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20:39:06

에도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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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E0529><colcolor=#FFF> 에도 성
[ruby(江戸城, ruby=えどじょう)] | Edo Castle
{{{#!wiki style="margin: -16px -11px"
파일:external/pds.exblog.jp/a0277742_15151872.jpg
파일:111799.jpg
}}}
형태 <colbgcolor=#FFF,#1F2023>, 궁전
건설 1457년 (조로쿠 원년)
오타 도칸
소유주
* 오타씨
(1457년~1486년)
주소 도쿄도 치요다구 치요다 1-1

1. 개요2. 역사3. 구성4. 관광5. 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에도성(江戸城)은 에도으로, 현재는 성곽의 유적 일부가 천황의 거처인 고쿄(皇居, 황거)의 외원(外苑)을 구성하고 있다.

2. 역사

파일:0851edojo_ootadoukan.jpg
센고쿠 시대 당시 에도 성의 모습

헤이안 시대 말부터 에도 씨가 거성을 축조했다는 설이 있다. 본격적인 에도 성의 시초는 오기가야츠 우에스기씨의 가신인 오타 도칸이 1457년에 쌓은 요새라고 알려져 있다. 1486년 우에스기 사다마사는 오타 도칸을 암살한 뒤 도칸의 적자인 오타 스케야스를 내쫓아 에도 성을 빼앗았으며, 그 이후 에도 성은 오기가야츠 우에스기씨가 소유하게 되었다. 1524년 호조 우지쓰나가 오기가야츠 우에스기씨를 격파하여 에도 성을 차지하고, 그 뒤로 에도 성은 후호조씨가 지배하였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후호조씨를 멸망시킨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간토를 영지로 받으면서 에도 성은 새로운 중심지로서 도쿠가와 가문의 거성이 되었다. 그때까지도 에도 성은 변변치 못한 성이었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이 된 후 에도 성은 천하보청으로 대대적인 수리를 거쳐 거대한 규모로 탈바꿈했다. 도쿠가와 가문 입장에서 보면 웃픈 성인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에도 성으로 들여보냈는데 이에 도쿠가와 가문에서 에도 성을 엄청나게 개발해놓자 황실과 메이지 유신의 주동자들이 도로 내쫓았기 때문이다.

칸다 산을 통째로 해체하고, 해안 부분을 매립해 광장을 만드는 등 기초 공사부터 대단했다. 이 시기의 도쿄는 도쿄만 근처의 늪지대에 가까워서 땅이 무르다보니 그냥 석축을 올리다가 무너지는 일도 발생해서 통나무를 박아넣는 식의 지반공사가 제2대 쇼군 히데타다, 제3대 이에미츠 치세까지 계속되었다. 유력 다이묘들도 에도 성 수리에 동원되었는데 그 명단이 화려하다. 가토 기요마사후쿠시마 마사노리, 구로다 나가마사, 이케다 테루마사, 다테 마사무네,[1] 우에스기 카게카츠, 호소카와 타다오키 등이 있다. 열거된 다이묘들은 죄다 도자마 다이묘들이다. 에도 막부는 도자마 다이묘들의 세력 약화도 꾀할 겸 큰 공사 등이 있으면 도자마측 들을 동원했다. 도중에 재난도 많아 천수각도 두 번이나 재건되었다. 1657년에는 메이레키 대화재로 대부분이 불타버렸다. 이듬해 재건에 착수했지만 천수각은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후로 에도 성에는 천수각이 없는 채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후에도 지진과 낙뢰 등으로 여러 번 피해를 입었는데 짐작하다시피 다이묘들이 일제히 복원을 도왔다.

대정봉환 이후 메이지 시대부터 천황의 거처가 되었다. 이후로도 1923년 간토 대지진, 1945년의 도쿄 대공습으로 피해를 입었다. 현재 에도 성의 모습은 많이 사라진 상태. 고쿄의 동어원이 과거 혼마루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흔히 알려진 에도 성과 고쿄만이 진짜 에도성의 전부는 아니다. 현재 에도성과 고쿄는 내성에 해당되며 내성 밖 일부 지역들(현재 치요다구미나토구, 신주쿠구, 주오구 등의 일대)이 사실상 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외성 밖에는 소토보리(外濠)라는 이름의 해자를 두었다. 도시개발로 인하여 일부가 매립되었으나 대부분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참고로 도쿄도 405호 도로의 별명인 소토보리도리는 이 소토보리를 둘러싸듯 지나가기에 붙여진 명칭이기도 하다.

3. 구성

파일:Haichi1.png
에도 성 내곽 배치도(현재 황거 동어원과 궁전의 위치)
||<-4><tablealign=center><bgcolor=#FFF>
파일:1849년 에도 성 구조.svg
||
1849년 에도 성의 구조
1 혼마루오오쿠
(本丸大奥)
8 후키아게
(吹上)
2 나카오쿠
(中奥)
9 기타노마루
(北ノ丸)
3 오모테
(表)
10 산노마루
(三ノ丸)
4 니노마루 어전
(二ノ丸御殿)
11
5 니노마루
(二ノ丸)
12 니시노마루시타
(西ノ丸下)
6 모모지야마
(紅葉山)
13 오테마에
(大手前)
7 니시노마루
(西ノ丸)
14 다이묘코지
(大名小路)
파일:external/www.kanko-chiyoda.jp/14%20tenshudai.jpg
에도 성 천수각 터
  • 천수각(天守閣): 본래 있었지만 17세기 메이레키 대화재 때 소실된 이후 재건되지 않았고 이후 천수각의 기능은 에도 성의 망루였던 후지미야구라(富士見櫓)로 옮겨졌다. 쇼군의 거처인 에도 성이 천수각이 재건되지 않은 것은 도쿠가와 쇼군가의 지위가 튼튼해지고 전쟁이 사라져 천수각의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에도 막부는 위의 명분을 들어 각지의 성을 폐쇄하고 다이묘가 천수각을 가지는 것을 막으려 했는데, 쇼군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할 도쿠가와 가문이 정작 에도 성에 천수각을 다시 세우면 이 주장의 설득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까닭이기도 하다. 현재는 건물을 떠받치던 돌 기단만 남아 있는 상태다. 일각에서는 재건 운동도 벌이는 모양이다. #
  • 오오쿠(大奥): 쇼군가의 자녀와 여인들이 머무르던 공간.
  • 나카오쿠(中奥): 쇼군이 머무르면서 정무를 보던 공간.
  • 오쿠다이도코로(奥台所): 에도 성의 수라간.
  • 오모테무키(表向): 쇼군 알현 의식을 치르던 공간.

4. 관광

에도성 천수각 터는 고쿄 동어원을 방문함으로써 직접 가볼수 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휴관일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5. 매체에서

용과 같이 유신!에서 사카모토 료마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만나 설득하여 대정봉환을 이뤄내기 위해 신선조 1번대 대장 오키타 소지와 함께 침투하여 수많은 호위군들과 함정들을 극복하고 쇼군을 만나 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작중시점으로부터도 이미 100여년 전 화재로 소실된 천수각이 멀쩡히 구현되어있다는 고증오류가 존재한다.


[1] 자신이 다스리던 센다이 번의 인력 42만명, 2만 7천량(현재 돈으로 36억엔)을 제공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