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5:12:41

세바스티안 소리아

세바스티안 소리아의 기타 정보
{{{#!wiki style="margin: -1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a11c37, #a11c37)"<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a11c37> 파일:카타르 축구 협회 로고.svg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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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하산 알 하이도스 185회 2008.8.9 2024.2.10
2 압델카림 하산 135회 2010.11.18 2024.10.15
3 압둘라지즈 하템 124회 2009.12.30 2024.10.15
4 세바스티안 소리아 123회 2006.11.15 2017.3.28
5 카림 부디아프 122회 2013.12.21 2024.9.5
6 부알렘 쿠키 118회 2013.12.21 2024.10.15
7 아크람 아피프 117회 2015.9.3 2024.10.15
8 알모에즈 알리 116회 2013.12.21 2024.10.15
9 빌랄 모하메드 114회 2003.9.4 2014.12.31
웨삼 리지크 2001.10.18 2014.11.13
11 이브라힘 마지드 102회 2007.6.25 2017.6.13
12 페드루 미겔 101회 2016.3.29 202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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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소리아_카타르SC.jpg
카타르 SC No. 23
세바스티안 소리아
سيبستيان سوريا
본명 안드레스 세바스티안 소리아 킨타나
أندريس سيبستيان سوريا كوينتانا[1]
출생 1983년 11월 8일 ([age(1983-11-08)]세)
우루과이 파이산두
국적
[[카타르|]][[틀:국기|]][[틀:국기|]]
|
[[우루과이|]][[틀:국기|]][[틀:국기|]]
신체 186cm
포지션 스트라이커
소속 선수 리버풀 데 몬테비데오 (2002~2004)
알 가라파 SC (2004~2005)
카타르 SC (2005~2012)
레크위야 SC (2012~2015)

알 라이얀 SC (2015~2020)
알 아라비 SC (2020~2021)
카타르 SC (2021~)
국가대표 123경기 40골 (카타르 / 2007~2018)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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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타르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공격수. 우루과이 출생이지만 카타르로 귀화해 카타르 리그랑 국가대표로 뛰는 카타르 선수이다. 2004년 알 가라파 SC 이적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카타르 스타스 리그에서 269경기 168골을 넣었고,[2] 2006년 카타르 축구 협회 선정 올해의 선수, 그리고 2008년 아시아 올해의 축구선수 3위를 수상하는 등 카타르에서 잔뼈가 굵은 공격수다.

국가대표는 카타르 소속이지만 혈통은 우루과이 계열이라 남미 스타일의 축구를 한다.

2. 클럽 경력

리버풀 데 몬테비데오[3]라는 축구 클럽에서 활동하다가 2004년 세네갈 쇼크와 함께 세네갈을 최초로 월드컵 본선과 토너먼트 진출을 이끈 브루노 메추 감독의 제안으로 알 가라파 SC로 이적을 하게된다.

그는 알 가라파에서 26경기 14골을 득점하고 2005/06 시즌부터 카타르 SC로 이적해 7시즌간 152경기 102골을 득점하는 활약을 펼친다. 2012/13 시즌레크위야 SC로 이적해 첫 시즌 22경기 19골로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고 AFC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해 조별리그에서 4경기 연속 득점을 하기도 했다.

2013년 4월 9일 AFC 챔피언스리그 파흐타코르와의 경기에서 시작후 9초만에 득점을 하면서 아챔 개편 이후 최단시간 골을 득점했다. 이후 2시즌 더 활약을 하다가 2015/16 시즌 알 라얀으로 이적해서 활약하고 있다. 레크위야 SC에서 통산 62골을 넣으며 최다골을 기록했으나 2016년 12월 21일 남태희가 63번째 골을 기록하며 이 기록을 갱신하고 레크위야 SC 최다골을 기록하며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2020년까지 추가 계약했다.

2020년 8월을 마지막으로 알 라이얀에서 퇴단했다. #

2020년 9월, 알 아라비 SC에 입단했다. #

3. 국가대표 경력

카타르 국가대표로도 123경기나 출전하는 등 맹활약했다.[4] 2006년도에 카타르 대표팀에 데뷔했으며 , 소집된 해 당시에 열린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주전 공격수로 출장해 4골을 득점하면서 팀의 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를 한다. 이후 2007년 AFC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일본을 상대로 국가대표 데뷔골을 기록했고,이후 베트남, 아랍에미리트를 상대로 전부 득점을 하지만 앞선 일본과 베트남과의 경기에서 실점을 하며 무를 캔데다가 아랍에미리트에게 1-2로 패배해 2무 1패로 탈락한다.이후 2011 AFC 아시안컵에 출전해 8강전 일본을 상대로 오른쪽을 돌파하며 선제골을 기록해 2대회 연속 득점을 기록한다. 그러나 호주에서 개최된 2015 AFC 아시안컵 엔트리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2016년에 벌어진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한국과의 경기에 출전해 한국팬들한테 이름을 알렸다. 무슨 일인지 가면을 쓰고 경기에 임했는데, 자국팀이 골을 먹은 후 2분만에 홍정호를 상대로 페널티킥을 얻어내고 전반 막판에 홍정호를 또 제치고 골을 기록해서 카타르의 공격포인트에 전부 관여했다. 한국팀이 후반 지동원과 손흥민의 연속골로 3-2 역전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과장 좀 보태서 카타르는 소리아 혼자 다 해먹었다고 해도 될 만큼 맹활약을 펼쳤고 한국팀의 위기에는 늘 그가 중심으로 있었기 때문에 저 가면 쓴 선수가 누구냐는 얘기가 급증했다.

83년생으로 이미 나이가 충분히 많은지라 근래에 대표팀에 차출된 적이 없어 사실상 대표팀 은퇴 수순을 밟고 있다.

3.1. 소리아같은 선수가 없어서 졌다

2016년 러시아 월드컵 2차 예선 당시 카타르를 3-2로 간신히 이기고 이란 원정을 떠난 한국대표팀이 무기력하게 0-1로 패배한 뒤 슈틸리케"우리에게 소리아같은 선수가 없어서 졌다"라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갑작스럽게 주목을 받게 되었다. 우선 소리아 본인이 이 감독이 자신에 대한 호의에 평가한 말을 한 것을 본인이 알고 있는지는 불명이지만,[5] 이와는 별개로 선수 탓만 하는 망언을 시전한 슈틸리케에게 여론의 비판이 잇따랐으며, 각종 커뮤니티에서 맹비난을 퍼부었다. 물론 그가 한국과의 경기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치긴 했지만 가뜩이나 졸전 때문에 여론이 안 좋아지던 차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밤새 여러 커뮤니티들이 벌집이 되고 기사가 줄줄이 올라오는 등 후폭풍이 거세게 일자 다음 날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며 해명을 했지만 남탓에 데인 축구팬 대다수가 슈틸리케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이미 카타르와의 경기 전에도 고압적인 태도로 언론과도 척을 졌기 때문에 자제할 필요도 없는 언론도 앞다투어 슈틸리케의 실상을 까대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때 새삼스럽게 재조명된 사실이 그가 데리고 온 아르무아 코치가 하는 게 없는 말동무이며, 슈틸리케는 코치진이랑 불화가 잇따르고 소통이 전혀 안되는 독선적인 인물이고, 카타르 리그에서도 강등 전도사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소리아가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카드를 받아 다음 경기인 한국 전에서 경고 누적으로 나오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에 기다렸다는 듯 다행이라는 기사가 나오고 네티즌들은 슈틸리케가 아주 좋아하겠다며 비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그 소리아마저 없는 카타르한테 2대3으로 패배하면서 월드컵 진출 실패라는 대 참사가 코앞에 다가오자 그렇게 슈틸리케를 감싸던 축협도 차마 못 봐주겠는지 전격 경질되었다.

슈틸리케가 물러나고 치른 최종 예선 2연전에서 대표팀이 0골[6]에 그치면서 소리아를 높게 평가했던 슈틸리케의 발언이 잠시 재평가되기도 했다. 이후 슈틸리케가 텐진에 재취업한 이후 4연승에 잔류 확정을 지으면서 계속 소리아의 위상이 높아져가는 중이다. 그러나 슈틸리케의 문제점인 패스 축구에 대한 강박이나 전술 유연성의 부재를 제쳐 놓고도 과연 한국에 소리아만한 공격수가 없느냐에 대한 논쟁이 있기도 하였다. 이 발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면, 그게 꼭 틀린 말은 아니었을 수 있다. 당연히 손흥민은 당시에도 세계구급의 공격수였기 때문에 손흥민을 제외한 '스트라이커 포지션'의 선수들과 비교하는게 합당해 보인다. 2017년 기준 소리아의 통산 스탯을 보면 A대표 118경기 38골, 프로 통산 430경기 230골[7]을 기록하였다. 83년생이고 당시 은퇴 직전이었던 고로 누적 스탯이 높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시즌별 기록을 보면 매년 10-20골은 꾸준히 찍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대표팀 스트라이커 포지션에는 이정협, 김신욱이 있었는데, 카타르 리그와 K리그의 수준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소리아가 이정협, 김신욱보다 스탯만큼은 훨씬 좋았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당시 A대표팀에서의 기량으로만 보았을 때도 소리아는 2016년 홍콩과의 2차 예선에서 1골, 요르단과의 친선전에서 3골, 세르비아와의 친선전에서 3골, 한국과의 최종 예선에서 1골, 2017년 몰도바와의 친선전에서 1골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점은, 전술의 완성을 통해 선수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이러한 스탯을 분석해본들 감독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지 못한 슈틸리케의 행동으로 인해 더이상 재평가되기는 힘들다. 슈틸리케가 경질되고 톈진 터다 감독으로 있으면서 주기적으로 한국 대표팀을 까대는 뒤끝의 정점을 보여주면서 소리아 발언은 남탓 전문인 슈틸리케의 진심이 그대로 드러난 발언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톈진 감독 시절에도 광저우 헝다에게 5:1 대패를 하자 '우리에겐 파울리뉴 같은 선수가 없는데 어떻게 이기느냐'는 드립을 치면서 사람 쉽게 안 바뀐다는 말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중이다.

뒤늦게 나온 슈틸리케의 해명에 따르면 전반적인 한국 공격진에 대한 비하가 아닌 원톱 자원의 부재를 지적한 것이라고 한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대한민국에 윙포워드나 섀도우 스트라이커, 세컨탑 등의 1.5선, 2선 공격자원은 손흥민부터 시작해 발에 차도록 있지만, 이들의 오프볼 침투, 공격력 강화를 위해 최전방에서 상대 수비 앞에서 버텨줄 원톱, 탱커형 공격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원래 4-2-3-1의 원톱은 고립되기 쉽고 뒤의 3을 살리는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4-2-3-1을 쓰는 팀이 항상 1톱을 찾느라 고생하고 심지어 제로톱같은 변칙까지 기도한다. 그래서 원톱에 적합한 자원을 여럿 테스트하긴 했지만 그나마 기능이라도 제대로 했던건 이정협이었고, 후임 신태용 감독도 황희찬, 이근호, 석현준, 김신욱, 지동원 등 여러 선수들을 시험해봤지만, 전부 골 결정력들이 구린 건 물론 원톱에 요구되는 조건을 상당히 미달하는 선수들이 많았었다.


[1] 영문: Andrés Sebastián Soria Quintana[2] 그러나 득점왕은 2012-13시즌 한 번만 수상했다.[3] 남미에서 뭔 리버풀이냐고 하겠지만 예전에 리버풀에서 우루과이로 이민왔던 사람들이 만든 클럽이라서 리버풀 이름이 붙었다. 마찬가지로 에콰도르의 바르셀로나라는 클럽도 바르셀로나 출신 이민자들이 만들었다.[4] 우루과이에 계속 있었다면 디에고 포를란, 루이스 수아레스, 에딘손 카바니같은 선수들이 즐비하여 국가대표는 먼나라 이야기였을 것이다.[5] 당시 같은 팀 소속인 고명진의 인터뷰에 의하면 자신이 소리아에게 직접 우리나라 대표팀 감독이 너를 좋아한다고, 네가 한국에서 유명하다고 농담을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소리아 본인은 그럼 자신이 FC 서울에서 뛸 수 있냐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 ##[6] 심지어 이란과의 홈경기는 유효 슈팅마저 0이다.[7] 매체마다 오차가 있기 때문에 대략적인 누적 기록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