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05:50:49

순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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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팔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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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ecd21> 최종직위 도독(都督)
순우(淳于)
(瓊)
생몰연도 ?년 ~ 200년
중간(仲簡)
고향 예주(豫州) 영천군(潁川郡)
역임한 관직 우교위(右校尉)[1]→도독(都督)[2]

1. 개요

후한 말의 서원팔교위이자, 후한 말의 군벌인 원소의 수하 장수. 순씨가 아니라 순우씨다.

2. 정사 삼국지

2.1. 초기 생애

188년, 영제서원팔교위를 창설하면서 건석, 원소, 포홍, 조조, 조융, 풍방, 하모와 함께 교위에 임명되었는데, 순우경은 우교위에 임명된다. 즉 한때는 조조, 원소와 동렬에 섰던 셈이다.

언제부터 원소를 따랐는지는 기록이 없으나 중앙군의 장교였던 만큼 동탁 집권 무렵의 시점까지 낙양에 있었음은 확실하기에 허유봉기처럼 동탁 집권 이후 실각한 원소가 하북으로 도주할 때부터 원소를 따랐다는 견해가 있다.

<원소전>에 따르면 195년, 저수가 원소에게 헌제를 영내로 맞아들이라고 진언했을 때, 순우경은 곽도와 함께 조정을 맞아들일 경우 일일이 보고를 하고 눈치를 살펴야 하니 내부에 새로운 골칫거리가 생기는 것이라며 저수의 진언을 반대했고, 원소는 여기에 더해 애초에 동탁에게 옹립된 헌제에겐 정통성이 없다며 황제를 봉영하지 않았다.

2.2. 관도대전

관도대전 직전, 곽도저수의 권력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이유를 들어 저수를 비판했는데 이를 받아들인 원소는 저수가 맡고 있던 감군을 폐하고 감군의 권한을 삼분해 삼도독을 세웠으며 저수, 곽도, 순우경이 제각기 맡도록 한다.[3]

<무제기>에 따르면 원소는 순우경, 곽도, 안량을 보내 백마(白馬)에서 동군태수 유연을 공격하게 하여 관도대전의 스타트를 끊었다. 그러나 조조의 구원으로 안량이 관우에게 전사하자 원소군은 백마의 포위를 풀었다.

2.3. 죽음

순우경은 원소군의 군량 수송대를 1만의 군대로 호위하는 임무를 맡아 수원진, 한거자, 여위황, 조예(趙叡) 등과 함께 오소에 주둔하였다. 그러나 허유의 배신으로 순우경군의 이동 경로를 파악한 조조의 기습을 받는다.

조조는 오소에 도착하자마자 불을 질렀는데, 불이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순우경군 쪽으로 번졌기에 예상치 못한 기습에 화공까지 제대로 당한다. 기습을 파악한 순우경은 조조군의 병사가 적은 것을 보고 곧바로 병사를 보내 요격한다. 그러나 의외로 조조의 기세가 강한 것을 알자 영채로 들어가 지킨다. 순우경군은 오랫동안 무너지지 않아 원소가 급파한 구원군이 도착하기 직전까지 전열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조조가 위험해질 정도라고 언급할 정도로 조조 이하 모든 장병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으로서 겨우 이겨낼 수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4]

조만전》에 따르면 오소를 점령한 조조는 수원진, 한거자, 여위황, 조예(趙叡) 등은 참수했지만 장군 순우경은 코를 자르고 죽이지는 않았다. 또한 사졸 천여 명을 죽여 그들 모두의 코를 자르고 소와 말은 입술과 혀를 잘라 이를 원소군에 보여주니 원소군의 장병들이 모두 놀라고 두려워했다.

밤에 조조가 순우경을 만났고, 조조는 순우경을 자기 수하로 삼고 싶어했으므로 친근히 대하면서 어쩌다가 패하기에 이르렀냐고 물었다. 순우경은 "승패는 하늘이 결정했을 뿐 어찌 질문에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대답하며 굽히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조조는 순우경을 죽이지 않으려 했으나, 허유가 "내일 아침 순우경이 거울을 보면 (코가 잘린) 원한을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결국 내키지 않아하면서도 죽였다고 한다.

<악진전>에서는 악진이 순우경을 참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직접' 참했다고 나와있지 않고 부하의 공이 지휘관에게 귀속되는 것을 생각하면 악진군과 교전 중 사로잡혀 처형되었다고 보면 무리 없는 해석이 될 것이다.

3. 삼국지연의

관도대전 직전 안량, 문추, 장합, 고람, 한맹, 장기 등과 함께 원소의 맹장으로 언급되긴 하지만, 성질이 괴팍하고 술을 좋아해 군량 창고인 오소를 지키면서 맨날 술판만 벌이다 허유의 배신으로 오소의 정보를 파악한 조조가 기습을 가하자 속수무책으로 털린 것으로 나온다.

조조가 오소 주둔군을 격파하고 모든 상황을 정리했을 때도 순우경은 술에 취해 자고 있던 상태로 사로잡혔으며, 조조는 술에 취해있던 순우경의 귀와 코와 손가락을 베어낸 후 도로 원소 진영에 돌려보낸다. 원소는 순우경을 보고 어이없어하며 도대체 어쩌다 그 꼴이 됐냐고 묻자 옆에 있던 병사가 술에 취해있다가 기습을 받아 이렇게 됐다고 대답했으며 분노한 원소가 그대로 죽여버린다.

실제 역사와 달리 아예 자질부터 의심스러운 졸장으로 묘사되었으니 연의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

4. 평가

관도대전에서의 패배로 악명이 높지만, 술에 취해 자다가 털리는 추태를 보인 건 연의의 각색이다. 실제로는 정사에서의 언급처럼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패배한 것 뿐이다. 물론 순우경의 패배가 원소의 패배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긴 하였지만 말이다. 애초에 상황이 매우 불리했는데, 조조보다 군사 수는 많았지만 조조는 화공을 하면서 약탈이 아니라 철저하게 파괴를 목적으로 한 반면, 순우경은 군량이 불에 타버리면 조조군을 무찔러도 진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싸우면서 군량도 지키느라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순우경이 조금만 더 시간을 끌어 원소군 기병대가 조조군의 후열을 쳤다면 오히려 역전이 일어날 수도 있었던 상황.

원소가 주력군으로 조조의 본진을 치며 오소에는 기병대만 급파한 것도 순우경은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일거양득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순우경이 원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패하긴 했지만 조조의 입장에서도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이긴 상황이었으니 그렇게까지 무능한 장수라고 보긴 어렵다. 조조 자신도 순우경을 사로잡자 일단 등용부터 시도했을 정도였다. 코만 안 잘랐어도

더군다나 당시 최고지휘관인 조조까지 피칠갑을 하고 전투에 임했다는 기록을 볼 때 당시 전투는 관도전을 통틀어 가장 치열한 혈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이 전투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조조군은 백병전 최정예를 이끌고 갔을 가능성이 높다. 지킬 건 지키면서 싸워야 했을 순우경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기습에도 불구하고 나름 끈질기게 버텼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서원팔교위 동기였으니 조조와 순우경은 예전부터 잘 아는 사이였을 가능성이 높다. 한 때의 동료가 서로 가는 길이 달라졌다가 승자와 패자로서 기구한 결말을 맞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원소군 내에서도 평가와 지위가 높은 편이었다. 헌제 옹립을 두고서도 반대 의견을 피력한 것을 보면 원소 진영 내에서도 확고한 발언권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며, 저수의 감군이 3도독에게 3분할되었을 때 저수와 최측근인 곽도와 함께 순우경도 3도독에 들어갈 정도로 세력 내에서 위치가 높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게다가 관도대전 이전에도 안량, 문추, 곽도 등과 함께 주력군에 배치되어 공격을 담당하였고, 비록 패전이었던 오소에서도 1만명 이상을 단독으로 지휘하던 것으로 보아, 세력 내에서도 요직에 배치될 정도의 준수한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5.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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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원팔교위 시절[2] 원소군 휘하[3] 이에 대해 《삼국지연의》의 영향이 강한 일반대중 사이에서는 우유부단한 암군 원소가 간신 곽도 등에게 휘둘려 현명한 충신 저수를 내치는 것으로 해석하지만, 최근에는 원소가 곽도, 순우경을 필두로 하는 기주 외부 출신의 친위 세력을 형성해 기주의 토호 세력인 저수, 전풍의 세력을 견제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실제로 정사에 기록된 원소는 우유부단함이나 암군과는 거리가 굉장히 먼 정치력이 뛰어난 인간이며, 그의 수많은 책사들이 서로 반목하면서도 원소 본인의 능력과 카리스마 덕분에 별다른 사고를 치지 않을 정도였다. 또한 저수는 한복이 원소에게 기주를 양도할 당시 한복을 말렸던 인물로, 원래 다른 인물의 부하였다 흡수된데다가 섬긴 시간도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히 원소의 충신이라고 보기엔 굉장히 무리가 있다. 즉, 굳이 큰 권한을 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저수는 내쳐진 것도 아니라, 군 지휘권을 잃었을 뿐 계속 원소 밑에서 종군했다.[4] 무미건조하게 조조의 행적만 나열한 <무제기>에서 조조의 전투를 가장 치열하게 묘사한 부분이다. 애당초 진수의 저술 태도는 하드보일드이기 때문에 (임용한의 평) 특정인물에 대한 찬양이랄 것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