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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학대학 홈페이지성균관대학교의 유학대학을 설명하는 문서.
2. 연혁
유학대학 연표 | |
1398년 | 성균관 |
1887년 | 성균관 경학원 |
1946년 | 성균관대학교 문학부 동양철학과 |
1953년 | 성균관대학교 문리과대학 동양철학과 |
1967년 |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유학과 |
1996년 | 성균관대학교 동양학부 유교철학과 |
1998년 |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 유학동양학과 |
2012년 |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유학동양학과 |
3. 편제
유학대학 (儒學大學) College of Confucian Studies and Eastern Philosophy | |
학과 | 전공 |
유학동양학과 | - |
3.1. 유학동양학과
과거 유학대학 건물 |
근본유동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유학·동양학과의 연원은 멀게는 고려시대 국자감부터 가깝게는 1895년 성균관 경학과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왕조시대 성균관에서 다루었던 학문의 내용과 방법은 현재의 유학·동양철학과는 큰 차이가 있으나 계통은 동일하다. 1946년 성균관대학이 설립될 때 철정과, 경사과로 설치되었고, 1948년 7월 문학부 동양철학과로 변경되었다. 전공과목으로는 중국철학사, 송명철학, 선진철학 등의 중국철학과 조선성리학, 조선명문 등의 한국철학이다. 그리고 불교철학, 서양철학사 등의 강좌를 개설하였다. 1953년 2월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면서 문리과대학안에 동양철학과가 설치되었다. 이때 학과장은 김경탁 교수였으며 구본명, 김종국, 조정, 한상갑, 김동화, 손명현 교수 등이 있었다. 후에 천옥환, 양대연 교수가 임용되어 함께 학과를 이끌어 나갔다. 1956년에는 석사과정, 1957년에는 박사과정이 설치되었다. 1960년에는 류승국, 1962년에는 권세원, 민태식, 1963년에는 양대연, 1964년에는 성낙훈, 1965년에 유정동, 1966년에 김익환 교수가 새로 임용되었다. 1960년에는 고려시대의 장학기관인 양현고를 계승한 새로운 양현고를 설치하여 시험을 거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1967년에 동양철학과는 유학대학으로 승격 개편하게 된다. 그리고 유학과와 철학과를 새로 설치하였다. 유학과가 생긴 1967년에는 류승국, 유정동, 안병주 교수(1968년 임용) 등 세 원로 유학자가 강의를 담당하였고, 그 후 이동준(1976년 임용), 이운구(1979년 임용), 송항룡(1980년 임용), 김정태, 서경요(1981년 임용), 최근덕(1983년 임용), 임동철(1984년 임용), 송하경(1985년 임용), 오석원(1988년 임용), 이기동 교수 등이 충원되었다. 교과과정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어 유학원전강독 부분이 강화되었다. 1981년 철학과가 문과대학으로 옮겨가고 유학대학 내에 한국철학과와 동양철학과가 신설되었다. 이후 한국철학과에는 유승국, 이동준, 남상락(1985년 임용), 최영진(1988년 임용), 최일범 교수(1989년 임용)가 거쳐갔다. 동양철학과에는 1983년 양재혁 교수, 85년 이기동 교수, 89년 김동수 교수, 92년 박상환 교수가 새로 임용되었다. 1996년 학부제 실시에 따라 유학대학에 동양학부를 설치하고 유교철학전공, 한국철학전공, 중국철학전공으로 변경하였다. 1998년 김성기 교수가 임용되었다. 20세기 동안 중국철학 전공으로 90여 명의 박사를 배출하였고 80여 명의 졸업생이 성균관대와 타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여 단일과에서 배출한 국내 최다 교수 인원으로 기록되었다. 2000년에는 신정근 교수가 임용되었다. 2002년 이후 3개 과가 있던 유학대학이 유학·동양학부로 통폐합되고 2012년에 단일학과 단과대로 개편되어 현재의 '유학대학 유학·동양학과'가 되었다. 2012년에 고재석 교수, 2013년에 이천승 교수, 2014년에 김도일 교수, 2016년에 백영선 교수가 임용되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필립 J. 아이반호 교수를 석좌교수로 초빙하기도 했었다. 2018년에는 박소정, 김동민 교수가 임용되었고 2021년에는 강경현 교수가 임용되었다. 2022년에는 강원대에서 윤석민 교수가 옮겨왔다.
20여년 전에 비해 전임교원 수가 반토막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9명이나 재직하고 있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동양철학 전임교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성균관대학교의 랜드마크이자 유학대학 건물이었던 석조전을 철거당하고 600주년기념관을 세우면서 유학대학에 배정해주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퇴계인문관으로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균관의 유학 교육 기능을 계승한 학과인만큼 성균관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학과이며, 성균관대에서는 공식적인 단과대학 순서에서 유학대학을 맨 앞에 놓는 등 표면적으로는 존중하고 있다.
유학·동양학과는 문과대학 소속이 아닌 유학대학이라는 자체 단과대학내의 학사과정이며, 유학대학 내에 양현재, 성균유학·동양철학연구원, 동양철학·문화연구소, 유교철학·문화콘텐츠연구소,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이렇게 5개의 연구 기관과 일반대학원, 특수대학원이 소속되어있다. 유학동양학과의 강사를 포함하여 1958년 설립된 대동문화연구원을 바탕으로 설치된 동아시아학술원에 재직 중인 교원까지 합한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의 연구인력이 성균관대에 소속되어 있으며, 동양학 연구로는 전세계적인 규모이다.
유학동양학과 수업은 교수의 성향에 따라서 토론과 발표를 중시하는 수업도 있으나, 대다수는 교수의 강의만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이다. 소모임으로는 학회 무빙, 밴드 소모임 PeakNic, 축구 소모임 유아독존, 홍보소모임 유알, 등산소모임 유산소, 봉사소모임 유엔 등 각종 소모임이 있으며, 서적대여사업, 고교홍보, 단대엠티, 유학대의 밤 등의 학생활동이 있다.
다만 유학동양학과라서(그리고 성균관대학교라서), 동양철학 중 유교철학에 심히 치중되어 있다.[1] 여담으로 구 '유교철학과'는 '유교과'로 줄여 말하면 유아교육과로 알아듣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재학생들은 보통 ‘유동과’라고 부른다. 현재 BK21에 선정되어 있으며, 대학원생 수도 많아서 전국의 대학원 철학과 중 가장 많은 대학원생이 재학 중이다. 또한 대학원생에게 가장 많은 장학금이 주어지는 학과이기도 하다.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는 1967년 유학대학으로 승격되면서 유학과와 철학과로 분리되었다가, 1981년 다시 철학과에서 분리하여 유학대학 동양철학과로 분과되었다. 이후 1996년 3월 중국철학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동양철학과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성균관대의 원류라고 할 수 있으며, 성균관대가 4년제 대학으로 개편된 이후 성균관대 서열에서 가장 첫번째로 왔던 학과로, 연세대에서 신학과와 비슷한 포지션에 있는 학과이다. 성균관대의 뿌리가 유학과인 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사실은 동양철학과에서 나중에 유학과가 갈라져 나왔다.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자체는 60년대에 한번 폐과가 되었다가 1981년에 부활했다. 1967년 동양철학과를 유학대학으로 독립시켰고, 동시에 동양철학과를 개편하여 유학과와 철학과가 신설되었고 동양철학과 자체는 사라졌다. 그러다가 1981년 전두환 정권의 졸업정원제 실시로 대학교 정원이 대폭 늘어나면서 학과 신설, 학과 쪼개기 붐이 일었는데, 이때 유학대학의 기존 학과에서 분리되어 한국철학과와 동양철학과가 신설되었으며, 유은혜는 이렇게 신설된 유학대학 동양철학과의 1기였다.
하지만 1981년 신설된 동양철학과는 성균관대 창립 초기의 동양철학과의 전통과는 많이 단절되어 있었다. 왜냐면 1950년대 당시의 동양철학과는 유학대학 전체를 포괄하고 있었고, 그 핵심은 당연히 한국의 유학이었다. 하지만 이후 유학과가 따로 갈라져 나왔고, 1981년에는 한국철학과가 실설되면서 기존의 유학과와 그 전통을 양분해 가져갔다. 1981년 신설된 동양철학과는 한국의 유학을 제외한 동양철학, 즉 중국 철학을 메인으로 하였고, 한중 수교 후 1996년 아예 중국철학과로 명칭을 변경했다.
시대의 요구에 맞춰 변화하고 진화하며 현재 모습을 갖게 된 성균관이지만, 유학(儒學) 교육 기능만은 계속 보존되어 왔다. 유학 동양학과는 그런 성균관의 유학(儒學) 교육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학과다. 그만큼 성균관대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대표하는 학과라고 할 수 있다. 유학(儒學)의 본고장인 중국에 버금가는 수준의 유학(儒學) 연구가 진행되는 학과로 주목받고 있으며, 세계 유수의 대학들의 유학(儒學) 연구 학과들과 교류하며 유학 연구의 불씨를 이어가고 있다. 유학(儒學), 불교학, 도가사상 등 전임교수가 10명이며, 이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 대학 통틀어서 손꼽힐 정도로 매우 많은 숫자이다. 동아시아학술원에도 20명이 넘는 연구교수와 상근 연구원이 있다는 점도 감안하면 실로 매우 많은 고급 인력이 동양학 분야의 교육 및 연구를 담당하는 것이다.
한때 유학대학 및 산하 3개 과가 해체되어 유학동양학부로 통폐합 되었던 역사가 있으며, 600주년기념관을 준공하기 위해서 당시 성균관대를 대표하던 유학대학 건물이 철거되는 아픔을 겪었다.
유학(儒學) 교육 기능을 조선시대 성균관에서부터 이어오고 있으며, 성균관대학이 문교부로 허가받았을 때 부터 문학부의 동양철학과가 있었고 현재에는 단과대로 "유학대학"이 있다. 여기에서는 실제로 유학(儒學) 및 동양철학을 학부과정부터 대학원 석·박사 과정까지 전공으로 가르치고 있다. 한때 유학과(儒學科), 한국철학과, 중국철학과 등 3개 학과가 있었으나, 2000년 대 들어 학사과정은 '유학·동양학과'로 통합되고, 대학원 과정에서만 3개 학과가 전문화되어 운영되고 있다. 대학원은 유학과(儒學科), 한국철학과, 동양철학과의 3개 과의 석,박사 과정이 유지되고 있다. 공식적인 단과대 순서에서 맨 앞에 위치하는데 실제로는 학부대학이 맨 앞이나, 학부대학은 신입생 교육을 위해서 조직한 단과대이므로 제외. 표면적으로는 존중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때 "동양학 인재 전형"으로 유학동양학 전공예약생을 선발하는 별도의 신입생 선발 전형이 존재하였으나, 11년도 입시를 끝으로 사라졌으며 12년도 이후에는 학생부 중심 전형에 통합되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동양학 인재 전형을 통한 마지막 입학생인 11학번이 입학할 당시에는 입학사정관제로 운영되었으며, 당시 언수외합 6등급이던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없었다. 거기에 09, 10학번 입시에는 면접이 전형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11학번 입시에는 그마저도 없어, 내신과 자기소개서만으로 수능 이전에 최종 합격이 결정되었다. 경쟁률도 상대적으로 낮은 30명 합격에 423명 지원으로 14.1:1 이었다. 그리고 합격통지서가 무려 수능 보름 전에 퀵을 통해서 재학중인 고등학교나 집으로 배달되었다.
유학대학에서 2016년부터 잡지 <DoubleU>를 100% 학생 작업으로 발행하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학내언론 참조.
4. 연구기관
- 양현재
- 성균유학·동양철학연구원
- 동양철학·문화연구소
- 유교철학·문화콘텐츠연구소
- 한국철학·문화연구소
[1] 유불도 3교 중 불교와 도교 수업은 개설 되기는 하지만, 개설되는 강의의 절대다수는 유교 관련 강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