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ff><colcolor=#003580> 아르투리 빌호 부오리마 Artturi Vilho Vuorimaa | ||
출생 | 1890년 8월 8일 | |
러시아 제국 핀란드 대공국 헬싱키 | ||
사망 | 1972년 10월 28일 (향년 82세) | |
핀란드 헬싱키 | ||
국적 | [[핀란드| ]][[틀:국기| ]][[틀:국기| ]] | |
복무 | 핀란드군 (1918~1929) | |
최종 계급 | 대위 | |
참전 | 핀란드 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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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핀란드의 군인. 라푸아 운동에 가담했으며 맨챌래 반란의 주동자 중 한 명이다.2. 생애
1890년 8월 8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났다.1910년, 엠미 마리아 얘르벤패와 결혼했다.
1918년 4월 15일, 핀란드 내전 중 중위로 진급했다. 이후, 대위로 진급한다.
1930년에는 헬싱키 이스쿠요우콘(Helsingin iskujoukon)라는 단체의 지도자로 활동하며 7월 5일에 사회주의 노동당과 소작농민당의 국회의원인 얄마리 뢰트쾨와 에이노 페칼라를 납치하는 데 일조했다. 10월에는 라푸아 운동의 지도자가 된다.
1932년 2월 27일, 라푸아 운동에서 시민위병 400명이 맨챌래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 당시에는 납치 혐의로 지명수배가 된 상태여서 현장에서 반란을 직접 지휘하지는 않았다. 반란군들은 정부의 총사퇴와 국가 내 마르크스주의 확산 억제를 요구했다. 그러나, 반란은 진압되었고 부오리마는 주동자 중 한명으로 체포되었다. 내란 혐의로 2년 6개월형을 받았으나 이후 가석방되었다.
1940년대에는 핀란드 국민사회주의 노동기구에서 활동했다. 이후, 핀란드 북부에서 핀란드 중앙당을 위해 일을 했다.
1951년에는 핀란드 청각장애인협회(Suomen Huonokuuloisten Huoltoliitto)의 총무로 선출되었다. 1955년에는 노동조합의 이사로 활동하다 1959년 은퇴했다. 이후에는 청각장애인협회장으로 활동했다.
1960년대에는 Kokenut kätti tija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작성했다.
1972년 10월 28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