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8 00:22:17

윌리엄 캘리

William Laws Calley Jr.
(1943년 6월 8일 ~ 2024년 4월 28일, 향년 8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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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정복 차림의 캘리 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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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캘리.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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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군인. 베트남 전쟁 당시 미라이 학살의 주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범이다.[1]

2. 생애

1943년 6월 8일 태어났다.

본래 미군 병으로 입대했는데 병 기본 훈련 성적이 우수하다는 이유만으로 장교로 차출되어 GTG로 임관했다. 하지만 병사로서 우수한 것과 장교로서의 능력은 별개였는데 소위로 임관한 후 장교로서는 대단히 무능했다.

지능도 매우 낮고 우둔해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쉽게 입학할 수 있는 커뮤니티 칼리지에서조차 C학점을 단 한 번 받았을 뿐 F학점을 밥 대신, D학점은 간식처럼 먹으며 낙제할 정도로 엄청난 학습부진아였고 군에 몸 담은 후에는 간부임에도 전쟁범죄로 인해 강제전역하는 순간까지 독도법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성격이 선량한 것도 아니라서 부하들에게 계속 함부로 대한 탓에 그의 소대원들은 언제나 상관 살해를 저지를 준비를 할 정도였다.

이 사람의 무능함과 후술할 사건으로 인해 병으로서의 복무기간 3년 동안의 복무성적으로 GTG를 선발하도록 관련 규정이 변경되었다.

2.1. 미라이 학살

1968년 3월 16일, 미라이 학살로 22명의 비무장 남베트남 민간인을 살해한 혐의로 1971년 군법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유죄 판결을 받은 지 3일 만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가택 연금을 위해 석방되었다. 이후 미국 제5순회항소법원에서 재심을 명령했지만 그 판결은 연방대법원에서 뒤집혔다. 그는 살인 혐의로 3년간 가택연금을 선고받았는데 이 가택이 웬만한 미국 중산층 저택 이상의 수준이었기 때문에 여론은 또 다시 공분에 휩싸였다.

2.2. 출소 후

1974년 가택연금이 해제된 후 1976년 페니 빅이라는 보석상 집의 딸과 결혼한 후 장인의 가게에서 보석상 일을 했으며 아들 하나를 두었으나 2005년 이혼했다.

2009년에는 자신이 저지른 학살에 대해 사죄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며 플로리다 게인즈빌에서 평화로운 여생을 보냈다.

2024년 4월 28일, 향년 80세로 사망했다. 학살의 죗값과 달리 무려 50년 동안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 편히 살다가 간 셈이다.[2] 사망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으며, 사망 사실도 사망 3개월 후인 7월 31일에야 공개되었다. #


[1] 학살 당시 캘리 중위가 직접 죽인 사람만 100명이 넘었다. 덤으로 캘리는 2살짜리 소년을 직접 죽이기도 했다.[2] 하다못해 처벌할 수 있던 기회를 날려먹은 채 반 세기 이상의 부귀영화를 누린 하판락조차 당시 고국이 신흥독립국에 이념분쟁과 전쟁에 시달렸던, 매우 혼란스러운 나라였기에 처벌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변명이라도 가능하고, 딘코 사키치&나다 사키치 부부 역시 아르헨티나로 도피해서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