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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자가 자신의 오빠 또는 남동생, 사촌 오빠/남동생의 아내을 이르거나 부를 때 쓰는 호칭.[1]오빠의 아내는 올케 언니라고도 하며, 보통 자기보다 어리더라도 새언니[2]라고 높여 부른다. 남동생의 아내는 손아래 올케라고도 하며 올케, 동생댁이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북한에서도 올케라고 한다. #
2. 특징
과거에는 오빠의 아내가 본인보다 어려도 올케의 진짜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남자인 오빠의 나이가 호칭에 영향을 미치는 특성상 언니, 새언니라고 불러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많이 어리면 어색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반대로 올케 입장에선 시누이의 오빠와 결혼했기 때문에 나이 많은 시누이보다도 자기가 높다! 하지만 현재 국립국어원의 호칭에 의하면 이 경우는 그냥 올케로 부를 수도 있다.사실 남자 쪽 형제들의 나이 차이로 인해 당사자들의 실제 나이와 상관없이 호칭이 결정되는 경우는 흔하다. 마치 남편의 형의 아내(손위 동서)가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형님'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 이 경우 실제로 부를 땐 '동서' 혹은 '동서님'으로 부르면서 상호 존대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남편 입장에서 여자 쪽 형제들의 나이 차이는 호칭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지, 처남, 처제, 처형, 동서 등을 부를 때 본인의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지 아내의 형제 관계를 기준으로 하는지 모호한 경우가 많아, '처갓집 족보는 개족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3. 어원
어원은 오라비의 계집. 현대어로는 계집이 여성에 대한 비속어이지만,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일반적인 여성을 지칭하는 명사일 뿐 비하의 의미는 없었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즉 오라비의 여자, 아내라는 뜻.백제어로 왕비를 뜻하는 '얼쿠(王后 *əlku)'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올케라는 단어는 1938년 조선어사전에 처음 수록되었으므로 20세기 초에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용어로 보이며[3][4], 이전 시기 문헌에서는 이 단어를 찾아볼 수 없고 대신 '올아범댁'으로 쓰였다.# 따라서 이전까지 '오라비의 댁'으로 높여 부르던 호칭을 근현대로 넘어오는 시기에 '오라비의 계집'의 의미로 격하시켰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4. 기타
손위 올케의 경우, 옛날에는 오빠가 자기에게 베풀던 사랑을 뺏어 가는 존재라고 하여 미운 존재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이건 손아래 올케도 마찬가지. 반대로 올케의 입장에서 친동생은 아니더라도 또 하나의 여동생이 생긴 격으로 시누이와 처음엔 어색해도 시간이 지나 오빠이자 남편인 그분(...) 욕하기 이벤트를 거치면 상호 친밀도는 자동으로 오른다.- 오빠와 결혼할 여자가 왕따 가해자였습니다(2015)
5. 대중 매체
창작물에서의 올케는 상술했듯이 극렬 브라콘인 경우가 많다. 역으로 GL에서는 올케와 시누이끼리 커플로 맺어지는5.1. 올케 속성을 보유한 캐릭터
- 료우기 시키 - 공의 경계
- 구해주(이름 없는 여자)
- 기쁨의 전기 캔드릴라 - 수전전대 쿄류저[6]
- 김미란(하나뿐인 내편)
- 시바 미야코(블리치)-시바 미야코
- 최지연(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 한아름(최고의 연인)
- 오빛나(빛나는 로맨스)
- 주화연(비밀의 남자)
- 차윤희(넝쿨째 굴러온 당신)
- 츠유리 카나오(귀멸의 칼날)
- 권효진(가족끼리 왜 이래)
- 에비나 나나, 콘고 카나우(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 아미르 하르갈 - 신부 이야기
- 키아라, 라니 - 라이온 킹 2, 라이온 수호대
- 키시베 노조미 - 오빠의 아내와 살고 있습니다
- 소니아 -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
- 엘루카 치르크라시아, 유피나 마론 - 에빌리오스 시리즈
[1] 반대로 이 올케가 자신(남편의 누나 또는 여동생)을 부르는 호칭은 형님(누나)/아가씨(여동생). 참고로 남자가 남동생의 아내를 부를 때는 제수 또는 계수, 형의 아내를 부를 때는 형수[2] 언니라 불러도 상관없다.[3] 즉 지역 방언 정도로만 있다가 퍼져나간 것. '언니', '오빠', '형' 등의 현대 한국어 친족어의 상당수가 20세기 들어 이런 역사를 겪었다. 현대 한국어의 복잡한 친족 호칭은 20세기 초반~중반이라는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정립된 것이다. 근대화로 지역 간의 고립도가 낮아지면서 전국 각지의 언어가 뒤섞이는 과정에 이 같은 대격변이 일어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계림유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고려 시대 중세 한국어 시절의 한국어 친족 호칭은 여타 언어들처럼 매우 단순한 축에 들었다.[4] 한국어는 비록 옛 형태를 정확히 알기는 어려워도 밝혀진 바들을 바탕으로 볼 때 대체로 역사적으로 복잡해진 언어로 추정된다. 고대의 문법이 훨씬 복잡했던 인도유럽어족 언어들과 대조되는 면이다. 당장 한국어에서 다른 언어들보다 복잡하게 발달했다는 높임법조차 고대 한국어 시절에는 딱히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후기 고대 한국어~초기 중세 한국어 시절에 동사와 명사가 문법화하며 서서히 발달했다.[5] 의외로 역사적 실제 사례도 있는데, 합스부르크 제국의 황태자비였던 파르마의 이사벨라가 시누이인 마리아 크리스티나를 사랑했다.[6] 임금님전대 킹오저에서 놋상과 결혼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후쿠이 유코의 올케가 된다. 그런데 아가씨도 쿄류저다(...).