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06 17:19:13

양기(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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楊琦 또는 楊奇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정사3. 연의4. 기타 창작물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로 사례 홍농군 화음현 사람. 자는 공연(公挺)이지만 공위(公偉), 공작(公綽)이라고도 한다. 증조부는 태위 양진(楊震), 조부는 양진의 장남 양목(楊牧)으로 아버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2. 정사

영제 때 시중을 지냈고 영제가 하루는 양기에게 "짐과 환제를 비교하면 그 우열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했다. 이 때 양기는 아첨을 하지 않았기에 영제는 불쾌해하면서 "역시 양진의 후손이다."라고 하며 여남 태수로 전출시켰다.

영제 사후 동탁이 집권하고 헌제가 즉위하자 중앙으로 복귀해 시중, 위위에 임명되었고 동탁이 장안으로 강제 천도하자 수행했으며, 동탁이 죽고 195년에 헌제가 이각에게 끌려가자 헌제를 비롯한 백관들은 굶주림에 시달렸다. 이에 헌제는 양기를 시켜 이각에게 쌀 5섬과 소뼈 다섯 짝을 요청했지만 일부러 이각은 썩은 쌀과 썩은 소뼈를 보내 야유했으며, 헌제가 분노해 힐책하려고 하자 이각이 하는 행위에 대해 참으면서 그의 분노를 사 죄를 더욱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하기를 상주했다.

양기는 종요와 함께 이각의 부장 송엽(宋曄)과 양앙(楊昂)을 배반시키는 것에 공적이 있었고 이각과 곽사의 내분으로 헌제가 이각에 잡혀있다 장제가 개입하면서 헌제를 모시고 이각의 진영에서 나오면서 도중에 곽사의 군대에 포위되었지만 동료였던 시중 유애(劉艾)와 함께 수레의 휘장을 높게 들었고 헌제는 곽사군을 향해 지존을 감히 침범하냐고 해서 곽사군을 일시적으로 물러나게 했다. 이후 양기의 행적은 알 수 없지만 헌제가 조조의 비호를 받아 허창으로 천도하자 헌제는 양기의 공적을 인정해 그의 아들 양량(楊亮)을 양성정후(陽成亭侯)에 봉했다.

3. 연의

행적은 거의 비슷하지만 가후의 사람됨을 보고 황제에게 그를 불러 이각, 곽사를 제거할 계책을 묻게 했다. 헌제가 이각, 곽사가 싸우는 틈을 타 탈출하면서 패릉에 이를 때 곽사의 군사들이 오자 천자의 어가가 지나는데 누가 감히 막느냐고 하거나 추격한 두 장수가 천자의 어가라고 하시니 직접 황제를 뵈야 믿을 수 있다고 하자 구슬로 꿰어 만든 발을 높이 젖혀 확인시켜줬다.

4. 기타 창작물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3에서만 등장한다. 그런데 영제 때부터 시중으로 임명될 정도의 신하를 젊은 장수로 등장시켜서 235년에 시작하는 시나리오 6까지 계속 등장할 정도다. 초기 삼국지 시리즈의 고증 부족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유저 패치에서조차 수정되지 않았다.

애초에 시중이라는 직책을 지낼 정도의 인물이 동탁 휘하 시나리오에서 연령이 10대라는 말도 안되는 부분을 보여주는데다가 초반 시나리오에서는 동탁 세력에 소속되어 있다가 조조 휘하 문관으로 계속 등장하는 걸로 봐서는 조위의 양기가 합쳐진 것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퓨전?)

2명 다 생몰년도가 확실치 않다 보니 초기 삼국지 시리즈의 고증 부족 탓에 생긴 일인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 한말패업에서 등장해 군사 51, 무용 36, 지모 64, 정무 56, 인사 65, 외교 71의 능력치로 145년생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