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5-26 21:25:02

앤드류 트롤로프

이름 앤드류 트롤로프
Andrew Trollope
출생 미상
잉글랜드 왕국 더럼주
사망 1461년 3월 29일
잉글랜드 왕국 요크셔 토우턴
배우자 엘리자베스 맨더퍼드
자녀 마거릿
지위 칼레 수비대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기사, 군인. 백년전쟁 시기 잉글랜드군에 소속되어 프랑스군과 맞섰으며, 장미 전쟁 시기 랭커스터 왕조 편에 가담한 뒤 웨이크필드 전투제2차 세인트 올번스 전투에서 선봉대를 이끌어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토우턴 전투에서 전사했다.

2. 생애

더럼주의 염색공 아들이라고 전해지며, 1420년대 프랑스 전선에 투임된 토머스 버그 경 휘하의 일반 병사로 복무했다. 이후 프레네르비콩트와 수비대에서 복무했으며, 1440년 2월 존 파스톨프 경 휘하에서 초대 서머셋 공작 존 보퍼트의 피카르디 원정에 참여했다. 그 후 1442년까지 리처드 우드빌 휘하에서 프레네 중위를 맡았으며, 1455년 노르망디 공국의 재무장관 오스버트 맨더퍼드 경의 자매인 엘리자베스 맨더퍼드와 결혼했다. 그 덕분에 출세 가도를 밟은 그는 1455년까지 칼레 수비대장을 역임하면서 해적과 프랑스 해군에 맞섰고, 중립국 선박을 나포하고 약탈했다.

그 사이, 잉글랜드에서는 장미 전쟁이 발발했다. 그는 처음에는 요크 왕조 편을 들었다. 1459년, 그는 제16대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의 지휘하에 잉글랜드에 상륙한 뒤 러드퍼드 다리 전투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들과 대치한 헨리 6세가 용서를 구하는 모든 적을 용서하겠다고 선언하자, 왕에게 무기를 겨눌 엄두를 못 낸 그는 부하 대부분과 함께 헨리 6세 편으로 귀순했다. 이에 요크군의 사기는 급감했고, 급기야 수뇌부가 도주하자 별다른 전투도 없이 왕실군에 귀순했다.

트롤로프는 이제 확고한 랭커스터 왕조 신봉자가 되었다. 그는 칼레를 점수하기 위해 제3대 서머셋 공작 헨리 보퍼트와 함께 칼레로 진군했지만 공략에 실패하고, 기엔 수비대를 설득해 항복을 받아낸 뒤 그곳을 기반으로 삼아 칼레와 대치했다. 1460년 3월 24일 귄의 사령관으로 선임되었지만, 4월 2일 뉴웬햄 다리 전투에서 서머셋 공작이 패배하고 샌드위치 해전에서 왕실 해군이 요크군에 포획되면서 본국에서 지원을 받을 가망이 없어지자 기옌을 도로 적에게 내주고 잉글랜드로 철수했다.

1460년 12월 앙주의 마르그리트 왕비에 가담한 그는 그 해 12월 30일 웨이크필드 전투에 참여했다. 웨이크필드 전투 후 수십년이 지나서 작성된 에드워드 홀의 연대기와 부르고뉴의 장 드 와브랭의 연대기에 따르면, 트롤로프는 제3대 요크 공작 리처드를 속이기 위한 절묘한 게략을 수립했다. 그는 가짜 탈영병을 요크 공작에게 보내 노샘프턴 전투 때처럼 일부 부대가 전투 도중에 요크 공작의 편으로 돌아설 준비가 되었다고 알리게 했다. 여기에 서머셋 공작 헨리 보퍼트와 클리퍼드 남작 존 드 클리퍼드가 이끄는 절반 병력은 샌달 성과 캘더 강 사이의 웨이크필드 평원에 포진하고, 나머지 절반은 로스 남작 토머스 로스윌트셔 백작 제임스 버틀러의 지휘하에 그 지역을 둘러싼 숲에 숨었다. 요크는 평원에 포진한 적군만 보고, 자기 군대보다 그리 많지 않으니 포위 공격을 견디는 것보다는 회전을 벌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트롤로프는 웨이크필드 전투에 참여해 요크 공작과 그의 차남인 러틀랜드 백작 에드먼드, 제5대 솔즈베리 백작 리처드 네빌, 토머스 네빌 등을 요크군 수뇌부를 처단하는 데 일조했다. 그 후 랭커스터군의 런던 진군에 참여했고, 1461년 2월 17일 제2차 세인트 올번스 전투에서 선봉대를 이끌고 진군해 제16대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이 지휘하는 요크군을 격파했다. 그는 이 전투에서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전투 후 헨리 6세가 자신에게 기사 작위를 내리자, 그는 이렇게 농담했다고 한다.
"전하, 저는 기사에 오를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15명을 죽였지만, 단지 한 자리에 서 있었고, 그들이 스스로 저에게 찾아왔으며, 그들의 시신은 아직도 저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1461년 3월, 요크 공작 리처드의 아들인 에드워드 4세는 잉글랜드 국왕을 칭한 뒤 랭커스터군을 응징하려고 북상하면서, 트롤로프를 포함한 "요크 가문의 특별한 적들"을 죽이는 사람에게 현상금 100 파운드를 지급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해 3월 29일 토우턴 전투에 참전한 트롤로프는 선봉대를 이끌고 적과 맞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트롤로프는 생전에 엘리자베스 맨더퍼드와의 사이에서 외동딸 마거릿을 낳았다. 마거릿은 서퍽의 귀족 파스턴 가문의 관리자인 바턴의 리처드 캐슬의 아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