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 <colbgcolor=#ff0000> 문화유산 | 1983년 쿠스코 | 1985년 차빈 고고 유적 | 1986년 찬찬 고고 유적지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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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키파 Arequipa | |||||
국가 | |||||
주 | 아레키파주 | ||||
깃발 | |||||
면적 | 69km² | ||||
인구 | 1,226,404명[1] | ||||
인구밀도 | 15,000/km² | ||||
설립연도 | 1540년 8월 15일 | ||||
해발고도 | 2,335m | ||||
아레키파 행정 사이트 | |||||
1. 개요
페루 안데스산맥에 위치한 고산도시이자 페루 제2의 도시이다. 잉카 제국 시기 이곳에 처음 마을이 생겼고, 1540년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밀사였던 군인 가르시 마누엘 데 카르바할이 현재의 도시를 세웠다. 현재 아레키파는 페루 헌법재판소가 위치한 페루의 사법수도이기도 하다. 스포츠에서는 축구팀 FBC 멜가르의 연고지이다. 페루의 수도인 리마 다음으로 큰 페루의 제2의 도시이다.2. 역사
과거 아레키파는 낚시와 사냥, 채집에 의존했던 유목민들이 살았다. 이들은 라마를 기르면서 농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잉카 제국의 사파 잉카인 마이타 카팍이 찰리 강 계곡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 일대에 도시를 세우는 대신 미트마 정책[2]을 실시하였다. 그래서 이 일대에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그러나 잉카 제국에 불청객 스페인인들이 찾아오고 잉카 제국이 사실상 멸망의 길로 닫고 있을 때인 1540년 8월 15일 스페인 군인인 마누엘 데 카르바할이 찰리 강 일대에 도시를 세웠고 이를 아레키파라고 명명하였다. 아레키파는 페루 부왕령에서 수도인 리마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아레키파는 페루의 다른 도시들이 스페인 통치에 반발할 때도 스페인 왕실에 대한 충성심을 강하게 유지하였고, 이에 1805년 스페인의 왕은 왕실헌장에 따른 가장 충성스러운 도시라는 칭호를 주었다.
페루가 독립하자 아레키파는 식민지 시대의 은 무역로와 독립 이후의 양모 무역로의 교차점에 위치한 전략적 위치 덕분에 이 도시가 행정, 상업,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칠레와의 전쟁인 태평양 전쟁에서 수도 리마가 점령당하자 임시 수도로 지정되기도 했다. 아레키파는 시민 저항 운동의 요람지로 페루에 군사 정권이 수립되었을 때 가장 저항을 많이 한 도시이기도 하다.
3. 경제
아레키파의 주요 산업은 페루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농업과 관광이다. 또한 주변에 광산이 많아서 광업이 발전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남미에서 2번째로 많은 시멘트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기도 하다. 또한 라마털을 기반으로한 섬유를 생산한다.4. 관광
{{{#!wiki style="margin:-5px -10px -5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000> | 유네스코 세계유산 UNESCO World Heritage | |
<colbgcolor=#000><colcolor=#FFF> 이름 | 한국어 | 아레키파 역사 지구 | |
스페인어 | Centro histórico de la ciudad de Arequipa | ||
영어 | Historical Centre of the City of Arequipa | ||
프랑스어 | Centre historique de la ville d’Arequipa | ||
국가·위치 |
아레키파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지정번호 | 1016 | ||
등재연도 | 2000년 | ||
등재기준 | (ⅰ)[3], (ⅳ)[4] | }}} |
- 아레키파 대성당 (Catedral de Arequipa) : 아르마스 광장에 위치한 아레키파 대교구의 대성당으로 페루에서 가장 독특하고 유명한 식민지 시절 대성당이다.
- 산타 카탈리나 데 시에나 수도원 (Monasterio de Santa Catalina de Siena) : 1579년 9월 10일에 건설된 요새로 17세기부터 수도원으로 쓰이고 있다.
- 회사 교회 (Iglesia de la Compañía) : 안데스 바로크 건축의 대표적인 건물로 교회 내부에는 금박으로 덮인 조각된 나무 제단화가 있다.
- 도덕의 집 (Casa del Moral) : 1730년 경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현재 18세기의 페루 저택 내부를 보여주는 전시 갤러리로 쓰이고 있다.
- 고예네체 궁전 (El Palacio de Goyeneche) : 리마의 대주교였던 후안 데 고예네체가 머물던 건물로 현재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을 포함한 그의 개인적인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 트라스탄 델 포조 집 (Casa Tristán del Pozo)
- 산 프란시스코 대성당 및 수도원 (La Basílica y Convento de San Francisco) : 아레키파 시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2만 권 이상의 도서관이 있다.
5. 자매도시
6. 아레키파주
아레키파주는 페루의 24개 주 중 한 주이다. 북쪽으로는 이카주와 아야쿠초주, 아푸리막주, 쿠소코주와 접하며, 동쪽으로는 푸노주, 남쪽으로는 모케과주가 있다. 주의 서쪽은 태평양이다. 면적은 63,345.39㎢, 인구는 2017년 기준 1,382,730명이다. 주도는 위의 아레키파 시이다.7. 출신 인물
- 마티아스 라소 : 페루의 축구 선수
- 프란시스코 가르시아 칼데론 :
- 니콜라스 데 피에롤라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 페루의 소설가로 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 2022년 기준.[2] 정복지의 통제를 강화하고 제국 전체의 통합을 도모하기 위해 사용된 인구 재배치 정책입니다. 이 제도는 잉카 제국이 급속도로 팽창하던 시기에 각 지역의 반란을 방지하고 중앙 정부의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3]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