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8 20:53:24

와인빌 양계장 연쇄 살인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월터 콜린스의 실종3. 와인빌 양계장의 참극4. 재판과 청문회5. 사건 이후

1. 개요

192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일대에서 소년들이 납치, 감금, 살해된 사건. 고든 노스콧 사건이라고도 불리며 피해자의 대다수가 와인빌 양계장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 명칭이 사용되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다뤘다. 영상

2. 월터 콜린스의 실종

사건의 발단은 1928년 3월 10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10살난 아들 월터 콜린스과 함께 살던 싱글맘 크리스틴 콜린스 부인은 자신의 아들이 사라지자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고, 경찰은 월터 콜린스를 찾아나섰다.

그러나 다섯 달이 지나도록 월터의 행방은 묘연했고, LA 시민들은 경찰의 무능함을 질타했다. 그렇지 않아도 부패의 극을 달리던 LA 경찰이라 비난을 잠재울 필요가 있던 가운데, 5개월여 만에 일리노이 주에서 월터를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크리스틴 부인은 돌아온 아들이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며 경찰에게 항의했다. 사실 월터는 9살이었는데 찾아낸 아이는 누가 봐도 9살짜리로는 보이지가 않았다. 사건을 담당했던 J.J 존스 반장은 증거를 가져오라고 했고, 크리스틴 부인은 3주 후 월터의 치과기록을 들고 갔지만 경찰은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며, 귀찮게 한다라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켜버렸다.[1]

사실 존스 반장 본인도 찾아낸 아이가 진짜가 아닐 것 같다는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그것을 입 밖에는 내지 않고 사건을 서둘러 덮어버리려고 했다고 한다. 크리스틴 부인이 정신병원에 있던 사이에 존스 반장은 찾아낸 아이를 심문했고 결국 그 아이는 자신은 월터 콜린스가 아니며 일리노이주 로와에서 온 아서 허친스 주니어라고 자백했다. 후에 밝힌 바로는 당시 계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영화배우들이 있는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당시 유명한 카우보이 역을 맡은 배우인 톰 믹스를 만나고 싶어서 집을 벗어나고자 자기가 실종된 윌터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라는 어이없는 경위였다.

한편 크리스틴 부인은 라디오쇼를 통해 경찰의 비리를 폭로하던 목사 구스타프 블리글레브와, 그녀의 정신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탄원한 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정신병원에서 겨우 풀려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3. 와인빌 양계장의 참극

1928년 9월, 자신의 남동생을 보기 위해 캐나다에서 캘리포니아 와인빌을 방문한 샌퍼드의 누나 크리스틴의[2] 폭로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게 된다. 누나가 양계장을 방문하자 샌퍼드는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일을 이야기했고, 크리스틴은 그 사실을 알고 경찰에 신고하게 된다. LA 경찰은 캘리포니아주 와인빌에 있는 고든 스튜어트 노스콧(Gordon Stewart Northcott, 1906~1930)의 양계장에 찾아가 그곳에서 노스콧의 조카 샌퍼드 클라크(Sanford Clark, 1913~1991)가 학대를 당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이민국 직원과 함께 임의동행 방식으로 양계장에서 데리고 나왔다.

샌퍼드는 경찰과 미국 이민국에게 충격적인 증언을 하게 되는데, 자신의 삼촌인 고든 노스콧이 LA와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실종된 소년들을 납치한 주범이라고 말한 것이다. 샌퍼드의 증언에 의하면, 삼촌 고든 노스콧이 LA와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여러명의 어린 소년들을 납치해 감금하고 그 소년들을 성적으로 학대했으며, 강간과 고문을 한 뒤, 도끼산탄총으로 살해하고 암매장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살해된 소년들의 시체는 사막에 파묻혔고, 혈흔 등의 흔적을 지우려고 생석회를 뿌렸다고 한다.[3] 샌퍼드의 증언에 따르면 피살자 수는 최소 20명이라 증언하기도 했다.[4] 또한 그의 누나이자 그의 어머니인 세라 루이스 노스콧이 이를 적극 도왔다고 하였다. 그녀는 캐나다에서 아버지와 근친상간을 하여 동생이자 아들인 고든 노스콧을 낳았는데 그 이유로 인해 고든 노스콧은 성적 학대와 처벌을 받으면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 성향 때문인지 조카인 샌퍼드를 불러들여서 성적 학대를 했다고 한다.

경찰은 노스콧의 농장과 양계장을 수색해, 시신의 일부분과 소년들을 살해한 흉기로 보이는 혈흔이 묻은 도끼, 그리고 소년들의 소지품들을 찾아냈다. 다만 많은 시신을 이미 은폐하거나 불태웠기에 일부만 발견했다. 한편 경찰이 자신들의 소행을 추적하자 고든은 세라 루이스 노스콧과 함께 고향인 캐나다로 도망쳤지만, 결국 캐나다 경찰에 붙잡혀 미국으로 인계되었고, 납치, 감금, 살인 혐의로 구속되었다.

4. 재판과 청문회

한편 크리스틴 콜린스는 J.J 존스 반장을 고소했으며, LA 경찰의 총제적 문제를 조사하는 청문회가 개최되었다. 동시에 와인빌 양계장에서의 살인 사건에 대한 재판도 열렸다.

살인 사건의 재판에서 고든은 자신이 9건의 살인만 인정했지만, 재판 결과 멕시코 국적의 소년 엘빈 고데야, 루이스와 넬슨 윈즐로 형제, 세 명을 납치, 감금, 강간, 살해한 혐의가 인정되어 유죄가 선고되었다.[5] 당시 배심원들의 증언에 의하면, 고든과 세라 모자는 그야말로 인간 말종의 극치를 보여주는 행동들을 했다고 진술했는데, 피해자들을 납치하고 강간, 고문, 살해 뒤 사지절단 등의 끔찍한 이야기들이었다고 한다. 또한 대체로 범행을 주도한 건 고든이었다고.

1929년 2월 13일, 고든 스튜어트 노스콧에게는 사형, 세라 루이스 노스콧에게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으며, 샌퍼드 클라크는 그 역시 살인에 가담한[6] 공범이었지만 모든 것이 삼촌의 강요로 이루어진 일이며 살인사건을 경찰에게 알린 것을 참작해 5년형, 그것도 청소년 교화 시설에 수용되는 관대한 판결이 선고되었고, 얼마 안 있어 모범수로 분류되어 23개월 형으로 감형되었다.

한편 청문회는 LA 경찰의 부패와 잘못된 관행들을 밝혀내 J.J 존스 반장은 경찰직에서 파면되었고, 경찰의 정신병원 입원 요청의 기준을 강화해 경찰이 자신들을 귀찮게 한다는 이유로 함부로 아무나 정신병원에 보낼 수 없도록 규정했다. 그리고 크리스틴 부인은 존스 반장에게 건 민사소송에서 승소해 1만 800달러를 지급받도록 판결을 받았으나 실제로 배상금을 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5. 사건 이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rthcott_booking.gif

범인인 노스콧. 사형 당시 나이는 23세.

1930년 10월 2일, 고든 노스콧은 샌 퀜틴 주립 교도소에서 처형되었다. 향년 24세.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세라 루이스는 12년 동안 복역한 후 가석방되었으나 그 뒤에도 살인자로서 사회의 경멸을 받으며 살았으며 75세의 나이로 1944년에 죽었다.

사실 사건 자체는 당대 미국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경찰이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한 점 때문에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사건을 조작하고 무고한 이를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켰던 존스 반장은 그 책임을 물어 파면. 경찰 국장 또한 해임되었으며 LA 시장은 재선을 포기해야 했을 정도로 사건의 여파가 컸다. 그러나 존스 반장은 크리스틴 부인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거부했으며, 이에 크리스틴 부인은 1941년에 상급법원에 다시 존스 반장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1935년, 노스콧이 살해한 걸로 알려졌던 소년 중 한 명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크리스틴 부인은 월터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고 한 소년이 살아있었다는 사실로 인해 끝내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월터가 아직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평생토록 월터를 찾고 또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끝내 월터는 시신조차 발견되지 못했다. 결국 공식적으로 월터 콜린스는 1928년에 살해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크리스틴 부인은 이렇게 한을 품고 살다가 1964년 12월 8일, 73번째 생일을 엿새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종범이었던 샌퍼드 클라크는 출소 이후 고향인 캐나다서스캐처원 주로 돌아갔다. 이후에는 캐나다에서 결혼을 한 뒤, 두 아들을 입양해 길렀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거나 28년간 우편배달부로 근무하는 등 평범한 시민으로 살았으며 아버지 부시 행정부와 걸프전까지 지켜보고 1991년에 사망했다.

존스가 월터 콜린스로 내세웠던 소년 아서 허친스 주니어도 사건이 종결된 후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이후 부동산 중개업 및 목축업에 종사하다가 1954년에 사망했다.

이 사건 후 와인빌 주민들은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의 무대로 이슈가 된 마을의 이름을 '와인빌'에서 '미라 로마'로 바꿨다.

2008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체인질링》이라는 이름으로 영화화했고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을 맡았다. 전체적인 시나리오는 실화와 유사하지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영화에서는 범인이 고든 노스콧 한 명인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의 모친 세라 루이스도 함께 가담했다. 또한 가짜 월터 아서 허친스 주니어는 영화에서는 모든 일이 끝나고 고향에 가기 직전에서야 자기가 가짜라고 실토했지만 실제로는 크리스틴 부인이 정신병원에 수감됐을 때 자신이 가짜라고 밝혔다.
[1] 1990년대 이후였으면 유전자 검사를 통해 하루만에 알수있었겠지만 이 시절에 이런 기술이 없었으므로 참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도, 절대 변하지 않는 치아 치료 흔적은 신원 확인 용도로 잘만 쓰였다. 물론 어린 아이의 경우 이가 빠지고 새로 나오고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겠으나....[2] 당시 19살[3] 심지어는 조카인 샌퍼드 또한 강제로 살해된 희생자들의 두개골을 깨부순 뒤 잘게 조각네 처리하는 일을 돕기도 했다.[4] 피해자 대부분이 가출 소년이거나 멕시코 이민자 아이들이었기에 신고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던 모양[5] 월터 콜린스를 살해한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 부족으로 인해 당시 유죄가 입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후에 세라가 고든이 월터를 도끼로 찍어 살해하였다고 증언하였다.[6] 삼촌인 고든의 강요로 희생자의 머리를 향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