개최된 전녀 출범 30주년 기념 흥행에서 '여자 프로레슬링 명예의 전당'이 창설되었다. 전녀 선수들 외에도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의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 역시 헌액되었다.

5.1. 역대 헌액자

  • 나가요 치구사
  • 덤프 마츠모토
  • 데빌 마사미
  • 라이오네스 아스카
  • 마키 우에다
  • 마하 후미아케 - 역대 최연소 WWWA 월드 챔피언.
  • 몬스터 리퍼 - 유일한 외국인 헌액자.
  • 불 나카노 - WWWA 월드 챔피언쉽 단일 기록 최장기간 보유자.
  • 아쟈 콩
  • 아카기 마리코
  • 오모리 유카리
  • 오바타 치요
  • 유 미유키
  • 이카리 사다코 - 일본 최초의 여자 프로레슬러.
  • 이케시타 유미
  • 재규어 요코타 - WWWA 월드 챔피언쉽 통산 기록 최장기간 보유자.
  • 재키 사토
  • 점보 미야모토 - WWWA 월드 챔피언쉽 최다 보유자.
  • 쿄 아이코 - 일본인 최초의 WWWA 월드 챔피언.
  • 토모에 유키코 - 일본인 최초의 여자 프로레슬링 세계 챔피언.
  • 플럼 마리코
  • 호시노 미요코
  • 호쿠토 아키라
  • 万年東一 - 초대 회장.
  • 우에다 신지 - 커미셔너
  • 志生野温夫 - 실황 아나운서

6. 주요 소속 선수

소속되었던 주요 선수들은 전녀 데뷔 순서대로 나열하였다.

  • 토모에 유키코 (巴ゆき子) - 일본인 최초의 여자 프로레슬링 세계 챔피언.
  • 쿄 아이코 (京愛子) - 일본인 최초의 WWWA 월드 챔피언. 전녀에서 최초로 스틸 케이지 매치를 치른 선수이다.
  • 점보 미야모토 (ジャンボ宮本) - WWWA 월드 챔피언쉽 최다 보유자 (통산 5회).
  • 마하 후미아케 (マッハ文朱) - 아이돌 레슬러의 시초. 역대 최연소 WWWA 월드 챔피언 (당시 16세).
  • 마키 우에다 (マキ上田) - ‘뷰티 페어’의 멤버. 재키 사토와의 ‘패자 은퇴 매치’에서 패배하고 은퇴했다.
  • 재키 사토 (ジャッキー佐藤) - ‘뷰티 페어’의 멤버. 위암으로 인해 1999년에 사망.
  • 이케시타 유미 (池下ユミ) - 뷰티 페어의 라이벌 ‘블랙 군단’의 리더. 이케시타 유미의 은퇴 후 ‘블랙 군단’은 데빌 마사미의 ‘블랙 데빌 군단’을 거쳐 덤프 마츠모토의 ‘극악동맹’으로 계승된다.
  • 낸시 쿠미 (ナンシー久美)
  • 재규어 요코타 (ジャガー横田) - WWWA 월드 챔피언쉽 통산 최장기간 보유자 (2회, 4년 9개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빌 골드버그의 피니쉬 무브인 잭 해머를 개발한 사람이다.
  • 미미 하기와라 (ミミ萩原) - 원조 아이돌 레슬러. 은퇴 후 연예계에 진출하여 현재는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이다.
  • 나가요 치구사 (長与千種) - 크러쉬 갤즈‘의 멤버.
  • 라이오네스 아스카 (ライオネス飛鳥) - ‘크러쉬 갤즈’의 멤버.
  • 오모리 유카리 (大森ゆかり) - 일명 여자 역도산. 은퇴 후 재팬 여자 프로레슬링의 코치를 역임했다.
  • 타테노 노리요 (立野記代) - ‘점핑 밤 엔젤스’의 멤버. WWF 위민스 태그 팀 챔피언 경력이 있다. 레슬매니아 4에 출전하였다.
  • 야마자키 이츠키 (山崎五紀) - ‘점핑 밤 엔젤스’의 멤버. WWF 위민스 태그 팀 챔피언 경력이 있다. 레슬매니아 4에 출전하였다.
  • 미나미 스즈카 (みなみ鈴香) - 파워밤의 달인. 호쿠토 아키라와 Marine Wolves라는 팀으로 활동했다.
  • 홋타 유미코 (堀田祐美子) - 데뷔 전에 배운 가라테를 전면에 내세운 킥커형 레슬러. 경기 중 선보이는 기술의 상당수가 킥이며, 비슷한 스타일인 JWP 소속 다이너마이트 칸사이와의 싱글 매치는 그야말로 킥이 난무하는 반쯤 격투기스런 경기였다.
  • 바이슨 키무라 (バイソン木村) - 불 나카노의 옥문당 초기 멤버이자 아쟈 콩의 정글 잭 파트너. 손날을 이용한 케사기리 챱이 특기다.
  • 쿠도 메구미 (工藤めぐみ) -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못하고 일찌감치 FMW로 이적하여 FMW 최고의 여자 선수로 활약한다. 별명은 사도 공주.
  • 컴뱃 토요다 (コンバット豊田) - 쿠도 메구미와 함께 FMW로 이적하여 FMW 최고의 악역으로 거듭난 선수. 쿠도 메구미와는 동기이자 라이벌 관계로, 메구미와의 데쓰 매치에서 지고 은퇴했다.
  • 아마다 레이븐 (天田麗文) - 전일본 싱글 챔피언쉽, 전일본 주니어 챔피언쉽, 전일본 태그 팀 챔피언쉽을 획득하며 역사상 유일한 전일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으나 이후의 활약은 딱히 없다. 1990년에 컴뱃 토요다, 쿠도 메구미와 함께 FMW로 이적했다.
  • 야마다 토시요 (山田敏代) - 토요타 마나미의 동기이자 라이벌인 킥커형 레슬러. 2015년 현재는 불 나카노의 식당 일을 돕고 있다.
  • 미타 에츠코 (三田英津子) - 174cm라는 우월한 신체조건을 가졌지만 이렇다 할 빛을 못 본 선수. 데쓰 밸리 드라이버의 개발자로 유명. 호쿠토 아키라, 시모다 미마와 함께 Las Cachorras Orientales라는 태그 팀으로 활동했다.
  • 시모다 미마 (下田美馬) - 미타 에츠코의 Las Cachorras Orientales 파트너.
  • 이노우에 교코 (井上京子) - 흡사 헐크 호건얼티밋 워리어의 복장을 섞어놓은듯한 경기복을 착용한다. 착하고 웃음기 많은 선역 선수로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다만 그로인해 강력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
  • 이노우에 타카코 (井上貴子) - 아이돌 레슬러로 인기를 누렸다. 데뷔하고 한동안 평범한 경기력과 부족한 카리스마로 인해 동기들에 비해 빛을 보지 못했으나 뒤늦게나마 떳다.하지만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체 해산 WWE 트라이아웃 매치를 치른 전적이 있다. 재즈를 꺾으며 좋은 인상을 남겼으나 브라 & 팬티즈 매치같은 이벤트성 경기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계약을 거절했다고 알려져 있다.
  • 요시다 마리코 (吉田万里子) - 에어 레이드 크래쉬의 개발자. 부상으로 인해 약 2년 가량의 시간을 날리는 바람에 동기들에 비해 늦게 떠올랐다.
  • 이토 카오루 (伊藤薫) - 데뷔 초엔 피터 팬을 연상케하는 경기복을 입고 활동했다. 신인 시절엔 그저 그런 흔한 선수들 중 한명이었으나, 점차 체중을 늘리고 기존의 선수들이 많이 빠져나간 뒤강력한 메인 선수로 거듭났다. 호랑이 없는 굴에서 여우가 왕 노릇
  • 챠파리타 ASARI (チャパリータASARI) - 주니어 헤비급 디비전에서 대활약한 선수. 전녀 오디션 당시 너무 작은 키(152cm) 때문에 탈락할 뻔 했으나, 학창시절 체조선수로 활동했던 경험으로 개발한 '스카이 트위스터 프레스'를 선보이며 합격했다.
  • 레지 베넷 (Reggie Bennett) - 미국의 프로레슬러. 일본에서 찍은 병맛 CF의 인기 덕분에 여러 일본 프로레슬링 단체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바 있으며, 전녀에서는 94년부터 활동하다가 경영난의 영향으로 해고되었다.

7. 여담

  • 1986년에 ‘재팬 여자 프로레슬링’(ジャパン女子プロレス)이 출범하기 전까지는 일본의 유일한 여자 프로레슬링 단체였기 때문에 흥행 포스터에도 단순히 '여자 프로레슬링'이라고 표기했으며, 직원들도 사무실에 걸려온 전화를 받을 때 "네, 여자 프로레슬링입니다."라고 응대했다고 한다.
  • 특이사항으로는, 25세가 넘거나 데뷔 10년차가 되는 선수는 은퇴를 해야하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했다.[14] 그 이유는 신인 선수들로의 세대 교체가 원활해지며, 오랫 동안 프로레슬러로만 활동한 선수들이 취업이나 결혼 등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많은 선수들이 그 룰에 따랐지만, 프로레슬링을 계속 하고 싶어했던 선수들은 전녀에서만 은퇴하고 다른 단체로 넘어갔다.[15] 이 룰은 인기 절정의 스타였던 불 나카노가 25세를 넘기고도 계속 활동하게 되면서 사라졌다.정말 잘 됐다
  • 마이너한듯 하면서도 은근히 팬이 많은 스포츠로, 만화가 중에도 여자 프로레슬링을 소재로 삼은 이들이 제법 있다. 특히 볼만한 작품으로 피아노의 숲, 하나다 소년사 등을 그린 이시키 마코토의 "허슬"[16]이 있으며, 이시카와 유고 또한 그리는 작품마다 여자 프로레슬링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 경향이 있다(대표적으로 "요이코"와 "무룡").

8. 관련 문서



[1] 신인 선수들의 등장 음악으로도 사용되었다.[2] 60년대 일본에서 여자 프로레슬러들을 관리하던 협회. 단체라고 분류하긴 애매하다.[3] 한신 타이거즈의 사실상의 당기관지로 유명하다.[4] 당시 관중의 80%는 여성이었다. 일본에서 여자 프로레슬링이 남성 팬들을 모으기 시작한 건 90년대에 이르러서이다.[5] 일본에서 여자 프로레슬러들은 거의 반쯤 연예인으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이들처럼 음반을 내는 등 연예계 활동에 발을 걸치는 경우가 많았다. 성공한 케이스가 드물 뿐[6] 큐티 스즈키, 다이너마이트 칸사이, 오자키 마유미 등의 쟁쟁한 선수들이 간판 스타로 활동했던 단체다.[7] 전녀, JWP, FMW, LLPW의 소속 선수들이 한 흥행에 모여 대결을 펼쳤던 일. 표면적으로는 2001년 WWE의 PPV 인베이전과 비슷하다.[8] Lady's Legend Pro-Wrestling의 약자. 1992년에 재팬 여자 프로레슬링이 해산하는 바람에 만들어진 여자 프로레슬링 단체. 현재는 LLPW-X라는 아주 작은 규모의 단체로 전락했다.[9] 호쿠토 아키라가 칸도리 시노부를 꺾고 ‘데인저러스 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바로 그 흥행.[10] 재일교포 2세 출신으로 한국 이름은 '이강자'. 스플래쉬 마운틴(싯아웃 크러시픽스 파워밤)의 개발자이며 킥커 스타일 레슬러이다.[11] World Women 's Wrestling Association의 약자. 세계 여자 레슬링 협회.[12] 전세계 여자 프로레슬링의 역사에서 탄생한 최초의 인기 스타. 페뷸러스 물라의 스승이기도 하다.[13] 여성 단체인데 남성들의 챔피언쉽이 있는 이유는 한동안 왜소증 남자 레슬러들도 함꼐 활동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14] 보통 중학생 나이 정도에 데뷔하는 경우가 많아서 데뷔 10년차라고 하더라도 20대인 경우가 많았다.[15] 대표적인 예가 데빌 마사미. 데뷔 9년차가 되던 해에 프리랜서로 전향해서 활동하다가 JWP로 들어갔다.[16] 소도시의 게이샤가 프로레슬러로 데뷔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